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철도 전문가의 미얀마 에피소드
네피도는 어디에 있을까?
미얀마 철도청의 우바민U Ba Mynt 으로부터 2007년 7월 편지를 받았다. 그가 신호통신국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과 네피도Nay Pyi Taw역 구매 입찰 설계를 도와 달라는 내용이다. 네피도는 미얀마 중서부의 핀마나Pyinmana주 작은 지방 도시였다. 2005년 11월에 행정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고, 2006년 공식적으로 미얀마 수도가 됐다.네피도에 이르는 길은 철도, 항공 그리고 고속도로이다. 서울에서 부산 거리와 엇비슷한 양곤Yangon-네피도에는 하루 2회 항공편이 가능하나 미지의 네피도를 샅샅이 보고 싶은 충동으로 차량 이동을 결정했다. 제 시각에 맞추어야 8시간이 소요되는 철도는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콘크리트 포장으로 미얀마 내륙을 가로지르는 320km 고속도로이다. 아침 10시쯤 출발한 차는 저녁 무렵 에서야 우바민U Ba Mynt이 잡아준 호텔에 도착한다. 공사 중인 구간을 가다 서다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휴식이 필요한 지점에는 인근 주민들이 운영하는 간이 휴게소가 있다. 천막으로 더위를 피하고 간단한 스낵Snack과 음료가 전부인 곳이나, 야자수 나무와 너른 벌판이 잘 어울려진 풍경 속으로 풍덩 빠지는 곳이었다.
|작별| 인사도 없이 네피도로 사무실을 옮겼다.
다음 날 아침 철도청 방문길에서야 도시의 윤곽을 볼 수 있었다. 잘 그려진 구획에 따라 어쩌다 회색빛 콘크리트 4~5층은 되어 보이는 관공서가 보인다. 군사정권의 일사 분란한 수도 이전 속도를 따를 수 없는 민가나 상가는 볼 수가 없다. 어느덧 40대 초반에 들어선 그는 털털한 웃음으로 10년 만의 재회를 증명하듯 열대 과일이며 음료를 차려낸다.
2005년 11월 어느 날 철도청 이전이라는 공문이 도달하고 가족과 제대로 작별의 인사도 없이 네피도로 사무실을 옮겼다는 황당함에도 그는 태연한 웃음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에게는 미얀마에서는 보기 드문 하얀 얼굴에 부인과 두 아들이 있다. 애처가인 그도 두 아들의 교육 문제로 네피도로 이사가 어려운 현실에 겸연쩍은 답변으로 화제를 돌린다.
남한의 6.7배 달하는 국토라 철도망은 남북으로 걸쳐 6,700km에 달한다. 그중 본선은 이전 수도 양곤Yangon과 제2도시 만델레이Mandalay 625km 구간이다. 네피도역은 양곤-만델레이 중간지점인 320km 지점에 있다. 본선 8개의 플랫폼과 신호통신 기계실이 있는 본관 건물은 완공이 되었다. 그러나 측선과 일부 부속 건물은 공사가 한창이다. 기술 규격이나 입찰 요강이 까다롭지 않은 사업이라 개발 중인 분산 제어 방식을 적용할 참이라 내심 기대도 크다. 기대와 달리, 최저가 입찰 방식에 따라 네피도역 신호 사업은 인도India 업체가 낙찰받았다.
양곤 순환선 철도 현대화 사업
우바민U Ba Mynt과의 첫 만남은 1992년 중순경 OPEC*차관 사업으로 실시하는 양곤 순환선Yangon Circular line 철도신호 현대화 사업이었다. 그는 갓 미얀마 철도청에 입사한 20대 후반청년이었고 나 역시 어리보기 한 해외사업 담당자였다. 양곤 순환선은 45km 길이에, 39 개역 규모로 양곤과 주변 위성도시를 루프 형태로 연결하는 통근 열차 구간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 건설된 기계식 신호 설비를 철거하고 계전연동장치*와 역간 자동 폐색 장치*로 교체하는 사업이다.
*OPEC: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석유수출국기구
*계전연동장치: 계전기Relay를 이용한 역내 열차 안전 이동 장치
*자동폐색장치: 역과 역 사이 열차 이동을 제어하는 철도 안전장치.
현장 조사차 방문했던 INSEIN역 은 시골 장터나 다름없는 활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바나나와 코코넛 음료를 파는 행상이 많았다. 낡은 궤도와 철도 차량 탓에 느릿느릿 플랫폼에 도착한 열차에는 우리를 빤히 바라보는 보드라운 시선이 있었다.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빙긋 웃는 사람들이다.
가난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 이였다.
첫 방문은 1991년 5월은 아웅산 암살 폭탄 사건*의 상흔이 남아 있는 시기였다. 계엄령으로 초저녁이나 다름없는 시간에 귀가를 서둘러야 한다. 도심 곳곳에 소총과 곤봉으로 무장한 군인과 경찰의 검문이 일상화되었다. 생필품이 부족하고 월 미화 50달러도 행운인 그곳은 가난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 이였다.
