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8 / 2026. 3월호. 짧은 소설_15
“하동주 작가 선생님이시죠?”
전화가 걸려온 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두 송이 가는 눈발이 흩날리던 지난해 겨울날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구청 소속 미래교육지원센터에서 교육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고, 지인을 통해 지역에서 문인으로 활동하시는 선생님을 알게 됐다며 정중히 부탁할 일이 있어 전화를 드렸다고 말했다.
“겨울방학을 맞이해 지역 학생들의 교육복지를 위한 글쓰기 단기 특강을 개설할 예정입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그 수업을 맡아서 강의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작은 카페를 생업으로 운영하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이용해 부업으로 글을 쓰기만 했지, 누군가에게 글쓰기 강의를 해본 적은 없었다. 유명 작가도 아니고 잘 팔리지도 않은 소설집 한 권을 간신히 출간한, 지역의 이 무명작가를 대체 누가 추천했다는 말인가. 평소라면 부탁을 듣자마자 단번에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카페는 해가 갈수록 매출이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고, 한가로운 시간이 많아지자 오히려 글은 더 써지지 않았다. 출간한 책은 단 한 권뿐인데도 미발표 소설의 폴더 용량이 차오를수록 소재는 점점 고갈되고 있었다. 이참에 아르바이트 삼아 돈도 벌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통화 중 문득 들었다.
미래교육지원센터는 원도심 지역 초등학교 바로 옆 골목에 숨은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초등학교는 지역의 3·1 독립만세운동 발상지로 알려진 곳이라서 소설 취재차 두세 번 와본 적이 있었다.
‘학교 옆에 원래 이런 곳이 있었나?’
통화로만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교육지원 업무 담당자를 첫 수업 때 처음 만났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원도심 학생들의 낙후된 교육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기획된 교육센터고, 작년 가을에야 삼층 짜리 센터 건물이 완공되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교육 복지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새 건물이다 보니 강의실과 휴게실, 교육 기자재 등 모든 게 새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새것인 이층 강의실에서 터치스크린에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미리 열어놓고 첫 수업에 참가할 학생들을 기다렸다.
수업 대상은 중학교 2, 3학년 청소년들이었다. 강의명은 무명의 소설가를 강사로 내세운 것과는 별개로 ‘예비 고등학생을 위한 수행평가 글쓰기’였다. 담당자는 교육복지를 위한 무료 수업이라 하더라도, 입시나 학교 평가와 무관한 강의에는 학생 신청자를 모집하기가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물론 그것도 구청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지역 기관 팝업 광고를 본 학부모가 대부분 학생 대신 신청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첫 수업 때부터 학생들은 그다지 의욕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열다섯 명의 신청자 중 열두 명만이 첫 수업에 출석했다. 그것도 절반 이상은 십분 정도 지각을 했다. 걔 중에는 오늘 아침에 엄마가 알려줘서 이 수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학생들의 참여 태도와 수강 과정을 알게 되면서 처음 가졌던 과한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래, 요즘 SNS와 유튜브만 보는 애들에게 글쓰기를 얼마나 제대로 가르치겠어. 방학 동안 주 1회만이라도 뭔가를 써본다는 것에 의미를 두게 하자.’
그러나 수업이 진행될수록 예상과 달리 학생들 태도가 진지해졌다. 딴짓을 하기엔 학생들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숫기는 없었지만 내가 설명하거나 지시하는 내용에 대부분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첫 시간은 김려령 작가의 장편소설 『완득이』의 일부분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쓰는 것이었는데, 글감을 마련하기 위한 생각열기 활동지와 개요 틀 만들기도 대부분 빠짐없이 작성했다. 최종 완성된 글을 제출하는 마지막 순서에서도 한 명의 학생만 제외하고는 모두 글을 시간 내에 완성하여 제출했다.
“오늘은 시간이 부족해서 발표를 못 들었으니까, 선생님이 집에 가서 읽어 본 후 여러분 글에 대해 하고픈 말을 적어서 다시 돌려줄게요.”
나는 카페로 돌아와 손님이 뜸해진 저녁 이후에 학생들이 제출한 독서감상문을 하나하나 자세히 읽었다. 글의 수준이 천차만별이었다.
