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

VOL.38 / 2026. 3월호. 이창호 소설_제4화

by 숨 빗소리

OB

- 이창호



제4화


2024년에도 특전사 OB 예비군훈련은 계속됐다. 지난해보다 참가 인원이 조금 늘었다. 해수와 면수, 영권은 다섯 번째 훈련이었다. 이제는 어색하지도 않았다. 군복을 입고, 총을 잡고 사격 자세를 취하는 것이 몸에 배어버렸다. 그러나 불안했다. 사격장에서 영권이 과녁을 맞히고 나서 씩 웃으며 말했다.

- 야, 나 아직 되는데.

- 되면 뭐 하냐.

해수는 총을 내려놓으며 짧게 받아쳤다. 면수도 아무 말 없이 귀마개를 빼며 고개를 저었다. 훈련 마지막 날 저녁 점호가 끝나고 세 사람은 막사 밖 벤치에 앉았다. 담배를 피우지도,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었다. 맥없이 앉아 있었다.

- 제인이 올해는 안 보이네.

영권이 말했다.

- 어, 나도 못 봤어.

면수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제인이 빠진 것이 신경 쓰였다.

같은 시각, 서울 어딘가의 롯데리아.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두 시 반. 손님이 드문 시간대. 창가 구석 자리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다. 한 사람은 김제인이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노성완이었다. 전직 정보사령관. 3성 장군 출신. 이미 전역한 지 몇 해가 지났지만 마음만큼은 현역 시절 그대로였다. 두 사람 앞에는 각자 주문한 게 있었다. 노성완의 쟁반에는 새우버거 세트가, 제인 앞에는 콜라만 놓여 있었다. 노성완이 버거를 한 입 베어 물고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 올해 훈련 빠진 거, 위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어?

- 제가 직접 보고를 올렸습니다. 개인적인 일정이 있다고.

- 잘했어.

노성완은 감자튀김 하나를 집으며 말을 이었다.

- OB들 상태는 어때? 쓸 수 있겠어?

제인은 잠시 콜라 빨대를 만지작거리다 말했다.

- 몸은 됩니다. 사격도 생각보다 감을 빨리 찾더라고요. 근데...

- 근데?

- 마음이 다른 사람들이 있어요.

노성완이 제인을 똑바로 쳐다봤다.

- 마음이 다르다는 게 무슨 말이야.

- 1980년, 5.18.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때 뭔가를 겪은 사람들은, 명령이 떨어진다고 해서 바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어요. 제가 그걸 압니다. 저도 그중 하나니까.

노성완이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표정이 굳었다.

- 자네 쓸모가 거기 있는 거야. 자네도 함께 겪었으니까 설득할 수 있잖아. 같은 편이 설득하는 거랑, 위에서 명령 내리는 거랑 다르지.

- 설득을요.

제인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 1980년에 저도 설득당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거라고, 질서를 세우는 거라고. 광주에 내려가서 제 눈으로 본 것들이 뭔지는 장군님도 아실 텐데요.

잠시 침묵이 흘렀고 노성완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이번엔 달라. 1980년이랑 같다고 생각하면 안 돼. 그때는 질서를 잡는 과정에서 불행한 일이 생긴 거고, 지금은 더 정교하게 설계된 거야. 대상도 다르고, 방식도 다르다고.

제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을 잠깐 봤다가 다시 테이블로 시선을 내렸다.

- 제가 동기들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할 수 있어. 자네가 거기 있었잖아. 광주에.

노성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 경험이 자네 무기라고 생각해. 직접 겪은 사람이 '이번엔 다르다'고 말하면 무게가 다른 거야.

제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노성완의 눈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콜라 컵을 꼭 쥐었다.

- 생각해 봐. 시간이 많지 않아.

한 마디 남긴 뒤 노성완은 자리를 떴다. 제인은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 마신 콜라 컵 안에서 얼음이 녹고 있었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들. 장 보러 가는 주부, 이어폰을 끼고 걷는 대학생,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 등. 1980년 5월, 광주 거리에도 저런 시민들이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화에 계속)

<숨 빗소리_ 이창호 소설>


이창호 - 현직 기자. 저서로 소설 <미필적 고의>, 공저 <그래도 가보겠습니다>와 <독립언론, 함께 홀로서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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