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향한 여정

VOL.7 / 2023. 8월호. 인겐의 여행산문_6

by 숨 빗소리

산티아고를 향한 여정

- 인겐


<산티아고를 향한 여정>은 호주에 정착한 한국 청년이 자신의 오랜 목표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한 다양한 준비과정, 실제 순례길 여행기를 매월 짧은 이야기 속에 담아 연재합니다.




2023년 8월 4일


저희 아버지는 시골에서 고즈넉이 등산을 즐기시는 반면, 어머니는 전형적인 도시 스타일입니다. 저는 아무래도 부모님을 반반 닮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편리하고 안락한 도시생활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늘 자연으로 나갈 궁리를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 속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새롭습니다. 서늘한 공기가 바로 코끝으로 느껴집니다. 바깥공기와 안 공기의 온도차로 몽골몽골 뭉쳐진 습기들이 어느새 저희의 텐트 한 구석으로 뚝뚝 떨어집니다. 이곳에 꼬끼오하고 울어대는 닭은 없습니다. 하지만 온갖 산새가 이른 아침부터 우는 소리에 더 잠을 청할 수 없습니다. 알람이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날이 밝아옵니다. 저희가 곯아떨어져 자는 사이 캥거루들이 하이에나처럼 먹을 것을 찾았던 흔적들이 곳곳에 즐비합니다. 호주의 캠핑장에서는 캥거루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잠시 자리를 비운 후 돌아오면 어느새 저희의 짐꾸러미 여기저기를 뒤적거린 흔적들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밥을 먹는 중에도 마치 공원의 비둘기처럼 근처에 다가와 서성거리면서 우리가 먹는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합니다. 야행성인 이들은 밤에는 더 대범해져서 저희가 자고 있는 텐트를 쿡쿡 찌르거나 킁킁거리면서 먹을 것을 찾습니다. 그렇게 밤새 서성이던 캥거루들이 잠에서 깬 인기척들조금씩 멀어지고, 저희는 짐을 정리하면서 아침밥으로 커피와 햄버거를 만들었습니다.


보온통에 여분의 커피를 담고는 우리는 하이킹과 클라이밍을 할 채비를 합니다. 클라이밍 짐은 로프, 캐러비나, 하니스, 헬멧, 데이지 체인, 퀵드로우, 빌레이 장치 등 낱개로는 가볍지만 가방에 다 담고 나면 그 무게로 몸 전체가 휘청일 정도입니다. 20kg의 군장을 메고 행군하던 군대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친구들과 짐을 고르게 배분하고 혹시나 빠뜨린 것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남겨두는 짐들이 캥거루들의 ‘테러’를 받지 않도록 단단히 갈무리하고 나서 우리는 길을 나섰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자연암벽을 나가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호주에서는 자연암벽을 오르려는 클라이머들을 위한 가이드북이 있습니다. 이 길라잡이를 따라 Ngamadjidj Shelter 근처의 자연 암벽들을 오르기 위해, 가까운 Stapylton Campground에서 묵기로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책에 나온 설명은 대략 이런 식입니다.


‘캠핑장 입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왼쪽을 보면 큰 벼락 맞은 나무가 있다. 그 나무 뒤로 200m를 가다 보면 버려진 벤치들이 보인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벤치 옆 조약돌탑을 끼고돌아 대략 2km를 직진한다. 그러면 큰 가파른 절벽이 보이는데 왼쪽으로 올라가라. 그러면, 절벽 위로 올라갈 수 있다. 명심해라. 올라가는 길이 험하다.’


이런 친절(?)한 안내를 따라 찾아가는 길은 모험과 같지만, 우리가 원하던 것이기도 합니다. 보슬비 내리는 호주 겨울의 추운 날씨에도 땀에 젖어 겉옷을 벗게 만드는 산행, 한 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멀게만 보이던 풍경들도 성큼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잘 모르지만, 이곳 빅토리아 그램피언즈 지역의 식물 생태계는 제가 거주하는 남호주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파리들이 가늘고 기다란 침엽수와 양치식물들이 우거졌고, 바위마다 이끼가 심심치 않게 껴있어서 걸음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커다란 나무나 바위가 쓰러져 우리를 막고, 절벽이 가로막아도 우리는 하나하나 넘어갔습니다. 이런 유명한 구절이 있죠.

Walls are meant for climbing

굽이굽이 돌고 돌아 그리고 오르고 올라, 찾았습니다. 다시 내려가면서 할 고생은 잠시 저만치 미뤄두었습니다. 이곳에 당도하기까지 험한 곳 중에는 자칫 한 발자국 잘못 디디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곳도 있습니다. 물론! 안전을 위해 벽에 고정된 로프가 있고 그 로프를 클라이밍장비(퀵드로우, 데이지체인 혹은 케러비너 등)와 연결해 안전하게 이동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맞이한 암벽은 ‘오버행’이라 일컬어지는 경사진 벽입니다. 몸을 뒤로 젖힌 채 오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수직벽보다 배로 힘들어서 제법 난이도가 있습니다. 저희가 클라이밍 하면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안전'입니다. 오르기 전에 어떤 식으로 해야 안전하게, 그래서 걱정 없이 집중하며 올라가고 무사히 내려올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눕니다. 몇 번의 작은 시도들과 고심을 거쳐, top rope 방식과 lead를 섞기로 했습니다. 처음 마주하는 어려운 벽을 lead로만 오르기에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top rope 방식만으로는 바깥으로 멀어지는 원심력에 의한 스윙을 컨트롤하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두 명의 빌레이어를 한 명의 클라이머와 2개의 로프로 연결을 해서 더 안전하게 하기로 했습니다. 이와 같은 세팅 후 우리의 클라이밍은 시작되었습니다.

