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재택근무 경험
나의 5번째 외국계 회사인 E사는 프랑스 회사였고 한국에 영업 법인만 갖추고 있고 주 거래처인 국내 대기업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 대한민국에 삼성 현대가 있어 다행이다)에 광물을 가공하여 원자재를 공급하는 회사였다. E사는 한국 시장의 성장에 주목하여 원활한 제품 공급을 위하여 한국에 공장을 건설하고 초대 공장장을 할 공장 설계/건설 경험이 있는 사람을 뽑았고 운 좋게 내가 채용이 되었다. 그 과정은 전 포스팅을 참고 바란다.
원래 계획은 1년 안에 부지 선정 및 기초 설계를 마친 후 상세 설계와 동시에 건설 공사를 시작하여 2년 안에 공장을 증설하는 것이 목표였다. 나 또한 본사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지자체 담당자를 만나고 혜택을 비교하며 평택 울산 광양 부산 등을 돌아다니며 최종적으로 평택을 최종 후보지로 선정하여 리포트를 작성하였다. 당시 E사의 해당 사업부와 엔지니어링 팀은 프랑스 본사에 있었기에 나는 한국에 있는 유일한 본사 소속으로 국내 영업팀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직원이었고 다만 월급을 원화로 받기 위해서 국내 법인 조직을 이용하였지 국내에는 리포트 라인도 없고 사무실도 필요치 않아 자연스럽게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처음 1년간 열심히 국내를 돌아다녔고 본사로도 4번이나 출장을 다녔다. 최초 프랑스로 면접 보러 갈 때는 이코노미로 갔으나 정식 직원이 된 후로는 대한항공 A380의 비즈니스석을 이용했다. E사의 일하는 스타일은 회의가 많았다. 하지만 회의가 길어지고 희의 참여 인원이 많아질수록 결론은 안 났고 말만 많아지고 내용은 산으로 가고 있었다. 어렵게 결론을 내서 경영진에 리포트를 올려도 감감무소식에 추가 보완하라고 서류가 반려되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최고 경영자가 바뀌면서 고객이 있는 한국에 공장을 건설하자는 친한 라인에서 한국에 공장을 세우지 말고 시장이 더 큰 중국에 공장을 건설하자는 친중 라인으로 임원진이 물갈이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 평택에 공장을 건설하자는 나의 리포트는 홀딩이 되었고 2년 차부터는 내가 할 일이 없어졌다. 그러자 스페인 사람인 나의 상관은 기회에 여러 나라의 공장을 직접 방문해서 현장을 견학해 보라고 출장을 보냈고 그 덕에 유럽 각지 산악지대 및 알프스 산맥에 흩어져 있는 공장을 둘러보았고 미국 옐로스톤 및 몬타나주에 있는 공장도 가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영어 공부를 좀 더 하고 싶다고 했더니 학원비를 청구하라고 해서 그 당시 나의 일과는 오전 10시에 학원에 가서 영어 공부하고 점심 먹고 전망 좋은 스타벅스로 가서 이메일 확인 및 간단한 업무 리포트 작성 후 퇴근 그리고 2-3개월마다 유럽이나 미국 공장으로 출장을 다니는 신선 같은 직장생활이었으나 마음 한편으로는 서서히 이래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3년 차로 접어들면서 E사의 조직도 개편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한국 공장 건설은 취소가 되었고 본사 사업부는 영업만 담당하고 각 지역의 공장은 리젼(region)에서 관리하기로 하여 아시아의 모든 나라는 싱가포르에서 총괄하고 나는 쿠알라룸푸르 출신의 화교가 팀장을 맡은 아시아 엔지니어링팀의 일원이 되어 나의 새로운 보스가 되었다. 나보다 10살 이상 아래였고 나의 이력서를 보더니 오히려 자기가 리포트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농담처럼 얘기했고 나는 무슨 말씀이냐고 당신하고 일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했으나 혹시 나를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긴 하였다. 나의 롤은 한국 공장 건설에서 중국 공장과 일본 공장의 소규모 프로젝트들을 관리하는 일로 바뀌었는데 정작 문제는 내가 일어와 중국어를 못해 업무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전에 내가 다녔던 탑티어급 외국계 회사에서는 중국계 신입사원들도 칭화대나 북경대 아님 유학파 미국대학 출신들이라 영어 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한 단계 밑인 E사의 경우 중국 공장에 가면 공장장만 영어를 제대로 하고 밑의 엔지니어들은 영어를 읽고 쓰기는 해도 대화는 나누기 힘든 수준이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한국인보다 중국어와 영어가 가능한 중국계 프로젝트 엔지니어가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고 처음 나를 뽑았던 스페인 보스도 회사를 나가면서 다음 차례는 나겠구나..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3년 차 말에 예상대로 HR팀에서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중국계 신입 여직원이 퇴직금과 2개월치 위로금을 제안하길래 나는 신입인 당신하고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너 위에 책임자인 S 한테 연락하라고 전화를 끊고 일주일 후 S는 나한테 연락이 와서 미안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페케이지를 준비해서 알려주겠다고 하였다. HR 책임자인 S는 나하고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회사 규정상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는 페케이지를 제안했고 나는 마지막 6개월은 회사를 안 나갔지만 공식적으로 3년 6개월의 E사의 직장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일반 직장인들은 경험하기 어려운 특별한 3년 6개월의 외국계 회사 재택근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