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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May 18. 2024

어린 아재

VOL.16 / 2024. 5월호. 이창호 연재소설_5화

어린 아재

- 이창호




<제5화>


 타임리스


 지수와 극장에서 싸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태양은 전화기를 붙잡고 지수와 다툼을 이어갔다. 지수는 가끔 태양에게 비슷한 불만을 표출한다. 잘 달래주던 태양이 오늘은 지수의 심기를 건드렸다.

 "오빠는 내가 중요하지 않아. 자기 일만 중요하고 친구들, 다른 사람들이 먼저지. 나는 이해할 수 없어. 내가 가장 먼저여야지…"

 "넌 맨날 그 얘기하더라. 아주 지겨워 죽겠다."

 "너? 너라고 했어? 그리고 지겨워? 지겹다고? 진짜 너 내가 복수할 거야!"

 "흥분하지 마. 그런 얘기 아닌 거 알잖아. 네가 먼저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돕고 살아야지."

 "알아도 서운한 걸 어떡하냐…"

 태양은 지수를 마저 달랬다. 그리고 자책했다.

 지수와 다투고 잠이 든 태양은 두통 때문에 잠에서 깼다. 귀울림도 생겨 제정신이 아니었다.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 머리를 감쌌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다시 침대로 돌아왔을 때 태양은 매우 놀랐다. 침대에 사람이 있었다. 무엇보다 놀란 건, 둘러보니 자신의 집이 아니었다. 태양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머리와 귀 통증이 더해져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다시 잠에서 깬 태양을 누군가 불렀다. 낯선 목소리였다.

 "자기야, 자기야 일어나! 헤어 메이크업 하려면 지금 씻고 나가야 돼."

 차연은 가벼운 외출차림으로 갈아입고 태양의 이불을 들어 올렸다. 태양은 떨고 있었다.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디 아파? 어떡해 오늘 일정이 빡빡해서 쉴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차연이 혼잣말을 이어가자, 태양은 어렵사리 눈을 떴다. 차연은 태양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했다. 차연의 손을 피하던 태양이 침대에서 떨어졌다. 낙상한 태양은 소리쳤다.

 "아!!! 누구세요? 왜 저한테 손을 대요? 여기 우리 집이 아닌데, 저 잡혀왔나요?"

 "자기야 그만해, 이제 안 속아. 빨리 씻고 옷 갈아입어. 지금 출발해도 늦었어."

 태양은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답답한 차연이 태양의 이불을 뺏으려 실랑이를 벌였다. 태양이 다시 한번 말을 꺼냈다.

 "저보다 누나가 맞으시죠? 여기 누나 집인가요? 어제 술을 왕창 마셨나요? 여기에 온 기억이 없어요."

 태양이 장난을 멈추지 않자 차연이 화를 냈다.

 "야! 이태양 정신 안 차릴래! 오늘 우리 결혼식이야. 어디에 머리라도 박아서 기억을 잃은 거야?"

 차연의 말에 태양은 정말 어디에 머리라도 부닥친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몇 살인데, 결혼식을 하지. 그리고 저 여자 나보다 10살은 많아 보이는데…’

 당황한 태양이 일어나 집을 둘러봤다. 화장실이 딸린 방과 넓은 거실, 그리고 작은 방 2개. 분명히 태양에게 낯선 집이다. 태양은 창밖을 둘러봤다. 아파트였다. 반대쪽 창밖도 확인했다. 어디서 본 듯한 풍경이었다. 차연에게 물었다.

 "누나 여기, 밖에 전철 동암역이에요?"

 "진짜 왜 자꾸 그러지? 당연히 동암역이지. 여긴 우리 신혼집이고!"

 차연은 점점 두려웠다. 태양의 눈동자가 거짓말한 적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태양은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것.

 "지난주에 무슨 일 있었지? 나랑 대판 싸웠잖아. 무엇 때문이었지?"

 차연은 태양을 테스트했다. 눈빛은 여전히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차연의 팔에 닭살이 돋았다.

