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제비족 65명 검거”

시즌 ⌜3⌟ 홍해의 햇살아래, 얀부 캠프

by 아문선

그대들이 흘리는 땀 그냥 흘리는 땀이 아니라 조국의 산과 강을 적시고 곡식을 자라게 하는 그 힘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밀물|1983년 10월호|해외건설 역군들에게|장계순|시인-



전국의 제비족 65명 검거

[밀물] 지 나라안 소식에 인용된 1984년 신문 사회면 기사내용이다.

"치안본부는 제비족에 대한 특별 단속을 펴서 5월 14일 현재 전국의 제비족 65명을 검거, 이중 55명을 구속하고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발표했다."

중동 건설 붐으로 인해 대한민국 남성 20만 명이 집을 비우자, 그 공백을 틈타 "신종 제비족"이라는 직업이 생겨났다. 중동 특수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사회적 풍경이었다.


1970년대, 한국의 카바레는 중년 남녀가 춤을 추며 일상의 억압을 풀던 공간이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카바레는 단순한 유흥을 넘어 해방과 위로를 상징하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빙글빙글 도는 춤 속에는 시대의 긴장과 욕망이 배어 있었다. 긴 세월을 독수공방으로 지내야 했던 중동 건설 노동자의 아내에게도, 한 번쯤은 그런 유혹이 찾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붉고 푸른 조명이 어우러진 어두운 실내에 반짝이는 조명과 디스코볼이 우선 혼을 빼놓는다. 달콤한 블루스곡 이 연주되고, 나팔바지를 입은 젊은 사내가 정중하게 손을 내민다.

"Shall we dance?"

"어머나 세상에나!"

평생 땀냄새 절인 작업복의 노동자 남편만 보다가, 깜장 정장에 포마드를 발라 단정히 머리를 정리한 남자라니 현기증이 난다.


일 년 만기 계약기간을 마치고 귀국하려는 남편에게, 일 년 더를 권하고, 오일 달러는 통장에 꽂히는 족족, 제비족 용돈으로 사라진다. 남편들은 사막에서 땀 흘리고, 아내들은 뜨거운 조명 아래서 땀을 흘렸다. 속이 탄 중동 노동자들은 제비족을 뿌리째 뽑아 달라며 신문사에 연판장을 돌렸다.


관 가정 지키기 운동

딱 한번 카바레 문턱을 넘는 순간 제비의 달콤한 속삭임과 날렵한 스텝에 그만 다리가 풀려 버린다. 다리가 풀려 정신이 혼미한 노동자의 아내가, 오일 달러를 팡팡 써버리고, 중동 노동자는 조기 귀국한다고 노무과에서 난리를 친다. 그래서 회사가 나서고, 지자체가 나서고, 정부가 나서고 그리고 언론이 "가정 파괴자 타도"를 외치며 양팔을 걷어 부친 것이다. 중동 노동자의 가정을 지키자! 오일 달러를 지키자!


앗! 이러다 "잘살아 보세" 성장 동력인 중동 건설 붐에 위협을 느낀 정부는, 즉시 "사회악 척결"이라는 이름 아래 제비족 단속에 나선다. 해외 건설사들은 ‘가정보호 전담부서’를 신설해 아내들에게 정신교육을 실시했다. 지방자치단체도 팔을 걷어붙이고, 해외 취업자 가족을 초청해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육에 열을 냈다. 그야말로 국가 총동원령을 내린다. 재수 없는 100여 명의 제비족은 잡히고, 아내는 교육받고, 남편은 다시 사막으로 출발한다.


건설 노동자가 많이 사는 성남시가 가장 적극적이다. 관내에 살고 있는 해외취업자 가족 1천300명을 초청, 정신교육을 실시한다. 또한 시는 이를 계기로 각 동 사무소와 시청 등 30개소의 고충상담소를 설치, 취업자 가족의 관리 대장을 만들어 "가정 지킴이"로 나선다. 가정을 지켜야 오일 달러를 벌어들이는 중동 건설시장을 지킬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작은 마당이 내려다 보이는 축대집

사실, 중동 건설 노동자의 아내들에게는 아름다운 사연, 눈물 나는 사연이 많은 편이다. 한 노동자 아내의 수기에 따르면, 남편이 신혼 몇 달 만에 해외로 떠나자 그녀는 시간제 파출부 일을 시작했다. 열사의 먼 이국에서 땀 흘려 일하는 남편이 보내주는 돈을 그저 앉아서 받아 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파출부로 일하며 눈물 나는 일도 많았지만, 남편이 보내주는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하여 작은 집을 마련하겠다는 꿈을 키워나갔다. 남편의 땀이 밴 오일달러가 아까워 리어카를 사서 행상을 시작한 아내도 있었다.


남편이 보내오는 오일달러는 단순한 돈이 아니다. 그 속엔 사막에서 흘린 땀과 고된 노동의 시간이 담겨 있다. 아내는 그 돈을 쉽게 쓰지 않는다. 셋방살이의 기억을 품은 채, 작은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축대집을 꿈꾸며 한 푼 한 푼을 모은다. 파출부 일을 하며 거칠어진 손, 리어카를 끌며 맞은 찬바람도 모두 그 꿈을 위한 과정이다. 남편의 땀과 아내의 눈물이 만나, 어느새 그 집은 현실이 된다. 그 집은 중동에 흘린 남편의 땀과 아내의 굳은 마음이 엮어낸 삶의 보금자리이다. 축대 위의 작은 집, 층층다리를 올라 마당에 서면,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고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 수 있었다.


해외취업자들이 청취하던 KBS 국제방송 ‘라디오 한국’의 신청곡 1순위는 트로트의 4대 천왕 중 한 명인 현철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그리고 34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하수영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였다. 중동 건설 현장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과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은 남편, 행상을 하고 또는 파출부로 남편의 소중한 땀방울을 지키는 아내, 그런 모습들이 바로 중동 건설 붐 시대의 진짜 남편과 진짜 아내의 참모습이었을 것이다.




참고 문헌 및 인용 관련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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