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4⌟ 모두 아름 다 왔다
-밀물|1978년 8월호|중동에 나가 있는 아우들에게|박현서|수필가|KBS 방송위원
▬행복은 GNI가 아니다
첫눈이 오면 공휴일, 학교나 일터로 가지 않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낭만을 즐긴다. 모든 공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아이를 낳으면 6개월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고, 아이가 만 두 살 될 때까지 근로시간을 하루 2시간 줄여준다. 전국토의 70%를 숲으로 보전한다. 1인당 국민소득 4,000달러의 나라 "부탄"이다.
이슬람 율법이 일상을 지배하고,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고, 또 절대 왕정이 지배하는 사막에도 행복이 있을까? 만약 행복이 있다면 그 행복은 "부탄"의 행복과 무엇이 다를까? 남성의 소유물처럼 종속되는 여성에게, 그들의 행복의 기준이 무엇일까? 전 세계 인구의 20%가 넘는 사람이 그 불편함에도, 믿고 따르는 힘은 무엇인가?
▬아람코 캠프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알라의 엄한 율법이 용서가 되는 작은 해방구가 있다. 라스타뉴라 산업지구에 위치한 아람코 캠프이다. 아람코|ARAMCO|캠프란, 아람코의 소속의 미국인이나 영국인 가족이 사는 주거 지역이다. 캠프 주변으로 높은 철조망 펜스가 설치되었고 출입문에는 무장한 경비가 지키고 있다. 출입증이 있는 거주자 또는 특별 허가를 받은 사람만 입출입이 가능하다.
아람코 캠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세계이다. 푸릇푸릇한 골프장과 잔디밭, 야자나무, 공원, 수영장이 갖추어진 이곳은 흡사 플로리다 여느 마을처럼 보인다. 해수욕장이 있고 비키니의 여성들이 해수욕을 즐기거나 선텐도 한다. 그리고 미국인들의 종교인 기독 교회가 있어, 주말엔 예배도 볼 수 있다. 아람코 단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내부에서는 사우디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행복의 나라인 것이다.
통근버스 창밖으로 보이던 행복의 나라에, 발을 디딜 기회가 찾아왔다. 현장 동료인 배관공 권형이 아람코 캠프 거주자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한다. 권형은 영어를 할 수가 없고, 혼자서 아람코 캠프를 방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듯했다. 그의 고향 초등학교 여자 친구가 미군과 결혼하였고, 지금은 그 남편을 따라 아람코 캠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의 그곳에 한국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꽤 놀라웠다.
아람코 캠프 경비실 인터폰으로 연락하자, 그녀의 남편이 자동차로 픽업을 나왔다. 그를 보고 우리는 깜짝 놀랐다. 오며 가며 마주친 옆 현장 감독관인 것이다. 차에 오르자 그는 자신을 스미쓰라고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동두천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부터,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는 말까지, 그러더니 "아리랑"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박자 무시, 음정무시, 가사 무시 아리랑이지만 한국에 대한 친근함을 애써 보이고 싶은 노래였다.
아담한 정원과 관리가 잘된 20평 규모의 단독주택으로 안내되었다. 문 앞까지 나와 반갑게 맞이한 권형의 초등학교 친구는 단발머리에 작은 키, 예쁘다고 하긴 어려웠지만 단정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이었다. 미리 준비된 점심은 캠프 식당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소불고기와 김치 그리고 미역국으로 차려져 있었다. 점심을 마친 뒤, 권형과 그의 여자친구는 학교 동창들의 소식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누며, 커피가 식도록 지난날의 추억을 하나하나 풀어놓았다. 말마다 웃음과 아련한 기억이 섞여, 두 사람의 시간은 마치 20년 전 고향 마을로 흘러가는 듯했다.
펜스 너머에서 바라보던 그곳은 한국인 노동자에게 결코 닿을 수 없는 낙원처럼 보였다. 철저히 통제된 경계선 너머로 보이는 초록빛 잔디와 질서 정연한 주택들은, 그 안에 분명 특별한 삶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막상 발을 들인 아람코의 캠프는 놀라우리만큼 평범했다. 아이들은 뛰놀고,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있고, 바비큐 냄새가 나는 뒤뜰이 있고.... 그렇게 그토록 동경하던 파라다이스는 결국 다른 이름의 일상이었다.
▬너무도 불편한 여성의 행복
무하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에는 기도할 때, 개나 당나귀나 여자가 지나가면 그 기도는 무효라고 선언하고 있다. 또 여성은 성인이 되어도 법적으로 남성 후견인|아버지, 남편, 형제 등|의 허락이 있어야 여행, 의료행위, 취업, 교육, 결혼 등이 가능하다. 남성에게 이혼은 아주 간결하다. 변호사도 법원에 갈 일이 없다. 이슬람의 결혼 계약서 니카|Nikah|를 보면 아내와 이혼하고 싶은 남편은, 세 번만 악을 쓰면 끝이다.
"이혼한다"
"이혼한다"
"이혼한다"
최근 사우디 정부는 남편이 일방적으로 이혼을 선언할 경우, 아내에게 문자 메시지로 통보하도록 하는 법적 절차를 도입했다고 한다. 물론, 여성이 남성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남성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제약이 많다. 우선 지참금을 반환해야 한다. 그리고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 정책으로 최근 여성의 사회 활동 규제가 빠르게 완화되고 있다고 한다. 식당에는 남녀 좌석구분이 없고, 영화관이 생기고, 여성도 운전하고, 세계적인 뮤지션의 공연이나 K-Pop 공연도 관람이 가능하다. 스포츠경기도 참여한다.
2017년엔 국립학교에서 여학생 체육수업 시작 했고, 그리스 출신 뮤지션 야니|Yanni|의 콘서트에 남녀 합석 이 허용되었다. 2018년엔 여성들의 축구장 경기 입장이 허용되고, 여성 운전이 허락된다. 2019년엔 여성의 해외여행 제한 폐지가 되고 BTS의 리야드 공연이 성사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Vision 2030을 통한 개혁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여성의 자유는 제한되고 있지만, 개혁적인 미스터 에브리씽의 덕에 조심스럽게 변화하고 있는 추세이다. 중동 건설 노동자들은 "세계의 미인은 부르까|Burqah-전신을 가리는 여성복장|에 숨겨져 있다"라고 말하곤 했다. 곧,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의 감추어진 미모가 세계를 환하게 빛나게 해 줄 날이 올 것이다.
▬부자나라 보다 행복한 나라
행복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일까.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Richard Esterline은 1974년 은 그의 저서에서 "한 사회 안에서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 그리고 한 나라가 부유해진다고 해서 그들이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스텔린 역설"을 주장한다.
히말라야 산만큼이나 큰 가슴을 가진 부탄의 4대 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Jigme Singye Wangchuck|는 "모든 사람은 행복을 열망한다. 한나라의 발전 정도는 사람들의 행복에 의해 측정되어야 한다"라는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이라는 독창적인 국가 비전을 제시한다. 그는 51세의 나이에 자발적으로 왕위를 아들에게 넘긴 행복한 왕이었다.
행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부탄의 제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는 아버지의 철학을 계승하여 경제 성장보다 국민의 행복을 우선하는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단정한 외모와 겸손한 태도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국왕"이라는 별칭을 얻은 젊은 왕이다. 부탄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않지만, 국민들이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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