‘얘들이 글을 써 봤으면 얼마나 써 봤겠어. 다 감안해서 봐줘야지.’
일기장에 담임 선생님이 써주신 짧은 감상 몇 줄을 읽기 위해 열심히 일기를 썼던 어릴 적 기억을 나는 떠올렸다. 그 선생님을 좋아한 까닭도 있었지만, 그 경험은 결국 내가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이 학생들에게도 그런 긍정적인 경험을 짧은 몇 주라도 줄 수 있을까. 잘 쓴 감상문이든 부족한 감상문이든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하면서 인상 깊은 문장들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주었다. 그리곤 하고픈 말을 몇 마디 덧붙였다.
‘자기 경험을 완득이에게 이입해보고 성찰하는 자세야말로 정말 훌륭한 독서 태도가 아닐까? 다혜가 작품을 읽고 글로써 자기 성찰과 내면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 것 같아서 선생님은 정말 감동받았다. 다혜가 다음엔 또 어떤 글을 보여줄까?’
대단치는 않지만 매시간 완성된 글마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었기 때문일까. 마지막 4주 차 수업 때까지 학생들의 이탈률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첫 수업에 참여한 열두 명의 학생 중 마지막 수업의 결석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고등학생이 되면 자주 쓰게 될 글을 한 갈래씩 선별해 써보는 활동을 했다. 첫 주는 독서감상문, 둘째 주는 비평문, 셋째 주는 문예글이었고, 마지막 수업은 역사적 사건을 가상으로 탐사하여 써보는 기사문이었다. 때마침 새 학년 개학 전날 매해 맞이하는 3·1절이 코앞이었다. 그래서 3·1절의 의미도 되새기면서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공부해 보고 그것과 관련한 기사문을 써보기로 계획했다.
“오늘은 역사 탐사 기사문을 써보려고 해요. 그냥 기사문도 어려운데 탐사 기사문이라니, 게다가 역사? 뭔가 어려워 보인다, 그렇죠? 하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그냥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유명한 역사적 인물을 만나 가상으로 인터뷰한다, 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우선 선생님이 준비한 당시 사건과 인물 영상을 보고 시작할까요.”
마지막 강의였기에 학생들이 쓴 역사 기사문을 따로 제출받진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에서 즉흥적인 피드백을 해주거나, 일찍 기사문을 완성한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글을 직접 발표하게끔 했다. 그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글이 있었다. 첫 시간에 인상적인 독서감상문을 제출한 다혜의 가상 인터뷰 기사였다.
다혜는 짧게 친 검은색 단발머리에 늘 노란색 목도리와 커다란 흰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까진 크고 맑은 눈동자만 간신히 보여주는 수줍음 많은 중학교 2학년생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다혜의 발표 태도는 긴장된 기색도 없이 의외로 자신감이 넘치고 안정돼 보였다. 기사문을 읽는 목소리가 발음 하나 흐트러짐 없이 또박또박 강의실을 울리는 것이었다.
“저는 유관순 열사나 안중근 의사님처럼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은 아닐지 몰라도, 제가 최근 꿈에서 만난 역사적 인물과의 만남을 회상하면서 기사문을 썼습니다. 가상 인터뷰 전에 제가 왜 그 인물을 대상으로 선정했는지를 글 앞부분에 먼저 담았습니다.”
다혜는 미래교육지원센터 건물 바로 옆, 그러니까 지역의 3·1 만세운동 발상지로 알려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다른 구로 이사를 갔지만, 유서 깊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어릴 때부터 역사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의 역사 이야기를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으로부터 관심 있게 듣고 배워왔다고.
“그러던 중에 저는 작년에, 아니 이제 2026년이니까 벌써 재작년이 되었네요. 유튜브에서 ‘소말리’라는 아주 나쁜 유튜버를 보게 됐어요.”
다혜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도 뉴스를 통해 보았던 그가 생각났다. 미국인 유튜버 소말리는 라이브 방송에서 위안부 소녀상은 그냥 금속 동상일 뿐인데, 그 동상이랑 춤췄다고 나를 죽일 거냐며 한국인뿐 아니라 자신을 비판하는 모든 이에게 비아냥거렸다.
