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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Mar 07. 2022

밤 달

그곳은 밤이 되면 달의 빛이 만물을 비추는 곳이었다. 전기가 없는 곳. 세상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 소똥으로 집을 짓고 닭을 잡아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곳이었다. 세상은 그들을 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렀다.          


 지프니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오래도록 달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외딴섬과 같은 그 깊은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 길 가운데 몇 백 년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을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가 만든 그늘 아래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소년을 보았다. 위. 아래로 정갈하게 차려입은 빨간색 니트 소재 교복은 뒤로 우뚝 선 나무의 색깔과 가지 사이사이로 비추어 내려오는 해의 줄기와도 선명하게 어우러졌다.  

        

 까만 피부의 빨간 교복을 입은 불가촉천민의 소년. 세상과 멀리 떨어져 밤이 되면 달의 빛으로 만물을 비추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소년의 얼굴은 경이로움이었다. 내가 가진 그 어느 것 하나 가지지 못한 소년의 얼굴에는 환희와 순수, 그리고 모든 넉넉함을 지니고 있었다. 오래도록 갖고 싶어 했던 모든 것이 소년의 얼굴에 있었다.     


이름 모를 소년의 등장으로 온갖 궁금증에 사로잡힌 나는 비포장도로를 오래 달린 탓에 지쳤을 법도 한데, 그 길로 지프니에서 내렸다. 세상에서 소외된 그들을 위해 이 먼 곳까지 찾아와 학교를 지어 삶을 헌신해 온 중후한 노년의 신사를 만나기 위해 달렸다.      


 그들에게 저녁 식사와 하루 밤을 스테이 할 수 있도록 초대를 받았다.    

      

 밤이 찾아왔다. 그들에게 향하는 걸음은 쉽지가 않았다. 손에 랜턴을 들었다.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고요함이 마을을 뒤덮었고, 문득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고요함을 뚫고 나와 이곳에 사람의 온기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와 그날 스테이를 함께 할 참이었던 친구는 작은 침낭을 옆에 들고 라면 하나와 김 하나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것을 무엇에 쓰려나 물어보니 우리를 초대해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려 가져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활활 타오르는 화로 앞에서 가녀린 몸의 여자는 불을 피우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만찬을 준비하는 듯 보였다. 어디론가 향하는 보다 어려 보이는 여자의 손에는 퍼드득 거리며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닭 한 마리가 손에 들려있었다. 인도식 카레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저녁이 깊지 않은 듯한데도 사방이 캄캄하게 변하였다. 그리고 집에 가장인 듯 보이는 중후한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달빛을 등지고 걸어 들어오는 그의 모습에 내 시선이 머물렀다. 이방인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당황하지 않았으나 수줍은 미소를 내비치며 우리를 반기어 주었다. 이름 모를 몇 가지 반찬과 오랜 시간이 걸려 준비된 카레가 식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만찬을 뒤로하고 그들은 우리에게 안방을 내어주었다. 잘 때에는 그곳이 안방인 줄도 모르고 잤다가 나중에서야 전해 듣고 알았다. 안방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던 작고 아늑했던 곳. 촛불 하나로 방의 모습을 어렴풋이 살펴볼 수 있었고 그곳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글씨 몇몇이 달력처럼 보이는 숫자 아래로 적혀있었다. 소중한 날 그리고 기억해야 하는 날들이었겠지.     


"언니, 자요?"     

"아니, 왜?"     

"그냥요, 이 마을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요?"     

"글쎄.... 불가촉천민을 신도 버린 사람들이라고 한다지."    

      

너무나 곤하였던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는 이내 속으로 생각을 이어갔다. 이들을 감히 누가 신도 버렸다 하였는가.          



나는 지금 너무나 찬란한 곳에서 살고 있다.     


"선생님, 와 오늘 달이 너무 예쁜데요?"     


"그렇게 백날 휴대폰으로 찍어봐야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해서 저는 안 찍어요."     


"사람들은 그런데 왜 예쁜 달을 사진으로 담아 둘까요? 눈으로 실컷 보면 되는데. 저도 맨날 사진 찍거든요."     

 눈이 부신 세상을 살다가 이제는 눈이 나빠져서 제대로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그런 세상 속에서. 달의 빛이 얼마나 밝은지를 가늠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보름달이 뜰 적마다 초승달이 뜰 때에도 나빠진 눈으로는 그것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고 손에 들린 휴대폰으로 제아무리 힘써 담아보려 하여도 눈보다 못하다.


 달이 뿜어내는 그 온기와 빛의 밝기를 헤아리고자 하나 내가 그때에 그들과 함께 저녁 만찬에서 느꼈던 그것을 온전히 느낄 수가 없음은 왜 일까.     


이미 너무 밝고 높은 곳으로 와 버린 탓은 아닐까.     


소똥으로 지어진 집과 흙바닥에서 잠을 청하던 그 밤. 시장한 탓이었는지 맨 손이 어색한 것도 잊은 채 허겁지겁 밥을 먹고 화장실 하나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았던, 밤이 되면 마을 하나가 어둠으로 변하던 그곳을 완전히 잊어버린 채 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잊지 않으리, 잊지 않으리 하였으나 결국엔 다 녹아내려 봄을 기다리 듯 언젠간 다시 만날 추억처럼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선생님, 진짜 어두울 때 빛나는 달을 본 적 있어요?"     


 어둠이란, 나의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침묵과 함께 찾아오는 밤은 공포나 피해야 할 상대가 아닌 하루의 지친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갈 수 있는 때가 아닌가. 진정한 어둠이 찾아와야만 밤 달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그 밝기의 잔잔함과 따스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아, 그래서 나는 여태껏 몸을 누이지 못했던가. 그곳을 떠나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수없이 보내온 어둠 속에서 진정으로 어둠을 만끽하여 본 적이 없었던가. 찬란한 빛이 끊이지 않는 지금의 삶 속에서 결핍이란 단어 따위 조차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삶 속에서 나는 어둠의 부재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로 인해 달의 그 빛과 온기를 다시 헤아릴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둠 속에 거하길 선택하려 한다. 그것이 밤을 설치게 하는 악몽이 된다 할지라도, 손을 떨게 하는 두려움이 된다 할지라도. 잊고 있던 또는 아예 모르고 살았던 어떤 아픔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된다 할지라도.     




 완전한 어둠 속에 있을 때야만 밤 달의 풍요를 만끽할 수 있다면 내가 지나온 삶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 그 모든 것들과 하나씩 마주할 것이다.


그렇게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면,        

  

밤 달의 빛과 온기를 다시 느낄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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