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3⌟ 홍해의 햇살아래, 얀부 캠프
⌈모든 금기나 금기 사항은 아랍에서 "하람"이라고 한다. 살인이나 간음, 도둑질 외에도 도박, 폭동, 동성연애, 노조결성, 파업, 기타 부도덕한 행위를 금한다.⌋
-밀물|1978년 1월 창간호|아랍인의 생활과 풍습|이행래|한국이스람교|사무차장-
▬왠, 새마을 운동이래?
라히마 캠프에 도착한 첫해 5월, 벽보판에는 큼지막한 공고문이 걸렸다. "새마을 협의회 창립" 안내였다. 사측과 노동자 간의 정기적인 대화를 통해 노동자의 불편 사항을 해결하고, 명랑한 해외 건설 생활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모든 노동자에게 새마을 회원 자격이 주어지며, 회사 측 5인과 선출된 노동자 5인이 대표가 되어 총 10인의 위원회를 구성한다. 노측 대표가 위원장을, 사측 대표가 부위원장을 맡는다. 상호 뜻을 모아 새마을 정신 아래 회사와 취업자 간의 이해와 협조를 도모하고, 회원들의 복지 문제, 신상 문제, 다양한 건의 사항을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다.
캠프의 각 동¨ 마다 건의 노트 비치하고, 건의사항 중, 공익 안건을 가려 본회의에 상정한다. 새마을 회관도 건립한다. 휴일 아침이면 또 "새벽종이 울렸네" 그리고 "잘살아보세" 건전 가요가 흘러나오고, 휴일 아침에는 쓸어봐야 모래인 캠프 주변 청소도 알뜰하게 챙긴다. 대통령 각하가 강조하는 새마을 기본 정신인 근면|勤勉|•자조|自助|•협동|協同| 슬로건도 큼직 막게 정문을 장식한다.
¨동: 각 동에는 4개 숙소로 구성된 가건물로 총 32명이 기거함
평생 국민학교 줄 반장도 맡아본 적 없는 미장공 윤 씨도, "새마을 위원회"라는 재봉 글씨가 선명한 노란 완장을 오른팔에 차고 힘찬 걸음으로 양손을 휘젓는다. 역시 말 많기로 유명한 비계공 배 씨는 노동자 측 대표로 선출되며, 거의 부소장급의 신분 상승을 이룬다. 늘 불평과 불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던 그는, 어느덧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잘 살아보드라고잉"을 외친다. 그렇게 배 씨는 새마을 운동의 화신이 되어간다.
▬"새벽종이 울렸네"
사막에서 활짝 핀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초, 농촌의 생활환경 개선과 조국 근대화, 그리고 자립심 고취를 목표로 시작되었다. 민족의 지도자였던 대통령 각하는 못하시는 게 없는 다재다능한 분이었나 보다. 새마을운동을 직접 기획하셨을 뿐 아니라, 여기에 사용된 새마을 노래까지 작사•작곡하셨다고 한다.
이어서 "잘살아 보세"라는 당대 최곡의 히트곡도 발표된다. 전국적으로 실시된 새마을 가꾸기 사업은 마을길을 넓히고, 초가지붕을 개량하며, 담장을 보수하고, 다리 등 공동시설을 정비하는 데 집중되었다. 새벽종만 울리면, 아버지는 삽과 괭이를 들고 뛰쳐나가고, 어머니는 아침 식사 준비로 분주해진다. 공고생은 빗자루를 들고 마을길 청소에 나선다.
대한민국이 창조한 새마을운동은 개발도상국의 농촌 개발 모델로 수출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150여 개국에서 벤치마킹되기도 했다. 2010년경, 몽골 울란바토르 도시교통제어사업차 방문했던 어느 날, 울란바토르 외곽 지역에서 한글이 선명하게 적힌 새마을운동 표지판을 발견한 기억이 있다. 러시아어, 한국어, 영어로 쓰인 안내판에는 ‘새마을운동 나랄이흐 시범마을’이라는 문구와 함께, 떡잎 세 개가 상징인 새마을운동의 심볼이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지키고 있었다.
