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 페르시아만을 걷다, 라히마 캠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셀 푸루스트|프랑스 문학가-
▬홍콩 간다
"홍콩 간다"는 몽롱한 즐거움을 뜻하는 오래된 비속어이다. 김포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3시간 후 홍콩 카이 탁|Khai Tak| 국제공항 착륙을 위해 홍콩 섬을 서서히 선회한다. 500미터 상공은 세상의 앞면만 보고 살아온 나에게, 세상의 윗면을 바라보는 포용력을 주었다. 구룡반도와 홍콩섬의 고층빌딩 그리고 태양의 에너지와 지구가 만들어 내는 저녁노을의 환타지아는 경이로운 삶의 미학|美學|이였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땅딸막하고 수완 좋게 생긴 김사장이 공항 픽업을 나왔다. 카이탁 공항의 세련된 여행객들의 옷차림과 나이롱 와이셔츠에 잠바 그리고 헐렁한 바지에 허리띠를 대신한 넥타이 패션은 도저히 섞일 수 없는 경계를 긋고 있었다. 말쑥한 싱글 양복으로 차려입은, 관리과 강계장은 노동자 일행과는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관리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공항을 빠져나온 노동자 일행은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연결하는 해저 터널을 지나 숙소인 New World Hotel¨에 도착한다. 럭셔리 5성 호텔과 노동자의 빈티지룩|Vintage Look|¨, 이 어색한 조합은 홍콩의 꿉꿉한 더위와 뭉개져 답답한 저녁시간이 된다.
¨New World Hotel: 지금의 홍콩 New millennium Hotel로 예상됨
¨빈티지룩: 오래되고 낡은 의미의 옷차림을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됨
30분여의 호텔 Check In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5성 호텔에 익숙한 신사 숙녀들을 피해, 중동 건설 노동자들은 구석 자리에서 쭈구리 자세로 방 배정을 기다린다. 해외개발공사가 실시한 2박 3일간의 소양교육 덕분일까, 동방예의지국의 체면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 가난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홍콩의 밤은 슬픔이다
저녁 식사는 기내식으로 대체되었고, 이제 상냥함으로 단련된 김사장의 본색이 드러날 시간이다. 그는 능숙하게 호텔 Check In을 마친 후, 본인 운영하는 백화점에 안내한다고 한다. 본인 소개에 따르면, 패망 전 월남에서 큰 사업을 했고, 패망 후 사업지를 홍콩으로 옮긴 사업가라 한다. 베트남에서 한국 참전용사를 상대로 사업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유능한 사업가는 돈 냄새에 민감하다. 한국 노동자들이 단체로 홍콩에 숙박하는 것을 사업에 이용하는 것이다.
좁디좁은 골목을 돌아 돌아 도착 한 김사장의 백화점은, 허름한 빌딩 1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50년은 되어 보이는 기계식 엘리베이터 셔터문을 열고, 딱 내린 백화점은 60촉 전구 하나로 버티는 점빵이였다. 2~3평 되는 좁은 공간에, 중공|中共|에서 만들어지는 한약재 그리고 남자들이 환장한다는 물건들이다. 우황청심환, 해구신, 낙타눈썹, 이름도 알 수 없는 각종 정력제...... 이런 것 들이다. 아~ 홍콩에도 낙타가 많은가 보다.
“이거 좀 드셔봐요, 밤새는 건 별거 아니거든요.” 원화도 좋습니다. 달러도 받습니다.
수완 좋은 김사장은 온갖 사탕발림으로 꾸깃꾸깃 숨겨온 노동자들의 의 비상금과 쌈짓돈을 탈탈 털었다. 이제 쇼핑도 끝났고 홍콩의 밤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그의 인도로 따라간 곳은 여종업원이 맥주를 따라주고, 권하기도 하는 걸스 바|Girls Bar|였다. 술집은커녕 술 한 잔도 마셔본 적 없는 열아홉 살 공고생¨은 동행해도 되는 건지, 문턱 앞에서 잠시 망설인다. 그래, 김 사장에게 뜯긴 돈이 얼만데.... 이왕이면 뽕을 뽑아야지.
