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4⌟ 모두 아름 다 왔다
- 생텍쥐페리|어린 왕자|대사인용 -
▬아름다운 물결 (美波)
참, 지금 생각해도 세련된 모임 명이다. 모임 명은 Middle East Friendship Association |MEFA| 로 했지만, 회장을 맡았던 봉갑이의 제안으로 "미파|美波|"라 별칭 하였다. 미파 설립취지는 J공고 중동반 고교 동문들의 단합과 모교 장학금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결성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10여 개 현장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을 규합해 모임을 결성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된 모임은 “모교 장학기금” 마련이라는 단단한 공통분모를 만들어냈다. 회장과 각 현장의 총무를 선임하고, 그럴듯한 회칙도 제정한다. 장학기금 명목으로 매달 5 리얄|당시 환율로 약 1,000원|을 내야 했는데, 이 회비 납부 의무는 회칙의 "진짜 목적"이었다. 끝까지 버틴 친구도 있지만 99% 이상 참여한다.
▬모래가 모여 바위가 된다
120명의 친구들이 차곡차곡 쌓은 모래알은 천만 원 정도의 큰 바윗덩어리가 되었다. 지금 시세로 따지면 1억 원은 훌쩍 넘을 돈이다. 당시 은행 예금 금리가 연 20%에 달하는 고금리 시절이라, 이자만으로도 장학금 지급과 친구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데 충분했다. 우리는 그 바위가 주춧돌로 쓰일 단단한 화강암이 될지, 사막의 바람에 흩날릴 사암이 될지는 따지지 않았다.
D산업 사우디 현장에는 전국 8개 공고 출신들이 있었다. "친구는 상점에서 팔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장학기금을 모으고, "우리가 남이가" 실행한 공고생은 J공고가 유일하다. 한 달에 한번 정도는 현장별 친구들 모임을 갖고 귀국 시에는 한 장소를 정해 소식도 전하고, 사우디에 보낼 편지나 소포도 픽업하는 사랑방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모교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달 5 리얄 씩 모은 돈은, 5년간의 모금 운동 끝에 마침내 목표액에 도달했다. 통장은 회장 명의로 개설하고, 총무가 관리한다는 안전장치를 명문화함으로써, 우리는 “J공고”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를 이뤄냈다. 마음 한편에 자리한 뿌듯함과 자부심은, 단순한 돈의 합보다 J공고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선배로서 기억되는 기쁨이었다.
▬주영이가 잠수를 탔다
기금 마련 첫해, 이자 수익을 모교 재학생 중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단정한 기계과 3학년 후배가 추천되고, 감격적인 퍼포먼스를 교장 선생님 그리고 학교대표가 모인 강당에서 거행한다. 교감선생님의 감사의 인사가 있고, 재학생 대표가 나서 선배님들의 거룩한 정신을 이어 가겠노라고 선서를 한다. 여기 까지다.
총무를 맡고 있는 "주영"이가 어느 날 연락 두절된다. 친구들 경조사 그리고 장학금 지급등, 잦은 인출로 상황이 여의치 않자, 통장과 도장을 모두 보관한 총무가 잠수한 것이다. 세상일이 참 아이러니 하다. 그는 참 선하고 명랑한 친구였다. 학업성적도 우수했고, 축구도 잘해 인가가 많은 친구라라 믿고 통장과 도장을 맞긴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건달인 동생 친구가 그를 꼬드겨 술집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밤의 세계를 모르는 범생이가 7년 모은 오일 달러를 몽땅 룸살롱에 투자한 것이다.
해가 서쪽에서 뜨는 일은 있을지언정, 친구를 배반하지 않을 "주영"이었다. 대여섯 명의 건달들에게 "형님" 소리를 들으며, 스무 명 넘는 아가씨들이 코맹맹이 "오빠"라 불리며 영화처럼 살던 그 삶은—겨우 6개월이다.
7년의 땀과 눈물이 사라지는 공황의 순간, 120명의 친구들의 우정을 버려야 하는 불행의 시간이 되고 말았다.
▬친구는 삶에 밑천이다
인생에서 가장 예민하고도 순수한 시기를 함께한 고등학교 친구는 특별하다.
모두는 말한다. "고등학교친구는 삶에 밑천이라고."
사우디아라비아, 밋밋한 건설 현장에서 그들은 항상 휴식을 주는 의자였고, 고향을 대신하는 가족이었다. 같은 현장이라도 배치되면 믿음직한 기둥이었고, 안식처였다. 사무실에 좋은 보직이라도 있으면, 현장에서 일하는 친구를 먼저 생각하는 수호자이다.
병섭, 길윤, 한기, 동한, 상수, 낙봉, 승수, 국섭, 주현… 이런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보면, 함께한 7년의 시간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눈앞에 떠오른다. 어떤 친구는 고향으로 내려가 사업을 시작했고, 어떤 친구는 새로운 직장을 선택했으며, 어떤 친구는 해외 건설현장의 노련한 일꾼으로 D산업에 남았다.
지금은 반백의 청춘일 것이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되었을 "중동반 친구"들에게 "톡" 인사라도 건네야겠다.
"친구야 밥 한번 먹자!"
"주영아, 괜찮아~ 언제 우리 밥 한 끼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