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호화 유람선”

시즌 ⌜3⌟ 홍해의 햇살아래, 얀부 캠프

by 아문선

⌈“땀 흘려 일해서 버는 돈” 얼마나 떳떳하고 값지고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여러분들이야말로 자랑스러운 이 땅의 전사들입니다.

-밀물|1978년 8월호|중동에 나가 있는 아우들에게|박현서|수필가|KBS 방송위원-



붉은 산호초의 도시 얀부

또 하나의 석유 산업 도시인 얀부|Yanbu|에 배치된다. 신비로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나일강으로 기억되는 이집트 남부의 고대 도시 아스완|Aswan|, 그 아스완과 붉은 산호초의 바다 홍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얀부는, 산업과 관광, 종교적 의미가 교차하는 전략적이며 다면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도시다.


라히마 지역본부에서 현장 배치를 받은 다음 날, 공고생과 일행은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 다하란을 떠나 약 2시간 거리의 젯다|Jeddah|로 향했다. 서부 지역본부가 위치한 젯다 캠프에 도착한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얀부|Yanbu| 현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젯다에서 얀부까지 이어지는 약 350km의 해안 도로는, 마치 우리나라의 국도 7번처럼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로, 이동 중에도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길이다.


호화 유람선

얀부 LNG 플랜트 건설 현장에 배치된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숙소는, 원청사인 아람코가 운영하는 일종의 호화 유람선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고소득 은퇴자들의 로망인 값비싼 크루즈선급의 호화 유람선은 아니다. 이 숙소는 자체 동력 없이 예인선에 의해 이동하며, 일정 지역에 정박해 운영되는 해상 바지선|Barge| 캠프이다. 얀부 해상 캠프에는 한국인 노동자가 약 70%를 차지하며, 소수의 미국 및 영국 출신 감독관과 필리핀, 인도 출신의 발주처 근로자들도 함께 생활하고 있다.


바지선 캠프는 약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해상 거주 시설이다. 5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층에는 약 200개의 3인실 숙소가 배치되어 있다. 선미에는 오락 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선두에는 층별로 식당이 위치해 있어 생활에 필요한 기본 요소들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 라히마 캠프나 우쓰마니아 캠프보다 한층 더 나은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호화 유람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전 숙소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숙소 청소와 침대 시트 교체를 캠프 관리요원들이 직접 담당한다는 점이다.


휴일 늦은 오후, 바지선 데크 난간에 기대어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았던 홍해의 풍경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수면 위로는 수많은 멸치 떼가 군무를 펼치고, 저녁 햇살에 물든 붉은 산호초의 바다는 점점 황금빛으로 물들어간다. "해외노동자"라는 이름, "가난과 도전"이라는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바다와 하늘, 그리고 바람이 함께 만들어낸 이 풍경은, 거친 사막과 황량함으로 기억되는 중동 건설 현장에서 마주한 뜻밖의 경이로움이었다.


"조건 뛰어라"

얀부 현장 친구의 조언이다. 숙소를 배정받으면 "무조건 뛰어라!" 방 배정을 받는 순간, 총알처럼 달려가 가장 좋은 침상을 차지하라는 것이다. 이름과 방번호가 호명되자마자, 공고생은 이민 가방을 끌고 3층 구석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뒤에서는 같은 숙소에 배정된 또 다른 두 명의 출국 동기가 함께 가자고 외친다.


"공고생, 같이 갑시다~"

성공이다! 홍해 바다가 보이는 싱글베드|단층 침대|는 공고생의 차지가 되었다.


얀부 바지선 숙소는 2층 침대 하나와 단층 침대 하나가 놓인 3인용 시설이다. 공간은 다소 협소하지만, 호텔식 침대에 캐비닛과 책상, 그리고 무엇보다 문만 열면 닿는 전용 화장실과 샤워장이 있어 나름 쾌적하다. "홍해 바다 조망" 싱글베드는 1등으로 도착한 선수의 몫이다. 상석을 차지한 공고생에 이어, 정비공 염 씨 형님이 이민 가방을 툭 던지며 2층 침대 아랫칸을 점령한다. 꼴등으로 도착한 안성 출신 도장공 서 씨 형님은 영문도 모른 채 이층으로 기어오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날렵한 체구 덕분에 오르내리는 데 큰 불편은 없었고, 몸무게가 가벼워 침대가 내는 소음도 크지 않았다.


바지선 캠프의 근로자는 전원 한국인이었다. 그들은 별도의 에이전트를 통해 선원으로 취업했으며, D산업 노동자에 비해 약 50%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업무는 주방, 청소, 세탁 등으로, 일종의 하우스보이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호화 유람선'이라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지만, 기대했던 팁은커녕 한국인 노동자를 수용하는 해상 캠프라는 현실에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일부는 약간의 용돈벌이로 금기된 돼지고기나 술을 몰래 거래하기도 하며, 바지선 캠프 너머에서는 닭다리를 끼운 갈고리낚시로 생선을 잡아, 휴일에는 무허가 횟집을 운영하기도 한다.


문전옥답, 홍해

뜨거운 모래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 그러나 페르시아만이나 홍해에 위치한 현장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홍해는 더욱 그렇다. 초고추장만 준비하면, 휴일마다 바다의 진미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문전옥답, 홍해 바다에는 홍어문어도미가오리낙지꽁치병어가 있고, 바닷가에는 소라조개 그리고 맛살까지—그저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 아랍인의 식문화는 생선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으며, 특히 비늘 없는 생선이나 어패류는 아예 금기시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홍해 바다는 말 그대로 "물반 고기반"이다.