¨공고생: D산업이 전국 8개 공고에 위탁 훈련 후 채용한 건설노동자
우르르 몰려간 술집에는 라운드 형태의 Bar가 여러 곳이 있고 그 가운데는 왜소한 체구의, 수영 빤스 차림의 스물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누나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 사이에서, 싸구려 술 한잔 값의 미소를 띠며 맥주나 칵테일을 서빙하고 있었다. 저렴한 술접대에 익숙한 김사장은, 간결한 미군부대식 영어와 음담패설로 손 한 번 잡히기도 바쁜 누나를 희롱하며, 살짝살짝 작은 산봉우리도 두드린다. 웬일일까.... 지상 낙원이라 불리는 홍콩의 밤은, 화려함 속에 묻힌 홀딱 벗은 누나만큼의 슬픔이었다.
▬오~ 신세계
전쟁으로 막 깨어난 나라의 집안 형편을 말하면 연탄아궁이는 중류층이고 나무로 난방이나 요리를 하던 시절이다. 왕성한 육아 생산력으로 식구도 많다. 평균 5명에서 6명이다. 이러니 단칸방의 살림은 그저 발 뻗고 잘 수 있다면 그만이다. 화장실은 어떤가. 어휴 그 냄새는 지금도 시큼하게 기억된다. 집주인과 셋방 식구 다 합치면 20명이 됨직한 사람이 좁은 푸세식 변소 하나를 사용하고, 신문 쪼가리가 한 묶음 벽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아침이면 수도꼭지 하나에 매달려 머리를 감는다, 세수한다, 난리가 난리 아니다.
흐그미~ 배정된 호텔 방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신세계가 보인다. 창문 너머로는 구룡만의 바다가 보이고, 밟고 걷기도 미안한 푹신한 빨강 양탄자, 일곱 식구 모두 누어도 될법한 킹사이즈 침대, 말로만 듣던 칼러 TV와 냉장고...
"신세계란 이런 거야."
"아~ 그래 홍콩, 이 맛이야."
화장실은 또 어떤가. 뜨거운 물이 팡팡 나오는 욕조와 백설탕 같은 양변기, 와~ 보들보들 두루마리 화장지, 그리고 향긋한 비누와 샴푸도 있다. 좁은 단칸방에서 무거운 솜이불 하나로 살아온 건설 노동자에게, 오성급 호텔의 푹신함은 신천지이었다. 다시 찾아올 것 같지 않은 푹신함을 오래오래 누리고 싶다. 쏟아지는 잠을 쫓으려 침대와 화장실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밤을 꼴깍 새워버렸다.
▬수건 놓고 가라 해, 우리 살람 못 산다 해
잘 차려진 아침 뷔페에서, 20년 동안 먹은 고기보다 더 많은 고기와 기름진 음식을 토할 때까지 쟁이고, 밤새 격은 5성급 호텔의 무용담을 꺼낸다.
"아 5성급이면 뭐 하나, 이불도 없어 오들오들 떨고 잤는데."
서울 박 씨다. 침대 침구 위 두꺼운 커버를 벗기지 못하고 그냥 맨몸으로 주무신 모양이다.
"똥이 안 나와유~"
양변기를 사용하면 똥을 눌 수 없어, 양변기 위에서 쪼그리 일을 보셨다는 천안 이 씨도 고통을 호소한다.
"역시 술은 양주 인기라"
절대 호텔방에 비치된 미니 바를 만지면 안 된다는 강계장의 교육에도, 쪼그만 양주병 두어 개 털어 먹은 도장공 염 씨는 호들갑을 떤다. 비상금을 몽땅 털어 술값을 낸 강계장은 여행 내내 도장공 염 씨에게 온갖 악담을 퍼부었다.
첫날밤의 홍콩은 기대만큼이나 많은 이야기와 웃음을 남기고, 우리는 카이 탁 공항으로 향한다. 다급히 공항을 따라 나온 호텔 지배인 소리를 지른다.
"우리 쌀람 못 산다 이거 , 호텔 비품 돌려줘라 쏼라 쏼라."
너도 나도 챙겨 온, 쓸모가 많아 보이는 두툼한 수건세트, 똥꼬가 편안한 화장지, 이쁜 사촌 누나가 생각나는 비누, 머리카락 포송 포송한 샴푸, 한번 쓰고 버리기엔 너무 고급진 치약 칫솔 알뜰히 챙겨 온 것이다.■
∎ 참고 문헌 및 관련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