제5화 “뻐꾹 뻐~ 뻐꾹”

시즌 ⌜4⌟ 모두 아름 다 왔다

by 아문선

위대한 애국자 여러분 오늘도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 열사의 땅에서 일을 하는 한 애국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밀물|1983년 11월호|해외건설의 역군들에게|김지연|여류작가 -



빙고!

금요일 저녁 식사를 일찍 마치고, 노동자들은 새마을 회관으로 향한다. 빙고 게임이 있는 날이다. 입장료는 5 리얄|약천원|이다. 한 손엔 펩시 콜라를 들고 빙고표를 챙긴다. 오늘도 말 많은 새마을 위원장이 연단에 올라 게임 규칙을 소개하고 준비된 경품도 소개한다. 새마을 위원장의 소개로 단상에 오른 캠프장이 숫자를 하나씩 끄집어내고 긴장감이 더해진다. 갑자기 잡부 이 씨가 손을 번쩍 들며,

"빙고 빙고~"

를 외친다. 당첨이다. 오늘에 경품은 일본제 SANYO 카세트 라디오이다.


약 300명 정도가 입실 가능한 새마을 회관은 주말엔 빙고 게임, 영화상영 또는 연말이나 명절에 노래자랑을 하는 곳이다. 특히 한국영화나 19금 영화가 상영되는 날은 오후 6시가 되어야 시작하는 영화지만, 30분 전에 매진된다. 늦은 분은 입석이 제공된다. 드물게는 한국에서 구성된 연예인 위문단이 오거나 한국교민 부인회에서 오기도 한다. 날씨 탓에 야외 스포츠 행사나 야유회는 거의 하지 않는다.


남봉누나가 왔어요

해외 건설협회는 중동 지역에서 근무 중인 한국인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공연단을 파견한다. 남자 코미디언과 남자 가수들로 구성된 연예인 공연단이다. 흠이라면 여성 연예인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78년 1차 위문단은 서수남 하청일, 백남봉 씨가 참여하고 그리고 뽀빠이 아저씨가 사회를 본다. 여장을 백남봉 씨의 미모에 웃음바다를 만들고, 10번도 더 부른 "고향의 봄"은 모두를 눈물지게 한 공연이었다.


사우디 젯다 지역 교민 부인회도 "한국의 날"이라 제목을 부치고 각 업체 순회공연을 한다. 건설업체, 무역상사, 대사관 직원부인들이 무용, 노래 그리고 연극등으로 무대를 꾸민다. 54명의 아주머니 연예단의 꾸민 프로그램은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음대출신의 성악가, "새마을노래"와 "아리랑" 합창, "농악과 연극"으로 90분 정도의 공연이었다. 대사관 사모님의 말씀이라 거절도 못하고, 무대에 오르기 위해 적지 않은 연습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도 가수다

연말이나 추석 그리고 설날엔 콩쿠르대회는 기본이다. 끼 있는 노동자들이 밴드를 결성하고 동네 노래자랑 수준의 콩쿠르인 것이다. 춘천공고 출신 공고생 "성수"는 콩쿠르대회 모범생이다. 레퍼토리는 꼴랑 하나 오래된 가수 조경수의 대표곡 〈아니야〉이다. 매번 콩쿠르만 열리면 이쁘장한 외모덕에 〈아니야〉로 대상을 받는다. 이건 정말 "아니야."


D산업 10여 개 캠프 대항 합창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라히마 캠프는 합창 지원자가 없어 공고생 우선 차출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성가대 지휘를 했다는 염 선생께서 지휘봉을 잡는다. 20여 명으로 구성된 라히마 합창단은 두곡 "오빠 생각" 그리고 "즐거운 우리 집"을 뽑았다. 노래가 쉽고 모두가 잘 아는 명곡으로 고른 것까지는 좋았다.


합창대회를 한 달 정도 앞두고는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한다. 바빠서 잊을 수도 있으니 방송을 해달라는 도장공 소 씨의 요청으로 합주 연습이 있는 날은, 숙소 방송 시스템을 가동한다.

"아~아~ 라히마 합창단원께 알립니다. 합창단원인 용접공 박 씨, 배관공 정 씨, 도장공 소 씨.... 그리고 공고생 은 금일 7시까지 새마을 회관으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꼭 한분이 말썽이다. 교회 성가대원이었으며, 본인이 테너 수준의 미성을 뽑아낼 수 있다고 자랑하는 도장공 소 씨이다. 연습이 끝날 무렵 얼굴만 비치고 연습은 도통 안 하시는 분이다.


뻐국 다음엔 뜸북인가?

합창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라히마 캠프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쥬하이마 캠프 대강당이 공연장이다. “뭔가 라히마 합창단만의 콘셉트가 있어야 한다”는 도장공 소 씨의 의견에 따라, 우리는 캠프 사무실에서 제공한 하얀 운동화를 맞춰 신었다. 그런데 공연 후 찍힌 사진을 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 작업복에 가까운 옷차림, 그리고 유난히 눈에 띄는 하얀 운동화… 멀리서 보아도 단번에 튀는 합창단이었다.


제일 잘한다는 젯다 캠프 합창단의 천상의 하모니가 끝나고, 드디어 "오빠 생각" 노래의 반주에 맞추어 염 선생님이 지휘봉을 우아하게 휘두리며 노래가 시작된다. 노래는 파트를 나누어 돌림노래 형태로 준비했다. 뻐꾹 하면 다음 파트 뻐꾹 또 다음 파트가 뻐~ 뻐꾹 하는 것이다.


1파트- "뻐꾹뻐꾹"

2파트- "뻐~ 뻐꾹"

"뜸북~ 뜸북~"


갑자기 뒷열 한 파트에서 테너의 고운 목소리로 뜬금없는 뜸부기 가 튀어나온다. 긴장한 탓인지, 연습부족인지, 도장공 소 씨가 사고를 친 것이다. 공연장은 웃음바다가 되고, 라히마 합창단은 얼음이 된다. 도장공 소 씨는 돌아가는 내내 말없이, 깜깜한 사막만 바라보고 있다.




참고 문헌 및 관련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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