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사라질 때

VOL.4 / 2023. 5월호. 시화로 전하는 시_10

by 숨 빗소리

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



가수 윤복희 씨가 TV에서 <봄날은 간다>를 부르는데 담금통에 담아두었던 눈물이 힘없이 떨어졌다 아파 누운 지 열흘 된 그녀가 살구꽃으로 피었다가 살구꽃으로 지고 벚꽃으로 피었다가 벚꽃으로 졌다 괜스레 가는 봄날 잡아놓고 윤복희 씨 목소리에 쓸쓸해져서 잠든 그녀 얼굴 눈으로 쓰다듬는데, 길눈 어두운 딱새가 집 안으로 들어 퍼덕였다 그 소리에 눈뜬 그녀에게 부은 눈 들킬까 문이란 문 다 열어놓고 온몸으로 휘젓다가 문지방에 발가락 찧어 아파 핑곗김에 운 날



- 박경희 <그런 봄날> 전문





삶이 괴로운 순간... 더 아픈 사람을 보며 일어설 때가 있었습니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 나보다 더 슬픈 사람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되는지 모르지만, 다소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서 가끔씩은 슬픈 다큐도 보고 영화도 보고 시를 읽을 때도 있었나요. 그러려고 했다기보단 그러다 보니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해서. 왜 그럴까요. 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무언가에 빠져 있을 때 잠시 힘든 것도 잊고 몰입할 때가 있어요. 부러 긴 문장을 쓸 때도 그러하고, 힘겨운 산을 오를 때도 그러해요. 아픈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사라지고 그가 되고 그들이 될 때가 있어요. 오늘 이 시를 읽을 때 내가 그러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화자와 그런 화자 곁에서 꽃이 지고 있는 그녀를 함께 떠올려봅니다. 누가 더 슬픈 사람인지 모르겠어서, 쓸쓸한 사람들을 앞에 두고 나는 잠시 사라지는 기분. 괴롭더라도 삶이 소중하게 느껴져서, 감사해져서, 감사하고 미안해서.




<숨 빗소리_ 5월_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

('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는 수시로 업데이트됩니다. )



숨 빗소리 - 발행인 겸 편집장. 스쳐가는 장소에서 건져올린 시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과 사랑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을 시와 산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용 시집 - 박경희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창비, 2019

박경희 시인 - 2001년 <시안>으로 등단. 제3회 조영관문학창작기금 수혜. 시집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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