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헤이~ 공고생, 어떡할 거야”

시즌 ⌜3⌟ 홍해의 햇살아래, 얀부 캠프

by 아문선

나와 대원들은 남극 얼음 속에 2년이나 갇혀 살았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꿈을 버린 적이 없다.

-자서전|어니스트 새클턴|27명 전원 생존기-( Shackleton 1874~1922)



그 나이에 무슨 대학

특례보충역 편입 후 만 5년이 지나, 보충역 해제가 결정된다. 현역 병사로 치면 전역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 D산업에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전국 8개 공업고등학교에서 파견된 약 1,200여 명의 공고생들 가운데 진로는 반반으로 갈린다. 절반은 D산업의 해외 현장에 잔류를 선택하고, 나머지 절반은 회사를 떠나는 것이다.


가장 많은 선택은 D산업 해외 현장에 계속 근무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5급 기사로 승진하며, 근무 여건도 좋아지고 급여도 국내 유사 직종보다 몇 배나 많다. 안정된 소득이 보장되는 조직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회사를 떠난 공고생들은 중동 건설 현장에서 모은 오일달러를 밑천 삼아 개인 사업을 시작하거나, 국내 타 기업체에 취직한다.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 나이에 무슨 대학이냐”는 주변의 충고는 듣는 둥 마는 둥, 넘들 졸업할 나이에 대학 캠퍼스를 걷거나, 잔디밭에 앉아 책을 읽는 대책 없는 꿈을 꾼다.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7년을 보내고 복학한 공고생을, 막 입학한 신입생들 사이에서 그는 조교나 조교수로 오해받을 만큼 폭삭 늙은 얼굴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3학년, 만 27세 동문이 최고령이었는데, 갑자기 1학년 복학생이 28세로 등장하니 동문회 족보가 꼬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절박함이 있다

변두리 단칸방의 초라함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어머니의 잡다한 노동으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부채, 아직 학업 중인 세 명의 동생, 혼기가 꽉 찬 누나, 소주병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아버지, 그리고 그 모든 삶의 무게가 눌러앉은 단칸방에서 공고생은 도망치듯, 중동 건설 노동자의 길을 선택했다.


중동 건설 노동 현장에는 ‘싸다구를 맞거나’, ‘조인트를 깔릴 수 있는’ 정직원과 계약직 사이의 신분 차이가 존재했다. 그것은 단순히 처우나 급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은, 삶의 방향에 대한 질문이었다.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삶이 후회로 가득 찰 것 같은 절박함이 늘 심장을 흔들었다.

“헤이~ 공고생, 어떡할 거야?”


라히마 현장으로부터 30분 거리의 다하란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표적인 명문 대학 "석유대학" 이 있다. 공식 이름은 King Fahd University of Petroleum & Minerals |KFUPM|, 우리글로 해석하면 킹 파드 석유 및 광물 대학교 인 셈이다.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 2025년 기준 전 세계 67위,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는 1위에 랭크되었고, 특히 석유공학 분야에서는 QS 세계 순위 5위, 지질·광산공학 분야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며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QS 세계 대학 순위:영국의 교육평가 기관인 Quacquarelli Symonds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대학 평가지표


지금은 우리 건설사들도 초고층 빌딩, 석유, 발전, 담수화 등 다양한 플랜트 공사의 EPC|설계·조달·시공|를 수행한다고 한다. 하지만 1970년대만 해도, 우리 건설사는 미국의 플루어|Fluor|, 벡텔|Bechtel|, 그리고 일본의 치요다|Chiyoda| 같은 세계적인 EPC 건설사들의 단순 하청업체에 불과했다. "그래, 석유에너지 분야 전문가가 되는 거야."


어느 날, 현지 영자 신문에서 다하란 석유대학을 소개한 기사를 우연히 읽었다. 그날밤, Webster 영영사전의 예문과 명언들을 골라 감동적인 한 편의 편지를 완성한다. 진실한 소망을 꾹꾹 담아, 석유대학 학생처 앞으로 보냈다. “혹시 저도 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까요?” 한 달쯤 지나, 사우디아라비아 석유대학으로부터 답장이 도착한다. 콩당거리는 기대로 봉투를 개봉하자,

"Admission is available only to Saudi Arabian citizens."

"입학은 사우디 국적자만 허용합니다."


아메리칸드림

진로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석유 관련 학과가 잘 갖춰져 있고, 학비와 유학 여건이 비교적 좋다는 소문이 텍사스주를 향한 나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대학이 요구하는 입학 조건을 살펴보니 TOEFL 점수가 필수였다. 영어는 늘 나의 약점이었지만, 피할 수 없다면 부딪쳐야 했다. 일 년쯤 그렇게 독학의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TOEFL 시험에 응시한다.