역시나 어렵습니다. 쉽사리 진전이 없이 떨어지기를 반복하지만, 그만큼 우리는 더 흥분되고 열기가 고조됩니다. 전완근이 불끈불끈 두꺼워지고, 핏줄은 튀어나오면서, 손가락 피부는 벌써부터 아려옵니다. 저희가 '맛'보던 남호주의 바위들과는 사뭇 다른, 좀 더 벼리어진 느낌입니다. 바위의 주성분이 규암(Quartzite)과 사암(Sandstone)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촉감을 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찾아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겪은 암벽은 사암으로 주로 구성되어서 조금 더 거칠고 날카로운 촉감을 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손가락과 손바닥의 피부 내구도나 피로와 직결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고 다양한 루트들을 시도했고, 몇 개의 루트는 탑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암벽만 시도하고 내려갈 계획이 아니어서 우리는 체력을 안배해서 다음 벽에서 클라이밍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책에 따르면, 우리가 미쳐 보지 못하고 지나친 암벽들이 있었습니다. 책에 소개된 암벽 루트들은 제법 관리를 잘 받아온 것들입니다. 그리고 특히 lead 클라이밍을 위해 클라이밍용 볼트가 벽에 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엄지손가락 첫 번째 마디 만한 볼트들을 눈으로 찾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방법은 결국 '잘' 살펴보는 것입니다. 아니면 이곳에서 클라이밍 경험이 있는 가이드를 고용하거나, 이곳에 익숙한 지인과 같이 오는 것도 방법입니다. 모험을 즐기는 저와 제 친구들은 그저 책의 안내를 따라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볼트들을 다시 찾았습니다. 머지않은 곳에서 결국 발견, 우리는 그곳에서 클라이밍을 다시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클라이밍을 마치면 다시 다른 장소로 이동해 벽을 찾기를 반복했습니다. 결국, 가까운 곳에서 대략 3개의 큰 벽을 찾았고 10여 가지의 클라이밍 루트들을 도전한 후 우리는 지쳐서 더 이상 이어갈 힘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날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산은 자칫하면 방심과 함께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등산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싸가지고 간 과일이나 물 등 가볍게 먹을 만한 것들은 이미 주섬주섬 먹은 뒤로 다행히 가방이 한결 가볍습니다. 보슬비를 맞으면서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자연암벽에서 하는 클라이밍은 실내암장하는 것보다 배는 어렵습니다. 실내에서는 홀드(등산에서, 암벽을 올라갈 때 손으로 잡거나 발로 디딜 수 있는 곳)들이 보이고 그 보이는 홀드들을 잡고 올라가면 됩니다. 자연암벽에서는 보이는 모든 것들을 '잡을 수 있다면' 잡아서 올라가면 됩니다. 하지만 본인에게 맞는 홀드를 찾고 잡아서 올라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자연암벽에서 하는 클라이밍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여정의 모든 과정에서 감상하게 되는 그 경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클라이밍을 하러 가는 길, 드라이빙, 절벽으로 찾아가면서 맛보는 산세, 혹은 바다, 어딜 둘러봐도 제 눈길을 잡아끄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혼이 빠질 것 같습니다. 가끔은 해안가에 있는 절벽에서 바로 등뒤에서 굽이치는 파도를 병풍 삼아 오르기도 합니다. 이번의 경우에는 가파른 절벽에서 눈 돌리면 펼쳐지는 울창한 숲이 보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모든 것들은 끝이 없는 숲의 향연입니다.

클라이밍으로 다시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 보는 ‘뷰’는 또 색다른 ‘맛’이 있습니다. 고생고생해서 내가 흘리는 모든 땀은 결국, 위에서 보는 풍경으로 보상받기 위함입니다. 손가락 피부는 이미 얼얼하기가 마치 누군가 거친 사포로 갈아 버린 듯합니다. 온몸이 이미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그래도 이 먼 곳에 와서 아무런 사고 없이 원하던 자연암벽을 마음껏 즐겼다는 이 흥분은 한참 동안 지속될 것입니다. 금방 다시 이곳을 찾기란 쉽지 않을 걸 알면서도, 우리는 벌써 언제 다시 이곳에 재방문할지를 주제로 열띤 토론 중입니다.



(여섯 번째 에피소드 끝)




<숨 빗소리_ 8월 신작원고_인겐의 여행 산문> _ 여행 산문은 4-5주 주기로 업데이트됩니다.


인겐 - 남반구 하늘 아래 인생 개척 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