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 빗소리 Jun 23. 2024

어린 아재

VOL.17 / 2024. 6월호. 이창호 연재소설_6화

어린 아재

- 이창호



<제6화>


 유괴


 차연은 급히 대기실로 들어온 남자를 내보냈다. 그 순간 대기실 밖으로 떠밀려 나온 남자는 지나가던 태양의 눈과 마주쳤다. 남자는 순간 눈을 내리깔았다.

 ‘저 남자가 차연의 신랑이군. 그런데 어찌 낯이 익다. 괜히 마주쳐서 좋을 게 없다. 침착하게 지나가자.’

 태양은 지나가던 남자를 불러 세우려고 했다. 꺼림칙했다.

 ‘저 남자 신부 대기실 쪽에서 걸어 나왔어. 분명히 무언가 있다. 기분이 좋지 않아,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차연과 연인이던 이 남자 이름은 최필이다.

 필은 차연이 다니던 직장 선배로 신입 시절 차연의 사수였다. 처음 차연에게 일을 가르칠 때 매우 차갑게 대했고, 때론 호되게 꾸짖었다.

 그런데 그게 젊은 차연을 시샘하는 ‘골드미스’ 선배로부터 지켜주려고 했다는 걸 차연이 알게 됐다. 그때부터 차연은 필에게 마음이 갔다. 둘은 6개월쯤 붙어 다니더니 자연스레 연인이 됐다. 몰래 사내연애를 즐겼다.

 태양은 식장에 도착한 민훈과 동걸을 따로 불렀다.

 "얘들아, 도무지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난 2005년 새내기 시절 너희와 지내고 있었는데 눈 떠보니 결혼식이라는 거야."

 "이 형이 또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작년 7월에 형수님이랑 사귄다고 해서 같이 만나고, 6개월 만에 프러포즈한다고 도와달라고 했잖아!"

 "형 오늘 우리가 돈 받기로 한 거 알지? 지금 빨리 신랑 측에 앉으라는데?"

 두 사람은 태양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결혼식장 직원 성화에 태양은 "그래, 가라 가"라고 말했다. 태양은 사실상 포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태양을 보고 하객들은 의아했다. 태양은 지금 상황이 너무 놀랍고, 무서웠다. 이대로 살아가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차연은 복화술을 써 태양을 달랬다.

 "왜 그래? 웃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잖아."

 차연의 목소리를 들은 태양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절을 하는데, 태양의 눈물은 절정에 달했다. 태양은 처가에 인사하면서 마음을 진정했다. 그렇게 결혼식은 폐백까지 모두 마치고 무탈히 끝났다. 태양과 차연의 신혼여행지는 프랑스 파리였다. 다음날 아침 출발이다.

 신혼집으로 돌아온 태양은 망연자실했다. 차연은 그를 위해 그동안 만들어놓은 여행앨범, 연애앨범 등 사진을 보여줬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동영상도 보여주며 서로 결혼까지 이르는 과정을 들려줬다. 지금 태양이 느끼는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사람은 차연뿐이었다. 둘은 무사히 첫날밤을 보내고 인천공항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한 태양은 낯선 여행이 주는 묘한 감정에 기분이 좋아졌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태양과 차연은 호텔로 가는 택시에 올랐다.

 호텔 앞에 멈춘 택시에서 태양이 내리고 차연이 발을 땅에 대려는 순간, 괴한으로 보이는 자가 태양을 밀치고 차연의 코와 입을 손수건으로 막았다. 달려드는 태양을 일시에 제압한 괴한은 차연을 데리고 홀연히 사라졌다.

 태양은 호텔로 들어가 한국대사관에 연락을 부탁했다. 태양의 말을 들은 대사관 직원이 곧장 호텔로 찾아왔다. 직원은 호텔 지배인에게 CCTV 영상을 달라고 한 뒤, 프랑스 경찰에게 협조를 요청한 후 태양에게 말을 건넸다.

 "대사관으로 같이 가서 상황을 지켜보시겠어요? 호텔에서 기다리실래요? 외교부와 프랑스 경찰이 공조해서 신부님을 찾는데 최선을 다할 겁니다."

 대사관 직원은 친절했지만 진정성은 없어 보였다. 태양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호텔에 남아 기다리겠다"라고 대답했다.

 직원이 돌아가고 태양은 예약한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까 그 괴한은 한국인 여성을 노리고 납치한 걸까? 아니면 차연 씨를 미리 알고 납치했을까…’

 태양은 로비로 내려가 지배인에게 서툰 영어로 부탁했다.

 "한국어에 능한 프랑스 사람을 가이드로 소개받을 수 있나요?"

 "지금 이 상황에 여행을 다닌다고요?"

 "아니에요. 제가 한 번 찾아보려는 겁니다. 아까 그 CCTV 제 스마트폰에 전송해 줄 수 있죠?"

 "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만, 가이드가 있어도 직접 찾는 건 위험합니다."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 없잖아요."

 지배인은 용기 있는 태양을 돕고 싶었다. 태양이 차연을 찾는데 꼭 필요한 사람을 수소문했다. 잠시 뒤 지배인은 태양의 방문을 두드렸다.

 "손님, 말씀하신 가이드를 모셔왔습니다."

 문이 열리자 지배인은 가이드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가이드 이름은 ‘밴’이라고 했다. 20대 중반인 밴은 손과 피부가 거친 편이었고 제법 키가 큰 여성이었다. 한국어, 프랑스어, 베트남어까지 구사할 수 있다고 했다. 태양은 밴에게 CCTV 영상을 보여줬다. 밴은 영상을 유심히 관찰했다. 둘은 납치범이 어디로 갔을지 유추하기 위해 영상을 계속 돌려봤다.



<다음화에 계속>


<숨 빗소리_ 이창호 소설>


이창호 - 현직 기자. 책 <그래도 가보겠습니다> 저자.

이창호의 브런치  

매거진의 이전글 산티아고를 향한 여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