TOEFL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얀부 시내 은행에 들러 여행자 수표를 구입하고, 꼼꼼히 봉투에 담아 TOEFL 본부로 송부했다. 마음 한편엔 작은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이 시험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었다. 시간은 흘러 한 달쯤 지났을까, 너무 이른 회신이 도착했다. 웬일일까? 메시지는 머리가 띠잉~ 하는 내용이었다.

“송부하신 여행자 수표에 책임자 서명이 누락되었습니다. 재발행 바랍니다.”


서명이 빠졌다고? 그 작은 실수 하나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다니! 다시 수표를 발행하고, 다시 송부하고, 다시 기다리고… 또 일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푹 꺼졌다. 급한 마음에 은행 지점장 서명을 받기도 전에 은행창구에서 받은 수표를 보내는 실수를 한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무사히 기간 내 접수가 되고 TOEFL 시험을 치르게 된다.


TOEFL사 시험 안내에 따르면 시험 장소는 젯다의 미국 문화원으로 지정되어 있었고, 그곳까지는 자동차로 4시간 거리였다. 최소 1박 2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업무과 배 계장이 차량과 젯다 현장에 연락해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시험장에는 사우디 현지인, 필리핀인, 인도인 등 다양한 국적의 20여 명의 수험생들이 청운의 꿈을 갖고 대기하고 있었다.


긴장도 되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담담했다. 결과가 어떻든, 나는 이미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사실이 공고생을 위로했다. 미국, 텍사스, 석유, 이 모든 단어들이 이제는 막연한 꿈이 아니라, 내가 걸어가는 길 위에 놓인 이정표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그 길을 묵묵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이런 소식을 접한 가족 중, 막 대학에 진학한 동생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형~ 미국 가면 우리 식구는 어떻게 해요?"


꿩 대신 닭

마지막 남은 선택지는 한국 대학 진학이었다. 꿩대신 닭인 경우이지만, 그 닭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중동 건설현장에서 노동하며 독학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한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남다른 일이었다. 더구나 공업고등학교의 교과 과정은 대학 진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계, 재료, 목공, 주물, 용접, 판금 등 실습 위주의 수업으로 하루가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도호국단’이라는 이름 아래 교련 수업이 많은 시간을 차지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돌도 씹어 먹을 기세의 20대지만, 연일 이어지는 신체적 학대는 결국 잠자고 있던 결막염을 다시 깨운다. 당시엔 '아폴로 눈병'이라 불리던 안과 질병이다. 의무실 의사 선생님은 “손으로 눈을 비비지 말고, 눈의 피로만 줄이면 그냥 낫는다”라고 말했지만, 졸리고 눈이 아프면 소금물을 안구에 떨어뜨려 더 큰 통증을 만들어내며 버티는 시간이었다.


독학의 시간 내내 나를 괴롭히던 결막염이, 아이러니하게도 고마울 때가 있었다. 학력고사를 치르고 대학 면접까지 보려면 최소 3개월은 한국에 머물러야 했지만, 병역 특례 규정상 1개월 이상 체류는 문제가 됐다. 방법은 단 하나, 병원에서 3개월짜리 진단서를 받아내는 것뿐이었다. 안과 병원을 찾아, 전후 사정을 하나하나 늘어놓으며, 거의 떼를 쓰다시피 진단서 발급을 요청했다. 의사 선생님은 처음엔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간절함이 통했는지 결국 3개월짜리 진단서를 건네주었다. 아~ 결막염의 쓸모, 질병이 고맙게 느껴지는 경우는 또 멀까?


"3당 4 락", "토끼 눈"과 "화이트맨"

고등학교 친구 중에 별명이 "화이트맨"인 친구가 있다. 유난히 얼굴이 하얀 덕에 붙은 별명이다. 이 친구는 글을 참 예쁘게 쓴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선배들이나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는 것이 특기였고, 글씨가 악필인 선생님들의 가정통신문까지 대필하곤 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학교 성적과 석차가 발표되는 날. 화이트맨이 슬쩍 다가와 귀띔을 한다.

“친구야, 내가 1등급 만들어 줬어.”


절박함이 만든 "3당 4 락", 결막염으로 충혈된 "토끼 눈"과 글씨를 참 곱게 쓰던 "화이트맨" 그 모든 것이 모여,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쪼그만 기적을 이루어 낸다.




참고 문헌 및 관련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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