장비는 간단하다. 항구도시 공고 출신 친구들은 작살을 준비한다. 바다가 무서운 육지 출신 공고생 친구들은 깡통을 준비한다. 자연산 생선과 조개가 부르는 문전옥답은 걸어서 10분이다. "생선은 작살로 잡아야 한다고 했던가!" 목포공고 용접공 영수와 전기공 문흠이의 활약이 도드라지고, 바다라고는 사우디에서 처음 만난 육지 출신 공고생은 열심히 소라나 조개를 주워 담는다. 생선회, 훈제생선, 삶은 소라.... 휴일의 식탁은 해산물 뷔페로 풍성하였다.


한 가지 더 있다. 귀국 준비에 필요한 산호초를 꺾는 일이다.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는 이들이 말하길,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는 홍해에 있다고 한다.


맨눈으로 들여다본 홍해 바닷속 세상은 형형색색의 산호 군락이 끝없이 펼쳐져 또 다른 신천지였다. 바다는 겉으로 보기에 어둡고 거칠지만, 그 속은 햇빛과 산호초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정원이다. 그 환상도 잠시, 한 손에 망치를 들고 모양 좋은 산호초를 공략하기 시작한다. 수백 년에 걸쳐 자라난 산호초들이, 한국 노동자들의 귀국 준비에 쓰러져 간다. 注) 산호초 채취는 불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문 바다 사나이들도 있다. 얀부캠프의 스타는 진도 출신 보온공 오 씨와 UDT¨ 출신이라는 비계공 박 중사이다. 오 씨는 섬마을 진도에서 자라고, 집안이 어업인지라, 그의 솜씨는 "물 만난 제비"이다. 그래서 별명도 "오 낙지"이다.

"낙지 형님, 낙지 몇 마리 잡았어요?"

"어제는 영 판이다."

"낙지 8마리에 꽁치 두 마리라니까..."


UDT 박 중사는 곱슬머리에 175센티의 단단한 체구, 먹성도 좋은 사십 대 중반의 상남자이다. 휴일이면 그는 바다로 향한다. 손엔 작살, 발엔 오리발, 머리엔 물안경을 쓴 채 홍해를 지킨다.

¨유디티|UDT|: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전단의 약칭으로, 해상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부대.


목표 한격 VS 부산 허치

내가 만난 건설 현장의 호걸은 목포에서 온 한격 십장과 부산 출신 허치 십장이다. 얀부 LNG 현장 모듈 A를 총괄하는 한격 십장과 모듈 B를 총괄하는 허치 십장의 이야기이다. 한격과 허치, 모두 실명이다. 한격 십장은 180센티를 넘는 거구에 대단한 체구이다. 눈은 부리부리하고 대추빛 얼굴에 아마 삼국지의 장비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허치십장은 샌님 스타일이다. 178센티 정도 키, 균형 잡힌 몸매, 하얀 얼굴이 인상적인 선비풍이다. 삼국지의 관우 랄까. 말씨도 조용조용하다. 왕년에 건달이라고 보기 에는 선한 이상이다. 사실 짖지 않는 개가 더 무섭다.


"암마 요 호로새끼 좀 바라이. 나가 시방 뚜껑 열려 부러 야. 그랑께 니가 뎀비는 거 맞제? 참말로 해부까나?" 목포 주먹 한격의 일갈이다.

"와 이리 열 받아있노? 누가 뭔 지랄을 해 뿌렸길래 뚜껑이 열려불었노?"

부산 주먹 허치의 조용한 응수다.


자전거 체인으로 목포를 먹었다는 한격과, 아무 말이 없는 부산 허치의 앞에 3,000명의 건설 노동자들은 두 목동에 이끌려 사막을 떠도는 양 떼에 불과했다.


삼각관계

정비공 염 씨는 인천 깍쟁이다. 단정하고, 민폐도 끼치지 않고 또한 명확한 관계를 중시한다. 그의 취미는 사진이라고 한다. 틈만 나면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된 이미지를 분석하고, 공부하는 모습이다. 또 가끔은 홍해 바다 수중 촬영도 간다. 사진 찍는 법을 물어보면 그의 대답은 똑같다.

"필름 한 가마니를 쓰고 다시 물어봐."

기름 떼를 먹고사는 기능공이지만, 배울만한 인생 선배였다.


꼴등 안성 서 씨 형님은 재혼을 했단다. 이혼한 첫 부인과 사이에 5살 딸아이를 두고 있다. 총각인 줄 알고 결혼한 재혼한 부인이 죽네 사네 난리를 쳐 사우디로 도망 왔다는 속사정을 말한다. 그분은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착하디 착한 분이다. 나보다 10살은 많지만,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할지라면 얼굴부터 빨개지는 순둥이다.


인천 염 씨 큰 형님, 안성 서 씨 작은 형님, 그리고 공고생은 특별한 존경심으로 맺어진 삼각관계 속에 있었다.

밤늦게까지 불을 켜고 책장을 넘기며 부스럭거려도 두 형님은 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인생의 선배로서 부족함이 없던 인천 큰 형님, 침대에 오르다 미끄러졌을 때조차 부끄러움이 먼저였던 안성 작은 형님, 그 두 분과 나눈 우정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는, 따뜻한 삼각관계였다.




참고 문헌 및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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