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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Jul 23. 2024

어린 아재

VOL.18 / 2024. 7월호. 이창호 연재소설_7화

어린 아재

- 이창호



<제7화>


 꾀다


 밴은 프랑스인과 베트남인 사이 태어난 아버지, 한국인과 베트남인이 낳은 어머니를 두고 있다. 자연스레 3개 국어에 능통해졌다. 밴의 아버지는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 지배했을 때 이주했다. 어머니는 베트남전쟁 때 파병 온 한국인과 결혼했다. 밴의 얼굴은 한국인과 흡사하다.

 밴은 CCTV로 확인되는 곳까지 범인의 동선을 따라가자고 제안했다. 태양은 고개를 끄덕였고 밴이 앞장서며 말했다.

 "이 방향으로 계속 갔다면,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관광지가 있어요."

 "정말요? 그럼 거기부터 가보죠. 밴은 한국어를 국어처럼 하네요."

 "어머니랑 외할아버지한테 배웠어요.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서 자연스럽게 배웠죠."

 태양은 걸으면서 차연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태양은 자신이 과거로부터 왔고 차연을 전혀 모르지만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줬다. 밴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에서 왔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밴이 말한 관광지는 다름 아닌 에펠탑이었다. 한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구름 떼를 이뤘다. 태양은 에펠탑과 주변 경관을 보고 감탄했다.

 "와∼ 밴 여기 봐요! 이게 몇 미터예요? 둘레가 몇이나 될까."

 태양은 밴을 바라보며 에펠탑을 돌고 있었다. 밴은 에펠탑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 폴짝폴짝 뛰는 태양이 귀여웠다. 태양은 밴에게 같이 돌자고 손짓했고 마지못해 밴도 태양을 따라 걸었다. 그 순간 태양이 발을 멈추자 밴이 태양의 등에 코를 박았다.

 "아!"

 "미안해요. 지금 신부를 본 것 같아요."

 "정말요?"

 태양은 곧바로 차연으로 보이는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 밴도 태양을 쫓아 뛰었다.

 수많은 인파 속 태양은 쉽게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점점 그녀는 멀어졌다. 그 순간 그녀 옆에 납치범이 보였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호텔 앞에서 본 그 남자 같았다.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지만 그 둘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밴은 아쉬워하는 태양을 위로했다.

 "괜찮아요. 한국인이 많이 가는 곳을 돌다 보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둘이 숨어 버리면 어쩌죠?"

 "숨지 않고 돌아다닐 거예요."

 "어떻게 알아요?"

 밴은 말을 아꼈다.

 "느낌이 그래요. 다른 장소로 이동할까요?"

 "그래요."

 태양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미심쩍은 점이 있었다. 먼저 차연이 맞다면, 납치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납치범 뒷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했다. 다른 관광지에서 만날 수도 있다는 밴의 말도 신경 쓰였다. 밴은 택시를 잡고 태양에게 타라고 손짓했다.

 택시에서 내린 태양과 밴은 몽마르트르 언덕 앞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태양은 카페 앞 이국적인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밴도 태양과 앉아 차를 마시는 일이 즐거웠다. 밴은 미소를 띤 태양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차를 마신 뒤 둘은 사크레쾨르 대성당으로 갔다.

 "밴, 기도하고 싶은 게 있나요? 나는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던 그때로요. 돌아갈 수 있을까요?"

 "태양 씨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요. 내가 할 수 있다면 도와줄게요."

 밴은 태양이 과거에서 왔다는 확신은 없지만, 그를 믿어주고 싶었다. 그 순간 태양은 또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밴! 저 앞에 차연 씨가 있어요, 나 먼저 갈게요. 천천히 와요."

 태양은 200m 거리를 단숨에 뛰어갔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던 찰나에 차연은 검은색 승용차 뒷좌석에 탔다. 이어 납치범으로 보이는 남자도 탑승했다. 또 놓쳤다. 떠나는 차량을 보고 태양은 마음이 이상했다. 무언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뒤따라 오던 밴이 태양을 불렀다.