당시 외국인 숙박이 가능한 숙소는 INYA Lake Hotel이다. 아웅산 폭탄 테러로 사상을 입었던 한국 외교사절이 묶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현대식 롯데 양곤 호텔과 마주하고 있어 퇴색한 명성이지만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1958년 미소 냉전 시대 외교정책 일환으로 소련의 자금과 기술로 건축된 건물이다. 하얀색 6층 건물에 매년 4월 보석 경매 열리는 커다란 연회장을 갖춘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공간이다. 객실이나 샤워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작은 도마뱀의 묘기는 자연과 소통하는 여유라 할 수 있다.
*1983년 10월 9일 미얀마의 아웅산묘소에서 한국의 외교사절 다수가 북한 폭탄 테러로 사상한 사건.
짝깍 짝깍 다가오는 설명회의 공포감으로 이른 아침 큰 키의 야자수가 도열한 호숫가를 걸어본다. 호수에 제모습을 내준 쉐다곤 파고다가 자잘한 물그림자를 만든다. 그리고, 모든 게잘될 거라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미얀마 철도청 미팅을 마치고, 현지 파트너의 추천에 따라 불교 사원을 찾아 불공을 드리기로 했다. 세다곤 파고다 Shwedagon Pagoda는 양곤의 북쪽 언덕에 있는 거대한 불탑으로 1453년에 건설된 양곤의 아이콘이다. 둘레는 426m, 높이는 100m이다. 기단부는 정사각형이고, 기단 윗부분은 원뿔꼴이며,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급격히 좁아지는 형태를 취한다. 겉면은 전체가 황금으로 덧씌워져 있고, 내부에는 부처의 유품이 들어 있다. 탑은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가 박혀 있어 해가 뜨는 아침과 석양 무렵에는 온통 보석빛으로 반짝인다. 또 불탑을 중심으로 72개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흩어져 있고, 이러한 불탑에는 수많은 불상 들이 안치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쉐다곤 파고다
이런 환대는 처음이다.
두 번채 방문은 계약 협상 및 계약식을 위해 방문으로 민박을 택했다. 2~3층 건물에 10개 남짓 객실을 만들고 작은 규모의 식당을 갖춘 숙소이다. 민박집 지분을 갖고 있는 현지 파트너의 추천으로 숙박을 결정했지만 다소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자 50대 초반 론지Longi* 차림의 남자가 대문을 열어젖힌다. 도착 시간을 연락 한터라 대기하고 있던 10대 후반의 두 여직원이 가방을 챙기고 객실로 안내한다. 몸에 굴곡이 잘 드러나는 론지와 얼굴에 타나카Tanaka*을 바른 조금은 귀여운 모습이다.
*론지: 미얀마 남녀의 스커트로 몸통과 허리에 감은 다음에, 허리띠에 끼워 넣는다.
*타나카: 미얀마 천연 화장품으로 타나카 나무를 갈아 얼굴에 바름
5성급 호텔에 익숙한 해외 출장에서 민박이라는 편견으로 상상한 객실과는 차이가 있다. 하얀 시트가 정갈하게 정리된 침대가 보이고, 티크Teak 나무로 만든 옷장과 테이블 등 가구는 영국 식민지 시절의 총독 숙소를 연상케 하는 고전미가 있었다. 가방을 챙겼던 두 소녀는 얼음을 얹은 파파야 Papaya 한 접시와 씨 알갱이가 많은 새콤한 패션프루트Passion fruit 주스를 준비한다. 이런 환대는 처음이다. 놀라움은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와서이다. 어느새 세탁과 다림질로 마감한 셔츠와 속옷은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침대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샤워 후 갈아입은 속옷의 짜릿함은 어디서 온 걸까. "온종일 먹은 신선한 햇볕과 수줍은 소녀의 정성"이 만든 놀라움이었다.
못사는 게 이상한 자원 부국 미얀마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일어난 쿠데타로, 미얀마의 정치, 사회 상황은 혼란 속에 놓여 있지만, 미얀마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투자 대상 국가 중 하나였다. 최근 중국과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의 임금 상승에 따라 기업들은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 소위 메콩강 신흥 3국으로 생산기지의 이동을 추진하고 미얀마는 이전 선호도가 가장 높은 국가로 꼽힌다. 무엇보다 남한의 9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와 천연가스, 유연탄, 우라늄, 보석, 티크목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인구 구조 또한 15~60세의 생산가능인구가 인구가 60%에 달한다. “나의 벗 우바민이 사는 곳, 낯선 이방인에게도 수줍기만 한 소녀들이 사는 곳,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로운 시절이 도래하기를 고대해 본다.”
에필로그 : 우바민은 철도청장을 마지막 직책으로 2021년 정년 퇴임을 하였고 지금은 말레이시아 철도 컨설팅 업체 Advisor로 근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