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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Dec 02. 2023

산티아고를 향한 여정

인겐 작가의 '2023년 올해의 글'

 *<숨 빗소리> 12월호는 참여 작가들의 2023년 발표글 중 가장 인상적인 한 편을 선정하여 공개합니다.  

웹 동인지 형식으로 시작한 <숨 빗소리>의 한해를 되돌아보며, 새해엔 더 발전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산티아고를 향한 여정 (세 번째 에피소드 중)

- 인겐


 <산티아고를 향한 여정>은 호주에 정착한 한국 청년이 자신의 오랜 목표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한 다양한 준비과정, 실제 순례길 여행기를 매월 짧은 이야기 속에 담아 연재합니다. 




 안녕하세요 다시 돌아온, 인겐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면에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산티아고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 기초체력을 쌓는 등산이나 사이클링 등이 제 여가 시간의 주를 이루고 있는데요. 그래도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이 하루 대부분은 일하는 데 소모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소개드린 바와 같이 저는 호주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상하수도관의 상태를 검사하는 일을 하는데, 그러려면 이 상하수도관이 매립되어 있는 곳에 직접 가야만 합니다. 잦은 출장은 필수적이죠. 이번에도 빅토리아주 어느 소도시의 파이프를 향해 동료들과 길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애들레이드에서 이번 출장지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대부분 초원이지만 조그만 산과 습지들로 이루어진 800km 직선거리를 그냥 하염없이 달리면 됩니다. 아침을 준비하며 인사한 별과 다시 저녁에 마주할 때까지, 아침 식사와 점심 메뉴를 간단히 해결합니다. 그리곤 다음 날부터, 낯선 땅에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화상으로 연락을 하던 사람들과 드디어 만나 그들의 가이드에 따라 파이프를 찾아 테스트를 합니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계속 마주하는 일은 다른 종류의 피로감을 줍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이런 새로움도, 따라오는 피로감도 즐기는 편입니다. 사람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출장을 좋아합니다. 갑갑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끝없는 도로를 달리는 동안은 마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양식의 건물, 다양한 사람, 색다른 음식 등 새로운 환경에서 며칠간 지내다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나의 목표인 스페인의 순례길에 언젠가 가게 된다면, 어떤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낯설기만 할 그곳의 모든 것들이 저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이밖에도 출장의 좋은 점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나머지는 온전히 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곳에 와있고, 차량과 시간만 있으면 어디로든 떠날 수 있습니다. 매번 출장을 떠날 때마다 그 지역에서 해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들을 미리 생각하고, 가능하면 그것들을 모두 경험하려 노력했습니다. 물론 혼자가 아닌, 동료들과 함께 의기투합해서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마침, 숙소의 리셉션 정면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팸플릿에 눈이 돌아갔고!!

 '스카이다이빙'이라는 글씨와 하늘을 자유낙하하는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고!!

 그것은, 회사 차량과 시간을 공유해야 하는 직장동료들과 저, 모두의 버킷리스트였습니다.


 망설일 것도 없이 스카이다이빙을 함께할 동료들과 제 방에 모였습니다. 기존에 세웠던 계획들, 시나리오들, 새로운 옵션 등 이 모든 것을 고려해 이야기를 마치니 이미 시간은 제법 흘러 있었습니다. 당장 전화로 예약가능한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리셉션은 이미 문을 닫은 후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일하는 중간 브레이크 때, 바로 예약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가능하면 바로 실행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저희가 원하는 시간에 예약이 가능했고, 우리는 망설일 것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예약을 했습니다. 이후 동료들과 짧게 플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잠시 혼자 있을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막상 예약을 하고 나니 두려움과 무서움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고소공포증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놀이기구만 타면 먹은 것들을 다 게워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간혹 스카이다이빙이나 패러글라이딩 중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거나 생명을 잃었다는 뉴스를 전해 듣고는 합니다. 99.9%는 안전하겠지만, 갑작스러운 난기류나 예상치 못한 일들로 인한 0.1%의 확률은 여전히 무섭습니다.