▬주베일 7일 혁명
1976년 6월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와 H건설 왕회장님은, 대한민국 국가예산의 25% 달하는 9억 6천만 달러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 계약을 체결한다. 대통령 각하도 "임자 이번에 나라를 위해 큰일 했어"라고 칭찬을 받은 사업에도 흑역사가 있었다.
호안공사나 방파제등 바다 매립 및 도로공사에는 중장비가 큰일을 한다. 어라 ~ 1977년 3월 어느 날, 중장비와 덤프트럭이 정속도 운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화가 난 중기부장이 덤프트럭 기사 한 씨를 불렀다.
"와~그라노?" "덤프가 왜 기어다니노?" 바짝 쫄은 덤프 한기사가 더듬거리며 답변한다.
"부장님요, 옆 D건설은 월급여가 450불이랍니다." 말 나온 김에 용기 내어 한마디 더 한다.
"똑 같이 일하고 우리는 350불 아닙니까."
순간 눈에 불꽃이 번쩍~ 중기부장의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덤프기사의 싸다구를 날린다.
엉엉 울며 손자국이 선명한 얼굴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덤프 기사 및 동료들이 사유를 물었다. "여차 여차 싸다구를 맞았더래요!" 프랑스혁명도 빵값 폭등이 민중 분노를 폭발로 시작하였고, 재스민 혁명도 26세 청년 노점상이 경찰의 부당 단속과 폭행을 당한 뒤, 생계 절망 속에 분신자살을 시도한 사건이 발단이다.
다음날 현장은 올 스톱이다. 중장비, 덤프트럭 기사 모두 파업을 결정한다. 급기야는 중장비를 앞세워 현장 밖으로 행진하는 사태로 번지고, 사태수습을 위해 다급히 파견한 본사 임원이 흠뻑 맞아 터진다. 사태는 점점 수습 불능 상황으로 돌변한다.
한국 대사관의 요청에 따라 중무장을 한 사우디 지역 방위군이 강제 진압을 한다. 주베일 노동자 혁명은 H건설의 스타 이 MByte 사장과 5.16 군사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유 대사님의 신속하고, 강경한 결단으로 7일 만에 막을 내린다. 폭동 노동자와 사측의 합의된 조건은 당연히 휴지 조각이 되고, 주모자는 한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북 괴뢰의 사주를 받은 불순 분자라는 혐의가 그 이유이다. 불순 분자들은 인간 개조 공장인 남산을 향한 후, 그 이후는 아무도 모른다.
▬페르시아만에서 불어오는 소문
"주베일 7일 혁명"이 사우디 아라비아 지역방위군에 제압되고 20여 일 지난, 1977년 4월 12일 공고생도 라히마 캠프에 도착한다. 라히마는 혁명의 성지 주베일에서 1시간 거리이다. 도착하자, 여기저기 웅성거린다.
하지만, 주베일 혁명 소식은 점점 이상한 소문으로 까지 발전한다.
말이 많은 제관공 배 씨가 귀속말로 속삭인다.
"글쎄 말이야.... 이건 비밀인데, 현대 건설 의무실의 여간호사가 분규의 원인이래. 정 직원들에게는 온갖 아양을 떨지만, 노동자가 가면 말도 안 하데."
말없기로 소문난 비계공 강 씨도 한 말씀하신다.
"그게 아니고, 정직원 식당은 식사가 끼니마다 고기반찬에 흰쌀밥 이래."
주베일에서의 7일, 건설 노동자들의 외침이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흘린 눈물은 사막을 적셨다. 주베일 혁명 투사들이 흘린 그 눈물과 분노의 모래바람은 노래가 되어, 사우디아라비아 현장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비록 혁명은 사우디 정규군에 제압되었지만, 그 외침은 20만 중동 근로자의 임금과 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남겼다.
약 10%의 정도의 시급이 인상되고, 식당 반찬이 달라졌으며, 노무과장도 부드러운 남자로 변신한다. 노동자의 시급과 반찬까지 챙겨준 새마을협의회, 그리고 이름도 명예도 없이 사라진 주베일 혁명의 동지들—고맙습니다.■
◧참고 문헌 및 관련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