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3⌟ 홍해의 햇살아래, 얀부 캠프
-대한민국 헌법 전문 발취-
▬23세 청년은 타버렸다
공고생 "진우"는 초고압 차단기를 맨손으로 만졌다. 고압 전류는 그의 손과 팔을 지나 두발을 거쳐, 지구로 흘러간 것이다. 전류가 흐른 팔과 다리 그리고 온몸의 털들은 재가 되어 그의 몸을 떠나고 영혼이 없는 작음 몸만 누워있었다. 24kV 고압 차단기 커미셔닝|Commissioning¨| 작업을 아크 플래시 보호복이나 절연 장갑 없이 진행한 결과였다. 절연화나 고무 매트조차 갖추지 않은 채 작업에 나섰고, 참혹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했다.
¨Commissioning: 발전소, 정유 플랜트 등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최종 검증 절차
안전사고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듯하지만, 그 시작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 그는 계약된 귀국 날짜를 넘긴 채, 여전히 현장에 머물고 있었다. 준공 일정을 맞추기 위해 귀국을 두 달 연기한 선택....그 선택은 결국, 되돌릴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그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두고 사람들은 "귀신에 씐 듯했다"라고 표현했다.
만약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귀국"이라는 설렘과 "귀국연장"이라는 심리적 공허함 없이 냉철한 정신으로 작업에 임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안전 절차를 어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원 차단과 에너지 격리, 절연 상태 점검, 작업 구역의 방호벽 및 출입 통제선 설치, 2인 1조 감시 체계, 등급별 안전거리 준수, 이 모든 것을 지켰을 것이다. 또, 작업 전에는 절연장갑을 착용하고, 절연화를 신고, 고무 매트를 깔았을 것이다.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 여자 친구와의 약속, 그 감정들이 그를 심리적 탈선 상태로 만들었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되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진실은 눈물 속에 숨어 버렸다
얀부 정유공장 건설 현장은 설치 공사의 공정률이 95%에 도달하며, 설비 시운전을 준비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시운전은 설계 및 설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확인하고 수정하기 위한 마지막 절차로, 테스트|Test|와 커미셔닝|Commissioning|으로 구성된다. 이 과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설계 도면을 정확히 이해하고, 시험 절차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험 책임자, 즉 TIC|Test In Charge|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장 필수 인력으로 평가받던 "TIC 직책의 진우의 귀국 연장은, 준공 일정을 맞추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것이 담당 현장 책임자의 설명이었다.
24 kV급 고압 진공 차단기|VCB|의 커미셔닝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설치·배선·보호계전·제어로직까지 전반을 검증하는 절차이다. 전력계통에 전원을 투입하기 전,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안전 보호구도 없었고, 커미셔닝을 마치지 않은 차단기에 부하가, 왜 인입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진우의 귀국을 말렸던 현장 책임자는, 본인의 잘못이라고 눈물을 보이고 있지만, 그에게 진짜 책임을 묻는 사람은 없던 시절이다. 사망 사고의 수습은, "본인의 부주의로 인한 안전사고"로 보고되었다. 한국 정부 역시 이 사고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펼쳐진 중동 건설 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신속한 사건 수습에 힘을 보탰을 것이다.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사망 사고가 발생한 당일, 같은 학교 출신 중동반 친구들이 긴급히 모여 대책 회의를 열었다. 회사 측과 함께 장례 절차와 보상 대책을 논의했고, 노무 주임이 타 현장에서 구해온 추도사를 바탕으로 추도사도 준비한다. 회사 측은 사우디 현장에 파견된 1,200여 명의 공고생들이 동요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성적인 추도사 대신, 현장의 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어용 추도사"를 권장한다. 추도사 낭독 역시 공고생이 아닌 사무소 정직원이 맡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사측에 동문 공고생들은 세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고인을 정직원으로 추서 해달라는 것. 둘째, 추도사의 준비와 낭독은 친구가 맡겠다는 것. 셋째, 본국으로 시신을 운구할 때 친구 대표가 동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죽음을 목도한 누군가는, 친구의 부모님 곁에서 함께 울어줄 친구가 되고 싶었다. 정직원 추서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요구는 사측이 수용하는 것으로 논의가 마무리되었다.
