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민의 알고리즘에 우연히 들어온 동영상 속 강연자는 세상의 변화와 발전은 인류의 1%가 이끌어나간다고 주장했다. 그럼 나머지 99%는 무엇이냐. “세상 참 좋아졌네.” “맞아, 예전엔 꿈만 같던 이야기였는데.”같은 뻔한 감탄만을 늘어놓는 우리들. 1%가 바꿔놓은 세상의 변화를 공짜로 누리고 만족하며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흔하디 흔한 뭇사람들. 유기체로서 세상에 태어나 단지 잠자고 먹고 배설하다가 채 한 세기도 이어지지 못하고 모든 기억에서 사라질 사람들. 그는 그 99%의 인류를 '잉여인간'이라고 지칭했다.
“1%의 선구자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10~30년의 미래를 내다봅니다. 그런 안목을 지닌 사람들이지만, 다수의 잉여인간들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개는 바보나 미치광이로 치부하죠.”
그는 자동차의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한 포드, 그 뒤로 이어질 자동차 혁명의 흐름을 내다보고 미국의 석유 산업을 장악한 록펠러 등 여러 명의 인물을 사례로 들었다. 강연자는 그 미래의 안목을 경제나 산업 분야에 국한시켰지만, 재민은 동영상을 보면서 자유와 평등, 민주와 인권을 위해 남보다 앞서나간 정치 지도자들을 함께 떠올리기도 했다.
동영상 속 강연자는 1%를 다시 두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짜 미래 세상을 내다보고 변화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0.1%의 지니어스와, 다소 괴짜스럽고 황당해 보이는 그들을 지지하고 돕는 0.9%의 안목 있는 조력자를 합쳐 그 1%가 구성된다고. 그는 솔직히 자신은 창의적 천재인 0.1%에는 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공부하면서 미래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노력하며 0.9%의 조력자가 되기 위해 늘 힘쓴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은 0.1%와 0.9%가 속한 인류의 머리인 1%가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99%의 잊혀질 유기체, 즉 잉여인간이 되시겠습니까, 하고 청중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2
오월은 여러 가지 기념일의 달이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5·18 그리고 애인의 생일 등등. 재민은 오월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카페에 앉아 잘 구운 베이글 한 조각을 먹으며, 연하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곁들여 마셨다. 오월은, 오월은... 참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이층 카페 창 너머 은행나무의 우듬지엔 벌써 초록빛 이파리들이 무성해지기 시작했다. 나무들은 어떻게 저렇듯 정확히 계절에 맞추어 푸른 잎들을 피워내는 걸까. 매년 이맘때면 떠오르는, 짙어지는 기억이 저마다 있다는 듯이.
재민은 그런 기념일들을 머릿속으로 쭉 나열해 보다가, 오월 초에 있는 애인의 생일과 어버이날에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해 보다가, 마지막 5월 18일에 이르렀다. 어렴풋하게 알고만 있던 오월 광주에서의 일. 지난해 크게 흥행했던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한 후, 조금 더 관심을 이어 창비에서 출판한 한홍구 선생의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책을 내처 읽어보았던 재민이었다. 재민은 1980년 5월 21일 애국가가 도청 앞에서 울려 퍼질 때, 모여든 광주 시민들에게 집단 발포를 했던 계엄군들의 잔혹한 폭력을 떠올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시위대의 맨 앞줄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까. 1987년 유월의 이한열 열사도 항쟁의 선두를 자청했기에 무자비한 최루탄에 피격된 것이 아닌가. 재민은 만약 자신이 1980년 오월 광주에 있었다면 폭력에 항거한 시민군 속에서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었을까를 상상했다. 적어도 총격의 표적이 되기 쉬운 맨 앞에 설 용기는 없었으리라. 아니 죽음과 희생이 두려워 집밖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창과 문을 모두 걸어 잠근 채 깊은 어둠 너머에서 숨죽여 있지는 않았을지.
재민은 과거에도 일제강점기 문학을 접할 때마다 그 시대 속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 시대의 문학인이었다면 자신은 과연 어떤 사람과 닮아 있었을까. 민족의 가락을 서정시에 주로 담아냈던 김영랑, 김소월에 가까웠을까. 아니면 홀로 반성하고 부끄러워한 윤동주가 됐을까. 지하운동에 가담하며 온몸으로 싸운 이육사는 고사하고, 친일의 시를 써 일제를 떠받들던 육당 최남선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아니다, 아니다. 그럴 재주마저 없었기에 조용히 굴욕의 시대에 순응하며 일본어만을 고집하는 소심하고 다소 비겁한 소학교 교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으로까지 이어진 계기는 대체 뭐란 말인가. 재민은 생각한다. 변화에 앞장서는 지도자들을 돕고 싶으나, 그들 자체가 되고 싶지는 않은, 아니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내면. 재민은 문득 어제 본 유튜브 강연이 떠올랐다. 강연자가 말했던 0.1%의 지도자와 0.9%의 세상을 변화시키는 적극적 조력자. 그렇지만 그건 단지 문명의 변화를 이끈 산업 및 정보 혁명에 국한된 주장 아니었던가.
단순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문명의 발전이란 게 단순히 경제나 산업에만 그치는가. 더 중요한 건 국가, 사회, 조직의 문화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자유와 권리, 기본권에 대한 발전적 정립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까지 이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전면으로의 나섬을 꺼려하는 자신의 비겁함과 나약함을 바라보게 된 것은 도대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평화롭게 빵을 먹고 있는데 익숙한 전화벨이 울렸던 것이다.
“박재민 대의원님이십니까?”
“누구시죠?”
“네, 노조 지부장입니다. 이번 달 셋째 주 토요일에 있는 노조대의원 행사에 참여해 주십사 전화드렸습니다.”
재민은 또 마음에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다. 지역 노동조합 대의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지회의 누군가가 재민의 이름을 명목상 빌려달라고 했었다. 자신도 함께 하는 뜻은 있었기에 그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노조 간부가 되거나, 노조 대의원이 되어 활동 전면에 나서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 재민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개인적인 일정을 핑계로 행사 참여를 조심히 거절한 재민이었지만, 못내 마음이 불편해짐은 어쩔 수 없었다. 아, 이 괴로워하면서도 또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는 자여. 자신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노조에 가입하였고, 또 무슨 마음으로 노조 활동을 꺼리고 있는가. 재민이 가입한 노조는 자신들의 권리, 정치투쟁뿐 아니라 기후 위기, 전쟁으로 인한 인종학살 규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변화와 연대를 꿈꾸는 큰 단체였다. 침묵한다는 것은 결국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 아니 자기 자신에게서마저 뒤돌아선다는 게 아닐까.
재민은 가방에서 노트 한 권과 펜을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비겁해지지 않으려고, 그러나 또 끝없이 비겁해지기 위하여. 자신은 앞장설 그릇이 되지 못한다고, 그런 지도자들은 따로 존재한다고 여기면서. 자신의 역할은 이렇게 글로나마 끼적이며 부족한 능력을 짜내고 스스로를 자위하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너무나도 쉽고 어렵게, 지부장의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 재민은 커피를 마신다. 빵을 먹는다. 그리고 노트를 펼쳐 카페에서 우아하게, 겁쟁이 작가처럼, 잉여인간처럼 쓴다. 오월이 시작되려는 어느 토요일, 화창한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너무나 한가하면서, 그러나 조금도 시간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그 애매한 계절의 어디쯤에서. 너와 나의, 그 어디도 속하지 않는 국경의 지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