  하지만 이미 하기로 마음먹은 일이었고, 어느새 몸은 Barwon Heads Airport(호주 질롱에 있는 경비행기 전용 작은 공항)에 서있었습니다. 하니스(Harness)를 착용하고 안전에 대한 강의를 듣는 중에도, 경비행기는 쉴 새 없이 움직였고, 하늘에서는 계속 사람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운동장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재회하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뭉클했고 제 가슴을 벅차게 했습니다. 함께 하늘에서 낙하를 하며 안전을 책임져주실 강사님을 만나 인사와 이야기를 나누면, 곧 비행이 시작될 거라는 신호입니다. 강사님께서는 제 하니스를 다시 한번 꼼꼼하게 점검해 주시고 간단한 브리핑을 해주셨습니다. 15,000피트, 즉 대략 4.5km 위로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서, 처음 1분 정도는 낙하산 없이 자유낙하를 한 뒤, 나머지는 낙하산을 펼치고 내려오게 됩니다.


  비행기로 향하는 순간부터 지속적으로 동료들과 눈빛으로 무언의 응원을 건넸습니다. 서로 말은 안 해도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타는 대형비행기와 스카이다이빙을 위한 경비행기는 크게 달랐습니다. 조종석을 제외하면, 부조종석 없이 두툼하게 볼록 튀어나온 바를 바닥에 두고 그 위에 다들 줄을 맞춰 붙어 앉습니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문은 주름이 많은 미닫이 문으로 천장으로 밀어 올리고 고정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경비행기는 현장의 긴장감을 그대로 전달해 줍니다. 무거운 공기 속에서 강사님들은 자신들의 파트너에게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건넵니다. ‘무슨 계기로 하게 됐나요?’, ‘같이 하는 동료들이 있나요?’, ‘무슨 일을 하세요?’ 등등등….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바깥 풍경입니다. 큼직한 창문들이야말로 경비행기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고도가 올라가면서 보이는 잔잔한 푸른 바다와 초록 대지, 눈을 뗄 수 없는 정적인 아름다움을 보며 저는 조금씩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느껴지는 공기의 차가움, 어느샌가 좀 춥다고 느낄 정도가 되면 이제 바로 시작입니다. 출입구를 열고 걸터앉은 뒤 짝을 지어 사라지는 모습에 뭐라고 느낄 새도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저도 출입구에 앉아있었고, 바로 하늘로 다이빙을 했습니다.


  다이빙 직후, 정말 소리도 지를 수 없을 만큼 놀랐습니다. 저와 강사님이 공기를 찢으면서 맞는 압력과 바람은 겪어본 적 없는 것들이라 정말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뭔가 소리치지 않으면 저 스스로가 집어삼켜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다 보니 정신을 차렸고,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보통 지상에서 보는 구름층 위에서, 무한한 구름바다와 더 강렬하고 커 보이는 태양, 은은하게 구름을 뚫고 보이는 바다와 육지까지… 1분 남짓한 자유낙하는 정말 순간이라고 느껴질 만큼 짧았고, 강사님은 이내 낙하산을 펼쳤습니다.


  낙하산을 펼치고 난 후에야 다이빙보다는 비행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제서야 좀 여유를 찾고 비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강사님과 감상을 주고받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도 눈은 계속 두리번두리번, 멈추지 않고 풍경을 담으려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현실이 아닌 듯했고, 마치 잠깐 다른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왜 사람들이 스카이다이빙을 꼭 해봐야 한다고 얘기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착지를 한 후에야 다시 내가 이 세계로 돌아왔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해냈다는 뿌듯한 성취감마저 들었습니다.


  강사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동료들과 재회하여 서로 감상을 나눴습니다. 모든 과정을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잘 즐기고 마쳤다는 사실이 가장 감사했습니다. 게다가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과 의기투합하여 준비하고 도전하는 일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제 스페인 여정은 혼자 가는 길이라 이번 스카이다이빙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준비하고 도전하여 느끼는 성취감은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전하고 싶은 일은 미루지 말고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행동으로 옮기는 때부터 되돌아보는 순간까지, 즐거웠던 순간뿐 아니라 힘들었던 그 모든 과정들은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를 우리에게 들려주기도 합니다. 머지않아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무리하고 되돌아보면서 제가 느낄 또 다른 감상들을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습니다.



- 웹진 <숨 빗소리> 2023년 5월 발표



인겐 - 남반구 하늘 아래 인생 개척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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