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너무 오래 쉬었다
연애를 너무 오래 쉬었다.
사랑과 사람에 상처 입어 새로운 사람을 멀리했던 지난날들의 대가는 혹독했다. 몇 년 전 상처 입었던 마음은 어느덧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물어 있었지만, 굳은살이 박혀 조금은 더 단단해졌으리라 생각한 내 마음은 아직도 여리기만 했다. 사랑에도, 마음에도 재활치료가 있으면 좋으련만, 온전히 마음을 내어주었던 기억은 고스란히 내 방어기제를 작동시켰고 어느 순간부턴가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 구석에 방 한 칸 내어 줄 수 없었다.
마음을 온전히 내어주지 않았기에, 마음에 밟히는 사람이 없었다. 아직 그를 잊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운 것인지 모를 시간들. 나의 속내를 아는 사람들은 더러 나에게 아직까지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상처 때문에 눈이 높아졌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고, 나는 또 술 한잔에 웃어넘겼던 나날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말로는 전부 다 표현되지 않는 모순.
긴 연애를 했었고, 아픈 연애도 했었다. 사랑은 상대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누군가 했지만, 그 반대로 나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이었다. 하지만, 긴 연애의 끝, 한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난 그 끝에 마주한 나 자신은 내가 어떤 것을 해야 해야 행복한 것인지 잃어버린 채,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 싫어하는 것들, 당신과 함께 하고 싶었던 것들과 하지 못했던 것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당신을 잊기에 급급했고, 돌아보면 나 자신을 위해 한 것은 결코 도움되지 않을 술로 매일을 채우는 것이었다. 정작 나를 위해 해 준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 매달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떠났다, 홀로 또는 같이,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로 날 데려갔고, 차근차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가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3년. 어쩌면,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건, 내 마음을 썼던 만큼 다시 채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없는 기계도 충전을 해야만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저 마음의 여유를 찾을 오롯한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는 그 흔한 말도, 내가 그런 준비가 되어있을 때야만 가능한 일임을 이제는 안다. 단순히 외로움을 채우거나,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아닌, 내게 여유가 있어야만 내가 그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는 만큼 행복할 수 있다는 이 방정식을 푸는데 꼬박 3년이 걸린 거다. 서른의 한 해를 시작하는, 코로나 대 유행의 봄날, 생각 없이 나갔던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는 그렇게 너를 만났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너의 안부가 궁금하다.
내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었다, 나도 상대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궁금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잊곤 한다. 그것이 얼마나 따뜻한 경험이고, 얼마나 많은 당신의 마음과 에너지를 요하는지. 누군가를 궁금해한다는 건 당신의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 중간 어느 즈음에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의 안부가 궁금하다. 궁금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말을 걸어 묻는다. 그만큼을 건너가기도 사실 정말 어렵다. 당신이 부담스러워할까, 혹여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내가 상처 받지는 않을까 망설임 끝에 묻는 것이니까. 마음은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잘해주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그런 게 우리에겐 더 흔한 일이니까. 바삐 돌아가는 일상 속에 그저 생각으로만 그칠 수 있지만, 다 같이 바쁘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더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일지도. 정신없고 바쁜 나의 하루에 당신이라는 존재가 비집고 들어오는 그 틈을 느낄 때, 그렇게 깨닫는다. 어느새 당신이 소중한 사람이 되어있었구나 하고. 내가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구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용이 없느냐면, 이런 글 쓸 시간에 당신에게 연락이라도 한 번 더 하는 게,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후회가 덜 할 것 같으니까. 오늘 저녁에는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고 싶다. 마음만 있어서는 아무래도 되지가 않으니까. 아직 곁에 있는 오늘이던, 곧 떠나버릴 내일이던 그냥 이 순간 내 감정에 솔직하고 싶다. 그렇게 3년 만에, 나는 다시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이렇게 누군가를 다시 좋아하게 된 내가 다행스러우면서도 애틋하다. 이 관계의 끝이 또다시 내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해도, 다시 한번 나보다 누군가를 더 좋아하게 된다고 해도, 후회 없이 맘 껏 표현하고 싶다. 까짓꺼, 다시 한번 충전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