500명을 수용하는 캠프 식당의 식탁과 의자를 치우고, 급히 준비한 영정 사진과 검은 바탕에 하얀 글씨로 된 영결식 현수막을 걸어 장례식장임을 알린다. 노무 주임이 진우의 약력과 안전사고 경위를 읽어나간다. 밤새워 고치고 다듬은 조사를, 동문 공고생이 양복 안쪽 주머니에서 꺼내든다. 그리고 또박또박 읽기 시작한다.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목이 메인 흐느낌이 문장을 끊는다. 조사 중간중간 들리던 훌쩍임은, 이내 십여 명의 동문 공고생들의 오열로 번지고, 장례식장은 눈물바다가 되어버린다.
▬늙은 부모님은 눈물만 보이신다
삼우제|三虞祭|날, 그의 여자친구가 보낸 편지 한 통이 또다시 모두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그녀는 아직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귀국연장은 절대 안 된다"는 부탁이자, 그리움이 꽉 찬 내용으로 편지를 써 내려갔다. 그녀는 혹시 여자만 갖고 있는 예지력으로, 이런 비극을 예견한 것일까?
여자친구와 약속한 귀국 날짜를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여자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앞잡이가 되어, 결국 그를 귀신에 씐 듯한 결과로 이끌었나 보다. 장례를 마친 그의 시신은 차갑고 무거운 알루미늄 관에 안치되어,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고향 길에 오른다.
"진우"는 마른 체구에 중간 키이다. 급하게 말할 때는 조금 더듬는 습관이 있고, 작은 눈으로 웃는 하얀 얼굴의 샌님이었다.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에서 자랐고, 전주공고 전기과를 마쳤다. 그는 부모님 나이 40대에 낳은 외 아들이다. 시신운구 시 동행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에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이 아픔을 가리키는 특별한 단어가 있다. 바로 참척|慘慽|이다. "참혹할 참|慘|"과 "슬플 척|慽|"을 써서,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을 말한다. 흔히 부모를 잃으면 산에 묻지만,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부모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생의 순서 속에서 오는 이별이지만, 자식이 먼저 떠나는 일은 순리를 거스르는 변고이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인 것이다.
▬"SAFETY IS COMMON SENSE!"
건설현장에는 안전에 관한 많은 구호가 자리한다. 사우디아라비이 최대 원유 수출 클러스터인 라스타뉴라 터미널 원유 탱크에는 수 Km 앞에서도 읽을 수 있는 글씨로 "SAFETY IS COMMON SENSE" 안전 표어가 쓰여 있다.
2010년 9월 7일 새벽 2시 충남 논산이 한 철강공장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던 20대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018년 태안의 한 화력발전소에서 한 청년이 컨베어벨트 속으로 사라졌다. 2019년 9월 20일에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2025년 6월 2025년 6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63세 노동자가 배관 철거 작업 중 구조물 붕괴로 인한 추락 사고로 숨졌다. 사망 사고는 계속이어 진다.
대한민국 최고의 식품 제조업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공간. 그러나 그곳에서도 사망 사고는 일어난다. 산업재해는 다시금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이 가장 높다는 발표가 이어졌고, 국가수반은 직접 산재 현장을 찾아 회사의 경영진을 질타하는 모습까지 보도되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문득 되묻는다.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하지만, 그 말속에는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위험을 당연하게 여겨왔는지에 대한 늦은 자각이 담겨 있었다.
산업재해는 "NEVER EVENT"—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고라고 한다. 하지만 중동 건설현장은 달랐다. 당시 신규 플랜트 건설 현장에서는 1~2명의 사망 사고가 마치 의례처럼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그런 최악의 안전사고조차 통과의례로 여겨졌다.
진우의 죽음을 부른 그 사고의 이면에는 "빨리빨리"라는, 중동 건설 붐을 일궈낸 한국인의 자랑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SPEED IS COMMON SENSE"—속도는 중동 건설 현장의 상식이었다. 그것이 중동 건설의 시대를 지배한 또 다른 진실이었다.■
◧참고 문헌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