 "모르겠어요. 생각하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요…"

 차연은 머리를 굴렸다.

 ‘진짜 기억을 못 한다… 결혼식 하객만 500명. 만약 이 인간을 데려가지 못한다면, 아! 상상하기도 싫다. 어떻게든 데려가야 한다, 아 가족을 끔찍이 생각하지.’

 "잘 들어. 지금 기억을 잃고 찾고 문제를 떠나서… 당신이란 사람이 이태양인 거 맞지?"

 "네, 그건 맞아요."

 태양은 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봤다. 조금 낯설긴 하지만 틀림없는 자기였다.

 "거울 보면서 잘 들어! 오늘 결혼식에 올 걸로 예상되는 사람만 500명. 나랑 자기랑 손님들이지. 그리고 자기네 가족만 50명이 넘게 와. 이해했어?"

 "무슨 말인지?"

 "우리가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돌렸고 대부분 우릴 보러 온다고! 그리고 자기네 부모님과 가족을 만날 수 있어. 뭔가 기억이 날 거야."

 태양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요, 그럼 얼른 가요. 근데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결혼식을 하는 건…"

 "연극이라고 생각하면 쉽겠지? 학창 시절 연극해 봤다면서! 서두르자."

 태양은 어리둥절하면서 욕실에서 씻기 시작했다. 차연은 택시를 부른 뒤, 외출 준비를 마저 했다.

 결혼식장에 도착한 태양은 가족들을 찾았지만 아직 도착 전이었다. 차연에게 귓속말을 했다.

" 가족들은 언제 와요?"

 "결혼식 2시간 전에는 올 거야. 따로 화장이랑 머리를 만져야 하니까 1시간만 더 기다려."

 턱시도를 입은 태양은 멋쩍었다. 차연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기를 쳐다보지 않고 고민에 빠진 태양이 야속했다.

 1시간 뒤. 가족들이 도착했다. 태양은 차연의 가족들을 지나치고 엄마를 찾았다. 엄마와 동생이 보였다.

 "엄마, 나 지금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거든! 저 여자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근데 결혼식을 하라는 거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엄마랑 수운이가 말렸는데도 네가 고집 피워서 하는 거잖아."

 "엄마, 수운아. 정말 나 기억이 안 나! 지수는 왜 지수가 아니라 저 누나랑 하는 거냐고."

 "오빠 그 언니랑은 군법무관 때 헤어졌잖아, 도대체 왜 그래!"

 "뭐 군법무관? 내가 변호사가 된 거야?"

 "아 진짜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얘야, 제발 정신 차려라. 오늘 시골에서 어르신들도 많이 오는데…"

 "수운아, 지수는 그렇고 그럼. 오빠 동기들 알지? 걔들은 어떻게 오늘 오는 거야?"

 "아, 민훈 동걸 오빠? 오늘 돈 받는다며!"

 말이 끝나자 시골에서 태양의 결혼식을 보러 관광버스를 타고 온 친척들이 결혼식장에 들어섰다. 태양이 아는 얼굴들이었다. 조금 늙었지만. 태양의 아빠는 태양을 보자 엄지를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짓고, 어르신들을 챙겼다. 태양은 혼란스러웠지만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와 진짜 미치고 팔짝 뛰겠네. 변호사가 됐다니, 나쁘지 않은 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지수가 없잖아. 이건 아닌데 사람들 불러 놓고. 아 미치겠다!"

 2005년에 살던 태양이 2016년으로 시간 이동한 것이다.

 같은 시각. 차연의 대기실로 한 남자가 들어간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미쳤어!"

 "문자메시지 답장이 없길래, 왜 내가 못 올데라도 왔나∼"

 남자는 껄렁대는 태도로 차연에게 말을 걸었다. 이 남자는 태양과 사귀기 전 차연의 애인. 차연은 이 남자와 완벽히 이별하지 않은 채 태양에게 환승했다.



<다음화에 계속>


<숨 빗소리_ 이창호 소설>


이창호 - 현직 기자. 책 <그래도 가보겠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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