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 페르시아만을 걷다, 라히마 캠프
-밀물|1985년 8월호|해외건설 역군들에게|성락희|시인-
▬빤스 내려! 으~악
해외 송출을 담당하는 D산업 신체 검사장은 놀람으로 웅성거렸다. 나른한 검진 의사는 뿔테 안경을 바짝 끌어당겨 놀란 눈으로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비계공 최 씨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이 물건이 사단에서 최고였습니다."
"간호사님들이 보셔야 되는데.. 허허"
이분 말발도 사단 최고였나 보다. 출국 신체검사는 X-Ray검사, 피검사, 시력검사, 손가락 펴기, 앉았다 일어서기 등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무상 신체검사와 비슷한 수준이다.
교실 크기의 D산업 회의실에 꾸려진 간이 신체검사장에는 간이 X-Ray실과 피 뽑고, 키 재고, 몸무게 달고, 시력검사할 수 있는 의료장비들이 번호에 맞추어 도열되어 있다. 20대 후반의 두 명의 간호사는 이리저리 이동하며 빤스만 입은 노동자들을 능숙하게 다룬다.
"힘주세요!" "따끔합니다!"
얼추 일반 검사가 끝나자 갑자기 두 간호사는 황급히 커튼 뒤로 숨는다.
허접잖은 막일꾼 신체검사에 이골이 난 덩치가 꽤 푸짐한 의사는 약 30명 정도의 장정들을 일렬횡대로 세웠다. 거역할 수 없는 큰 목소리로 외친다.
"빤스 내려"
중동 취업에 차질이라도 생길까, 긴장한 노동자들은 체념한 듯 순한 웃음을 지으며, 기꺼이 속옷을 내린다. 커튼 너머로 간호사 둘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떡발이 좋은 비계공 최 씨는 특유의 넉살로 분위기를 이끌고, 함께 출국을 준비하던 동기들은 허탈한 웃음을 흘린다. 그렇게 "빤스 내려" 행사는 건설 노동자들의 존엄, 그 마지막 경계선을 무너뜨렸다.
▬순사가 찾아왔다
외화가 부족하던 시절, 여권을 발급받아 해외에 나간다는 건 가히 "바늘구멍으로 낙타가 지나간다'는 수준의 어려운 일이었다. 그에 준하는 절차도 가히 놀랄만하다. 여권 발급을 위해서는 우선 신원 조회다. 혹시라도 붉은 사상에 소유자인지, 집안은 붉은 사상이력은 없는지, 경찰이 직접 가가호호 방문하여 조사하는 것이다.
신원 조회차 경찰이 집을 방문한 날은 공교롭게도 "순사"라면 오금을 저리는 외할머니가 오신 날이었다. 일본 식민지를 살아온 외할머니는 외손주를 찾는 파출소 경찰의 방문에 놀라, 더듬거리며 대답한다.
"그런 사람 없당께"
40대 후반의 눈치가 백 단인 경찰은, 얼굴 표정을 누그려 트리고,
"할메, 그럼 손주 해외에 못 가면 우짤라고 그려시요잉"
다시 한번 자초지종을 말하고 나를 찾았다.
여권 발급을 위해서는 연좌제도 수용해야 한다. 신원 조회뿐 아니라, 일정 금액의 재산세를 납부하는 사람으로 두 사람의 신원 보증인을 내세워야 한다. 지방 중소 도시나 시골사람은 그렇게 큰 금액의 재산세를 납부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가 않아, 면장이나 동장이 나서야 할판이었다.
2박 3일 교육을 받아야 한다. 건설 노동자는 한국해외개발공사에서 실시하는 특별정신교육과 소양교육을 받아야 한다. 질리도록 반복되는 교육은 미국을 위시한 자유진영의 번영과 소련과 중공이 표방하는 공산주의 모순을 꼼꼼히 챙겨주는 세뇌 교육이다. 우리와 총칼을 겨누고 있는 북한괴뢰는 뿔이난 도깨비로 어떤 말에도 현옥 되지 말고 접촉을 금한다는 협박이었다. 물론 이슬람 사회의 풍습이나 제도에 대한 교육도 포함이다. 특히 어떤 일이 있어도 현지인과 접촉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말로 결론을 맺는다.
만 35세 미만인 사람은 병무청에서 국외여행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신원조회도 마치고, 교육도 받았고 자~ 여권을 신청한다. 이일도 만만치 않다. 여권발급신청서, 본인 인감증명서, 시세 및 국세 완납 증명서, 국외 여행 허가서이다. 외교부 여권과에 구비된 서류를 신청하면, 접수 후 1~2주 지나면 발급된다. 이런 수고로움으로 쟁취한, 여권도 딱 한번 사용하면 수명이 다하는 단수 여권이다.
여권 발급 후 고용 계약을 한다. 계약기간은 1년 단위이다. 꼼꼼히 고용계약서를 읽어보고 계약하는 노동자는 없을 것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계약서란 알 수 없는 작을 글씨로 빼곡히 4~5장으로 구성된다. 시급만 확인하고 도장을 여기저기 꼬옥 꼬옥 눌러 주면 끝이다. 해외 근로자와 계약을 담당하는 키 크고 마음씨 좋아 보이는 이 주임은 다른 근로자에 비해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는 위로와 함께 계약을 날인을 서두른다. 계약 기간 12개월 그리고 시급 1.25달러 그 외 내용은 회사 맘이다.
▬나른한 봄날 "전보 요"
내일 올까? 한 달 넘게 반복되는 "내일"에 지쳐가는 나른한 봄날이다.
"전보 요!"
반으로 접은 전보 용지가 우체부 주황색 가죽 가방에서 빠져나와 건네어진다. 이름도 맞고 회사도 맞고 틀림없는 출국 전보다. 급하게 찢긴 전보에는 "출국" 두자가 뚜렷하게 보인다.
"계약번호 4023. 1977년 4월 9일 출국. 4월 8일 오후 2시 본사 내방요."
D산업 해외인력부 발신이다.
"아이고~ 고맙 구만요."
출국이라는 희망 앞에 세상은 낯설게 아름다웠다. 매일 지나던 골목길도, 무심한 우체부와 낡은 자전거조차 도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부뚜막에 소주병을 쌓아놓고 드러누운 아버지, 도로포장공사로 지친 어머니, 미장원을 꾸려 생계를 책임지는 누나, 그리고 세 명의 동생들, 일곱 식구의 목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골목길을 향해 길게 늘어졌다. 출국, 궁색한 삶 속에서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김포공항
낮으막한 김포공항은 해외로 출발하는 노동자 보다 훨씬 많은 출영객들로 북적거린다. 해외 건설노동자 평균 3~5명의 직계 가족과 일가친척들이 오다 보니, 번잡함과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별의 터미널이다. D산업 인솔자인 관리과 강계장을 중심으로 모인 출발 동기는 약 20명 남짓이다. 간략히 탑승절차와 환승에 대한 안내와 여권 그리고 탑승권을 배부한다.
"사우디는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던데. 우찌 까이에...."
딱히 할 말이 없는 어머니는 혼잣말을 되풀이한다.
꼭 떠나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는 어머니와 누나는 눈물을 흘릴 것이다. 애써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입국장에 들어선다. 이 담담한 무엇일까. 평화스럽지 못한 집에서 탈출한다는 편안함이 반이다. 나머지 반은 어머니의 얼굴에 깊게 파인 가난을 벗어나고 싶은 담담한 다짐 일 것이다.■
∎ 참고 문헌 및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