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때란 없다

작가의 꿈

by 아문선
바쁘게 살았다


"나는 베이비붐 세대 또는 산업화의 실천적 세대라 불린다"

흔히 내 또래의 세대를 부르는 말은 참 다양하다. 사회학적으로 표현하면 "베이비붐 세대"라 하고, 경제적 관점에서는 "산업화 실천 세대"라고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삐딱한 시선으로 "꼰대 세대" 불리기도 한다.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약 14.3%를 차지한다고 하니, 적지 않은 비중이다. 밀레니엄 시대를 지나고, 베이비부머가 한국사회의 뒤안길로 물러난 지금도, 그들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한 시기의 주역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였다”
조국 근대화의 기수, 이 말은 5.16 군사 혁명 이후 정부가 내세운 공약 속에서 등장한 산업화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산업화를 향한 국가적 열망 속에서, 기능인들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조국을 근대화로 이끄는 기수인 셈이다. 이들은 공장과 건설현장, 기계 앞에서 땀 흘리며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주역이었다. 1970년대 중후반, 중동 건설 붐이 일자 조국 근대화 기수들은 중동건설 현장으로 파견된다.


"나는 중동 건설 현장에서 땀 흘리던 열아홉 살 노동자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수많은 한국인들이 중동으로 건너가 오일달러를 벌었다. 한 해 최대 20만 명, 총 434억 달러가 넘는 외화를 벌어들였다. 그 돈은 한국 경제를 떠받쳤고, 해외 건설은 한때 GNP 성장률의 40%에 육박하는 기여율을 기록했다. 공업고등학교를 마친 열아홉 살 청춘도, 중동의 모래바람 속에서 7년을 보낸다.


"나는 30년 동안 해외시장을 누빈 개척자였다"

철도, 교통, 산업자동화 분야의 전문가로, 세계 곳곳을 발로 뛰었다. 중국, 태국, 방글라데시,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미얀마, 캐나다 그리고 수단까지—50여 개국 그곳엔 늘 새로운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국 수출산업의 선봉장이었고,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퍼스트 무버였다. 그렇게 뿌린 기술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이루는 나무가 되었다.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정년 앞둔 어느 날, 홍보팀의 요청이 있었다. 그간의 해외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 웹진에 칼럼을 써 보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두 문제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글을 써본 경험이 없다." 그리고 "문법을 모른다." 우선 초안을 잡아서 보내주면, 전문작가를 통해 첨삭 지도를 하겠다는 답변이 있었다. 달리 바쁜 일도 없고, 그래 한번 써보자.


한 달 동안 정리한 글은 A4 용지 2장 분량이었다. 전문작가의 피드백이 있었고, 원격 화상회의를 통해 개별 코오칭을 받았다. 당시 해외 장기 출장 중이었고 또 코로나 시기라 대면 지도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문법 교정 프로그램을 통해 1차로 오탈자, 띄어쓰기와 같은 오류를 수정하고, 전문작가의 감수를 받으며 총 네 편의 칼럼을 완성했다.


첫 글이 회사 웹진에 게재된 날, 회사 내 모든 지인에게 회람을 하고, 또 내 연락처에 기록된 모든 지인에게 "새로운 작가 탄생"에 대한 알림 서비스를 이어간다. 응당 내 글에 대한 칭찬과 응원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잘 읽었다"가 전부였다. 땅속에 묻힌 보석을 빛나게 하려면, 아무래도 전문가들이 많은 메이저 리그로 무대를 옮기는 게 좋겠다는 오기가 발동한다.


회사 웹진에 기고한 칼럼 중 한편으로 "카카오 브런치" 작가신청을 한다. 전문작가의 지도로 완성된 글이라 그런지, 일차에 작가 승인을 받는다. 기세를 몰아 "브런치북" 3편을 올리고, "2024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한다. 혹시 하는 기대감은 역시라는 실망으로 작가의 꿈은 막을 내린다. 선정된 열 편의 작품을 대하는 순간, "절필"이 내 머리를 내리쳤다.


지금은 국회 도서관 오픈런너이다. 글을 쓰는 대신, 책을 읽기로 했다. 깊게 파기 위해 우선 넓게 파기로 마음먹었다. 소설, 산문, 예술, 시, 철학, 지리, 요리, 건축... 눈에 닿는 대로 읽고 있다. 특히 시집은 하루에 한 권, 최소한 두세 편은 필사를 한다. 언제 다시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른다. "너무 늦은 때란 없다"라는 것을 그래도 나는 믿는다. 읽는 것도, 기다리는 시간도, 결국 익어가는 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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