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향한 여정
- 인겐
<산티아고를 향한 여정>은 호주에 정착한 한국 청년이 자신의 오랜 목표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한 다양한 준비과정, 실제 순례길 여행기를 매월 짧은 이야기 속에 담아 연재합니다.
차로 다시 돌아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반나절은 넘게 운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2박 3일간의 짧았던 이번 여행도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합니다. 길을 떠나니 웬걸, 하늘이 맑아집니다. 저기 멀리 저희가 잠시 머물던 산이 보이는데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습니다. 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비바람이 불다가 집으로 향하자마자 날이 맑게 개는 걸까요? 제가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친구 왈, ‘몰라, 비 와서 좋았는데 왜?’ 어릴 때 네팔에서 험준산 산들을 놀이터 삼아 자란 이 친구에게 날씨는 장벽 따위가 아닐 겁니다. 몇 시간 산을 타고 학교에 가는데 비가 오나 안 오나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걸었다고 합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좋았다고 합니다. 이 친구와 등산을 다니면서 저도 이런 마음가짐을 조금씩 배워가는 듯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연습할 수 있는 장이 바로 마련되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막바지에서 지독한 교통체증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뉴스를 찾아보니 큰 트럭과 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급하게 친구는 와이프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 늦을 것 같다고 합니다. 와이프는 저녁 약속이 취소되었으니 급하게 올 것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 클라이밍을 했었더라면 아주 잠깐 아쉬웠지만, 길지 않았습니다.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타이어, 배터리, 날씨 징크스를 다 이겨내고 아무런 사고 없이 좋은 추억들만 간직한 이 순간, 미련 따위는 아무런 의미 없습니다.
친구 집에 도착해서 가볍게 각자의 짐들을 챙기고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다음 주에 다시 또 만날 우리였지만 이날의 작별인사는 왠지 모르게 뜻깊었습니다. 지난 주말은 단순하고 뻔한 또 하나의 주말이 아닌, 하나의 뜻깊은 표석이 되었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이런 하루하루를 우리는 두고두고 되짚어 볼 것입니다. 뜻깊은 선물을 서로가 서로에게 나누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벼운 포옹으로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짐 정리를 제대로 하려면 아마 또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를 것입니다. 급한 일과 나중에 할 일을 분류하고, 가볍게 짐 정리를 하고, 씻고, 저녁을 챙겨 먹고…. 벌써 다시 시곗바늘 속 초침이 되어 일상 속으로 들어온 듯합니다. 내일 다시 일하러 간다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오는 것이 월요병 증세까지, 일상으로 돌아온 게 확실합니다.
저는 한 번도 운동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몸짱’ 들을 보면서 나도 한 번은 저런 몸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헬스장에서 이런저런 운동기구를 기웃거린 적만 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잘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괜한 무리에 어깨 회전근개 근육에 부상을 입고는 한동안 어깨를 들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기도 했습니다. 2016년에 저는 부상당한 어깨와 함께 뉴질랜드에 가면서 오히려 더 곤경에 빠졌습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고, 외국인 노동자의 신분으로 비싼 뉴질랜드 병원비를 감당한 능력도 없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그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다시 운동 밖에는 없었습니다. 저는 토니라는 뉴질랜드 친구와 함께 하루가 멀다 하고 등산을 했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인 오클랜드에서 서쪽으로 차를 타고 조금 달리면 마주하게 되는 후이와 (Huia, New Zealand) 산맥을 친구들과 주말마다 올랐습니다. 평일에는 매일 조금씩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아프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보단, 매일 조금씩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노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는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거의 부질없어 보이는 막연한 믿음으로, 조금씩 꾸준히 운동한 덕분인지 결국 기적처럼 어깨는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운동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잠이나 휴식조차 미루고 운동에 집착하다가 또 한 번 무리하게 됩니다. 이 당시에는 서호주 (Western Australia)에 있는 도시, 퍼스 (Perth, Western Australia)와 번버리(Bunbury, Western Australia)에 살았었습니다.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휴식을 내던지고 운동을 하다가, 결국 몸이 버티지 못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손목이 아파 몇 년간 운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애들레이드로 오고 늦깎이 대학원생이 됩니다. 나중에서야 손목통증의 원인을 찾게 되고 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운동부족과 잘못된 식습관으로 제 몸은 과체중에 이르게 됩니다. 게다가 편두통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도서관 컴퓨터 앞에 망부석처럼 엉덩이를 붙여 앉고 과제를 몇 시간씩 붙잡고 있던 날들이었습니다. 앉아서 끼니를 해결하고 화장실 갈 적에만 엉덩이를 잠시 떼다 보면, 꼭 그렇게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학교에 있는 짐으로 향했습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서 두통을 없애야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세 자릿수를 향해가던 몸무게가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살살 운동하면서, 저를 압박하던 부상들이 어느 정도 가시고 나서야 저는 클라이밍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2021년 5월 2일에 홀덴 힐 (Holden Hill, South Australia)에 있는 Vertical Reality Climbing 암장에서 다시 클라이밍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날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게 돼서 지금까지 함께 등산을 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즐기고 있습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이 후로도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게 길을 터준 것은 클라이밍입니다. 저는 클라이밍을 좋아하지만 ‘고수’는 아닙니다. 널리 통용되는 그레이드로 치면 V5~V6정도의 난이도를 즐겨합니다. 암장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이 정도는 가볍게 오르는 고수들이 즐비합니다. 유튜브 비디오 영상으로만 보던 벽 잡고 날아다니는 날다람쥐 같은 재야의 고수들을 보면 기가 죽곤 합니다. 하지만 클라이밍을 즐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잘하는 것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문제에 계속 도전하고, 또 새로운 문제를 찾아 나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미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나가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계속 운동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것은 부상입니다. 여전히 휴식을 등한시하고 몸이 버티지 못하다가 탈이 나기도 합니다. 때론 고된 산행을 오랜 시간 지속하고 난 후, 고관절이 아파서 1주일 동안 걷기도 힘들었습니다. 오금이라 부르는 무릎 뒤가 아파서 한참을 절뚝거리며 걷기도 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발등이 아파서 몇 주째 산행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획해 놓은 마라톤이 다가오는 지금, 잦은 부상 탓에 과연 결승선에 다다를 수 있을까 조마조마합니다. 이런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다시 산행을 나서면 결국 상황은 악화됩니다. 여유를 잃지 않고 현재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태연하게 계획을 다시 짜야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다시금 배웠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을 하나하나 즐기면 됩니다. 아쉬움, 미련, 초조함, 후회, 걱정 같은, 우리의 마음을 좀먹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감정들을 주체 못 할 때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그 이상은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래도 한결 마음이 편안합니다. 물론 아쉽지만, 더 이상 내가 뭘 어쩔 수 없었으니까….
(여덟 번째 에피소드 끝)
<숨 빗소리_ 10월 신작원고_인겐의 여행 산문> _ 여행 산문은 4-5주 주기로 업데이트됩니다.
인겐 - 남반구 하늘 아래 인생 개척 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