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떠올리기만 해도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하고 생경한 생각이 드는 시간들이지만 학창 시절 난 분명 문학소녀였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사준 100권짜리 세계문학 전집을 기점으로 나는 문학을 사랑하게 되었다. 책 속에서 펼쳐지는 미지의 세계와 갖가지 인간 군상들의 삶을 간접 경험하며 나는 울었고, 웃었고, 성숙해졌고, 센치해졌다. 자고로 문학소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연합고사를 코 앞에 둔 어느 날, 문제집 아래에 소설책을 숨겨 두고 몰래 읽다가 엄마한테 들켰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엄마는 나를 크게 나무라지도 않고 한숨을 한번 쉬시더니 “연합고사가 끝나는 날까지 소설책 안 읽고 공부하면, 그다음엔 네가 읽고 싶은 책을 다 사주마.”고 하셨다. 나는 그 제안에 혹해서 두어 달가량 소설책 읽기를 그만두고 공부에 매진했다. (뭐 그래 봤자 대단히 실력이 향상되었을 리가 만무하지만ㅋ)
연합고사 시험이 끝나는 날, 고사장 앞에는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리고 약속대로 책을 사주기 위해 그 당시 인천에서 제일 큰 대한서림이라는 서점으로 날 데리고 갔다. 엄마는 서점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가서는 “자, 읽고 싶은 책 다 골라 봐라.”라고 말씀하셨다. 평생 동안 엄마가 가장 멋져 보였던 결정적 장면을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그날의 순간을 고를 것이다.
막상 책을 고르는 순간이 되자 가슴이 너무 떨렸다. 이 수많은 인생들 가운데 어떤 삶을 골라야 후회가 없단 말인가. 다시 못 올 기회이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되는 16살 문학소녀가 봉착한 첫 난관이었다. 그때는 지적 허영심이 넘치던 때라 소위 여중고생들 사이에게 유행하던 하이틴 로맨스 같은 책들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더 재밌음;) 고심 끝에 선별된 책들은 (전부다 기억은 안 나지만) 괴테의 '파우스트',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헤세의 '데미안',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등등 제목으로만 들어본 세계 명작들이었다. 아마 문학소녀라면 이 정도는 읽어줘야 한다는 허세의 발로였을 것이다.
열 권이 넘는 책들을 골라 낑낑거리며 짊어지고 와서는 침대 머리맡에 쭉 전시해 놓았다. 그리고 그날은 책을 베개 삼아 단잠을 잤다.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명작소설 도장 깨기를 시작했다. 연합고사를 본 후 고등학교를 가기 전까지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독서에 몰입했던 나날이었다. 특히 헤세의 ‘데미안’과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는 뜻도 잘 모르면서 나름 멋진 문장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밑줄을 그어가며 밤을 새워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특히 ‘데미안’에 나오는 대표적인 명문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새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 한다.
이 문구를 유독 좋아해서 일기장에, 수첩에 베껴 써놓고 반복해 읽고 또 읽었다. 아직도 우리 집 책장에는 엄마가 30년 전에 사주셨던 그 책들이 꽂혀있다. 가독력 있게 잘 번역된 동일한 제목의 책들을 이후 어른이 되어 다시 구입해 봤지만 그 시절 내가 밑줄을 그으면 읽었던 그 책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아마도 이제는 열일곱 여고시절에만 느낄 수 있었던 감수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또 그 시절 엄마는 계몽사에서 나온 한국문학 양장본 전집도 사주셨는데, 덕분에 나는 특히 한국 단편소설에 푹 빠질 수 있었다. ‘발가락이 닮았다’, ‘배따라기’, ‘감자’, ‘운수 좋은 날’, ‘메밀꽃 필 무렵’, ‘날개’, ‘벙어리 삼룡이’ 등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정서가 담긴 소설들을 읽으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인간의 뇌란 얼마나 편협하고 차별적인가. 나는 숫자 외우기에 젬병이다. 전화번호, 차번호, 생일, 비밀번호 등등 의미 없는 숫자의 나열은 나의 기억을 붙들어 놓지 못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시(詩)는 별 노력 없이 서너 번만 읽으면 외워졌다. 언젠가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는 하기 싫고 심심해서 내가 외우고 있는 시들을 연습장에 써내려 가기 시작했는데 다 쓰고 났더니 오십여 편쯤 되었다. 생각해 보면 시를 외웠다기보단 시가 내 마음에 각인되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점심에 먹은 메뉴도 저녁이 되면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요즘도 그 시절 외운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은 잊혀지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 학교 미술 과목을 맡고 있던 학생 주임(이하 학주)은 지각하거나 교칙을 어기는 학생이 있으면, 자신이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 머리를 때렸다.