“그 나쁜 유튜버는 이렇게 말했대요. ‘사람들은 내가 소녀상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었다는 이유로 나를 쫓고 있다. 동상이 살아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위안부 사건은 80년 전에 일어난 뭔가일 뿐이다. 그냥 잊어버려라’라고요. 저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어떤 피해를 겪었고 어떤 억울함이 있는지 역사 공부와 뉴스의 팩트 체크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그 유튜버는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일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고, 그래서 일본 군인들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벌어서 다들 부자가 되었다’는 거짓말을 함부로 지껄였어요. 또 ‘전국의 소녀상들을 찾아가 성추행을 할 것’이라고도 말했죠.”
다혜의 발표가 이어지면서 강의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나 역시 그 유튜버의 이름을 다시 들으니 마음 안에서 뭔가 거세게 끓어오르는 게 있었다.
“저는 그 나쁜 사람이 우리 집 근처 공원에 있는 소녀상에도 찾아올까 봐 겁이 났어요.”
그 이후로 다혜는 아버지와 함께 공원에 있는 소녀상을 더 자주 찾아갔다고 한다. 그렇지만 더 많이 소녀상을 찾게 되면서 소녀상, 아니 위안부 할머니들의 끝나지 않는 고난과 아픔을 더 많이 목격하게 됐다고. 광복절 같은 특별한 기념일을 제외하곤 소녀상은 늘 외롭거나 방치되었다. 때론 개념 없는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기도 했다.
“잘 관리하고 기억하는 것도 모자란데, 소말리처럼 소녀상과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하하고 헐뜯는 어른들도 봤어요. 그들은 분명 같은 한국인이었는데, 마이크를 크게 틀어놓고 ‘매춘’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써가며 할머니들을 모욕했어요. 제가 생각하기엔 그 나쁜 미국인 유튜버보다 한국인 후손들이 주는 모욕과 상처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더 큰 아픔이 될 것 같았어요.”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법 폐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마주한 뒤부터 다혜의 꿈엔 자주 소녀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때론 소녀상이 살아나 그녀와 대화를 하고 함께 공원을 거닐기도 했다고.
“꿈에서는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라 저와 똑같은 중학교 학생, 청소년이었어요. 단지 입고 있는 옷과 태어난 시기가 달랐을 뿐. 우린 똑같은 걸음걸이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떠들고 놀았어요.”
그런 경험들이 계기가 되어 다혜는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이름 없는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표하여 꿈에서 만난 소녀상을 인터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꿈에서도 만났기에 꼭 가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다혜는 자신의 기사문에 실린 인터뷰를 마저 읽으며 발표를 마쳤다. 그 인터뷰가 인상 깊어서 나는 다혜에게 허락을 받고 기사문 끝부분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그 일부분을 여기에 남겨둔다.
Q : ‘소말리’나 위안부법 폐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괴롭힐 때 힘들진 않았나요?
A : 너무 힘들고 마음이 아팠죠. 나라를 빼앗긴 시절, 전쟁터에서 억울하게 몸을 다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한 우리예요. 그래도 후대에나마 우리 상처와 진실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위로를 받았는데, 광복을 맞이한 지 80년이 넘은 현재에도 우리를 왜곡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무척 놀랐고 마음이 너무 힘들었어요.
Q : 한국 후손들에게 들려주고픈 말이 있나요?
A : 과거뿐 아니라 현재도 아픔을 당한 사람들의 슬픔을 다 같이 공감하고, 그들의 쓰라린 진실을 봐달라는 것이에요. 그 안타까운 영혼들을 욕하는 건 그들을, 우리들을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왜곡된 마음, 꼬인 진실의 매듭을 풀어나갈 때 대한민국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긴 끈을 따라서요.
Q : 마지막으로 학생 기자인 제게 해 줄 말은요?
A : 기자님이 이번 겨울 소녀상에게 선물해 준 노란색 목도리 정말 고마워요. 기자님도 똑같은 걸 두르고 있네요. 그럼 우리는 친구가 된 건가요?
(끝)
허민 – 2015년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으로 시를, 2024년 계간 『황해문화』 창작공모제를 통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