 "태양 씨 정말 부인이 맞나요?"

 "맞는 것 같아요. 아니, 맞아요. 그런데 이상한 게 납치범과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아요."

 "위화감이 뭔가요?"

 "서로 어색한 느낌이랄까? 여자와 납치범이라면 어울리지 않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잘 어울려 지내는 것 같아요."

 "그럼 둘이 여행을 다니는 걸까요? 그럼 다음 장소에서 또 마주친다면 확실하겠네요."

 "그러게요."

 태양과 밴은 루브르박물관에 도착했다. 밴은 태양에게 루브르에 대해 설명했다. 예술품에 관심이 많은, 밴은 박물관에 올 때부터 입이 간지러웠다.

 "원래 루브르는 바이킹 침입으로부터 파리를 방어하려고 세운 요새였어요. 16세기 때 르네상스양식 궁전으로 개조했죠. 루이 15세가 베르사유로 궁전을 옮겨 비어있었고, 나폴레옹이 전쟁하면서 빼앗고 사들이고 선물 받은 미술품, 문화재 같은 걸 전시하면서 미술관이 됐죠. 그리고 1980년대 전시관 확장이랑 유리 피라미드가 생기면서 지금 모습이 됐어요."

 "오∼ 저 이런 역사이야기 좋아해요. 또 알려주세요!"

 둘은 모나리자, 비너스, 승리의 여신상,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등 TV나 책으로 봤던 작품을 보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저녁에는 식당에서 크레페, 라따뚜이를 와인과 함께 먹었다. 다음날 개선문, 베르사유궁전 등 관광지를 더 둘러보기로 약속했다.

 호텔에 도착한 태양은 대사관에 연락했다. 직원들이 호텔 위주로 관광객 정보를 확인 중이라고 했다. 한인민박 등 소규모 숙소에 묵으면 확인이 늦어진다고 했다. 태양은 대사관 직원들을 믿을 수 없었다. 내일 밴과 함께 관광지에서 마주치는 편이 빠를 것 같았다. 말랑한 취기에, 대소동 때문인지 침대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었다.

 다음날. 밴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태양을 만나려니 신경이 쓰였다. 만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사람인데, 마음이 흔들렸다. 다정하지만 내면의 슬픔이 느껴지는 태양이 밴의 심장을 울렸다. 그가 신부를 찾게 도우면서도, 못 찾길 바라는 모순이 그녀의 마음에 깔려 있었다.

 "밴!"

 태양이 밴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밴의 심장이 요동쳤다.

 "아… 안녕하세요. 개선문 먼저 가실 거죠?"

 "네, 빨리 가요."

 밴은 개선문에서 태양에게 역사이야기를 해줬다. 밴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맑고 빛났다. 밴이 나폴레옹과 개선문에 얽힌 이야기를 하던 중, 태양이 밴의 허리를 잡고 당겼다. 이쪽으로 숨자는 신호였다. 태양은 밴에게 속삭였다.

 "저쪽에 차연 씨랑 그 납치범으로 보이는 사람이 같이 걷고 있어요. 뒷모습 보이죠?"

 "네. 그러네요.

 "우리는 멀리 돌아서 저 사람들 앞으로 갈 거예요. 앞모습을 확인해야겠어요. 자연스럽게 손 잡고 갈 거니까 이해해요."

 "네. 알겠어요."

 밴의 심장은 또 요동쳤다. 둘은 빠른 걸음으로 우회해 상대방과 마주칠 계획이다. 태양의 계획은 성공했고, 잠시 후 네 사람이 눈을 마주쳤다. 차연과 납치범은 히죽대며 즐겁게 대화하고 있었다. 차연은 태양을 보고 벙찐 상태였다. 납치범은 아주 태연한 얼굴로 비웃었다. 태양은 납치범을 자세히 쳐다봤다. 그 순간 태양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납치범은 최필이었다.



<다음화에 계속>


<숨 빗소리_ 이창호 소설>


이창호 - 현직 기자. 책 <그래도 가보겠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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