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서는 피해야 할 경계대상 1호였다. 그런데 어느 날 미술 수업 시간에 시화 그리기를 실기 시험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암송하는 시가 있는 사람이 있는가 물었다. 그때 옆자리에 있는 내 친구가 눈치도 없게 “ㅇㅇ이가 시를 많이 외울 수 있어요.”하고 내 이름을 말했다. 반색하는 학주의 눈빛에 나는 엉거주춤 일어났다.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외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학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시는 32행이나 되는 긴 시였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그 시를 다 외웠는데 학주는 엄청 감탄을 하며 슬리퍼를 휘두르던 그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다. 난 슬리퍼를 휘두르던 학주가 시를 좋아한다는 것에 놀랐고, 그런 사람에게 칭찬받은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다음 시간인가 교무실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학주를 다시 만났는데, 갑자기 나를 다른 선생님들 앞에 세워놓고 “oo이가 ‘목마와 숙녀’ 전문을 다 외운다니까요. 한 번 들어 보세요.”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무슨 10년은 이불킥을 할 각이란 말인가... 더듬더듬 하는 수 없이 시를 다 암송했을 무렵, 다른 선생님들이 입에 발린 칭찬을 해주는 가운데 홀로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분이 계셨으니 바로 수학 선생님이셨다. 그분은 나를 지그시 바라보셨는데 그 두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줄짜리 수학 공식은 그렇게도 못 외우더니... 너는 도대체 누구냐?’ 난 속으로 말했다. ‘선생님 넘 죄송해요. 선생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수학 공식이 제 마음을 흔들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ㅜㅜ’
내가 다니던 여고는 꽤 전통 있는 가톨릭 재단의 사립학교였다. 학교 축제를 매년 하지 않고 5년에 한 번 아주 큰 규모로 개최했다. 축제가 있던 해 고2였던 나는 학교 방송부 아나운서여서 축제 기간에 방송제를 준비해야 했었다. 방송제 중 문학 작품 하나를 각색해 라디오 극장처럼 방송부원들이 극을 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작품 선정이 너무 어렵고 의견이 분분하여 쉽게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선배들이 나보고 직접 창작극을 하나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나는 얼결에 수락하고 말았다. 소설도 아닌 라디오 대본을 과연 어떻게 완성한단 말인가... 시간은 점점 흐르고 가슴을 옥죄는 부담감에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하룻밤을 꼬박 새워 대본을 완성해 갔다. 그런데 의외로 부원들의 호응이 좋았고 그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이 났다. 그러면서 직접 쓴 대본이니 주인공 역할을 내가 맡아서 하는 게 작품 이해나 완성도 측면에서 좋을 것 같다는 의견에 극 중 주인공으로도 참여하게 됐다.
드디어 공연의 막이 오른 날, 강당에는 천오백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앉아있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때 쓴 작품은 지금 생각해 보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유치한 최루성 사랑이야기였는데 공연 내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열여덟 살 여고생을 울리거나 웃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울고, 날아가는 새만 봐도 웃는 것이 그들 아닌가. 공연은 나름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 작품은 나에게 창작의 기쁨을 알게 해 준 첫 작품이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그 이후로도 백일장에 나가면 늘 상을 타고 교지에는 소설을 비롯한 내 글이 서너 편씩 실리자 난 내가 엄청나게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고 착각을 했다. 그때부터 나는 다른 어떤 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 작가가 되는 것만이 내 길이다, 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친구들이 입시 공부에 매진할 때 난 소설책을 읽고 혼자 끄적이듯 습작을 했다. 그러면서 작가의 등용문인 신춘문예에 도전해 봐야 되나, 하는 허황된 꿈에 젖어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잘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인간은 숱한 실패와 좌절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슬픈 존재라는 것을이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좌절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다음 편을 기대하시길... (제2편에 계속)
(열한 번째 에세이 끝)
<숨 빗소리_ 신작원고_ 눈꽃의 에세이> _ 에세이는 4-5주 주기로 계속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