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드라마 '굿와이프'를 정주행한, 그 마지막 날
2018년 9월, 우연히 넷플릭스에 가입하게 되어 처음 보게 된 미드 '굿와이프'. 친구의 추천이긴 하였으나 제목이 그다지 구미에 당기진 않았다. 나에겐 '와이프'라는 말이 아직 많이 어색할 뿐 더러 '좋은 와이프'라니..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러면서 보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부터 강렬하다. 정치인인 남편이 매춘부와의 성매매로 구속되고 그 옆에는 우리의 주인공 알리샤가 '남편 옆을 지키는' 모습을 언론에 내보이며 '굿와이프'의 시작을 알린다. 죠지타운 워싱터 로스쿨을 졸업한 후 짧게 일을 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15년 간 아이 둘을 키우는 전업 주부로 살아온 알리샤에게는, 이 사건으로 인해 한 순간에 모든 게 바뀌게 되었다. 크고 멋진 단독주택에서 살다가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 둘을 데리고 작은 아파트먼트로 이사하게 된다. 마당 딸린 2층, 3층 주택에 사는 미국인들에게 정원도 없는 아파트는, 그저 편의성만을 추구하는 작은 공간일 뿐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아파트 공간은 집으로, 사무실로, 파티장으로, 알리샤만의 독립된 공간으로 시간에 따라 진화 변모한다.
다행히 대학 때 갖춰둔 변호사 자격증 덕분에 알리샤는 '락하트 가드너' 로펌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곳은 알리샤의 대학 학창 시절에 잠시 스쳐지나간 연인 윌 가드너와 여성로펌을 만들길 꿈꾸는 다이앤 락하트가 설립한 로펌이다. 미국 사무실은 창립자들의 성을 따라 이름을 짓는게 유행인가 보다. 이 회사는 회가 거듭할 때마다 계속해서 이름을 바꾸게 된다. '데이터마케팅코리아'를 창립하여 2년 넘는 시간 동안 회사를 꾸려온 나로선 이들의 갈등, 조직원들의 인사 문제, 인테리어 등 이슈를 보면서 너무도 공감을 하였고, 또 한편으로 안심을 했다. 아, 우리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멋져 보이는 변호사들도 비슷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알리샤는 다양한 사건들을 멋지게 해결하면서 본인의 숨겨둔 변호사로서의 자질과 스킬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러면서 뜻이 맞는 파트너 캐리 아고스와 따로 나와 회사도 차리고, 혼자서 본인의 아파트에서 사무실을 쓰며 독립된 회사도 세워본다. 미국 사회는 정말이지, 네편 내편 따위 없고, 의리 따위는 이미 개나 줘버린 것 같다. 알리샤의 편이란 그 시점에, 그 상황에서 내게 이익을 갖다주는 사람일 뿐이다. 주인공 알리샤도 마찬가지다. 잠깐 잠깐의 우정을 그리긴 하지만 결국 그 상황에서,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어제 만난 친구를 버리고 지금까지의 적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래서 굿와이프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는 착한 사람 1명 없으며, 나쁜 사람도 1명 없다. 즉, 그들 각자의 관점에서 상황을 보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다 이해가 되더라. 그래서 매우 혼란스럽고 재미난 드라마였다. 영원한 천사도, 영원한 악마도 없는 드라마이다.
내가 알리샤의 상황에 쳐했다면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 어떤 선택을 했을까?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은, 자신과 혼인 상태로 있는 남편과 별거를 하고 각자 따로 연애도 하면서 결코 쉽게 남편을 져버리진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 서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피터 플로릭은 아내 알리샤가 정치인의 이미지를 가져다주는데 완벽하고, 알리샤는 사건을 해결할 때 피터의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결혼이란 로맨틱한 게 아닌, 제도로서 활용가능한 하나의 수단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대적인 결혼의 의미보다 조선시대적 제도적 결혼의 의미를 떠올려 보았다.
드라마는 회차를 더할수록 누군가의 알리샤가 아닌, 알리샤 자신의 알리샤를 찾아가는 것 처럼 보인다. 알리샤는 책임이란 갑옷 아래 본인이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지 헷갈려하고, 진정한 사랑을 선택할 시점에 결국 책임과 역할론에 사로잡혀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일을 너무나 멋지게 잘 처리하면서 본인의 개인적인 감정은 챙기지 못하는 것이다. 알리샤의 멋진 멘트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었다. "My free consultation is over. Am I hired?" "(자신을 찾아온 고객에게) 무료 상담은 끝났습니다, 돈 내시겠어요?" 미국은 전문가의 시간과 노력에 대한 댓가를 인정해주는 나라인 것 같다. 조사관들에게도 항상 bill을 청구하겠다며, 시간당 얼마냐고 물어본다. 자본주의 끝판왕 미국에선 나의 '몸값'을 언급하는게 어색하지 않은 일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 고객들은 조금이라도 더 꽁짜로 얻어낼려고 계속 미팅을 요구하며 계약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알리샤의 저 멘트를 날려주고 싶다. "더 알고 싶으면 돈을 내라고!". 그런데, 난 시간당 얼마의 가치를 받을 수 있을까? 나의 실력을 더 기르고 싶다는, 그리고 얼토당토않게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허허허...
마지막.. 방금 본 마지막 회에서 알리샤는 결국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본인의 책임을 끝까지 다한다. 책임이란 바로 '굿와이프'로서의 역할, 혹은 연기이다. 남편이 구속될 위험에 처하였는데 끝까지 그를 변호하고 파트너인 다이앤을 배신하면서까지 악착같이 남편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힘을 다한다. 그리고 결국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그러나 다이앤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원하던 사랑 제이슨을 찾으러 간다. 제이슨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조금만 더 기다려줘'였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제이슨의 표정은 기다리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끝에 어떻게 됐는지 보여주진 않았지만 결국 알리샤는 굿와이프로서의 책임을 다하다가 타이밍을 놓쳐버리지 않았을까? 윌 가드너를 놓쳤듯이 말이다. 주인공 알리샤가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그녀의 편을 온전히 들순 없다. 왜냐하면 굿와이프가 되려다가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너무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의 제목은 알리샤를 통해 비꼬고 있었다. 겉으로 굿와이프처럼 보였으나 그녀는 굿퍼슨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또 마구 비난할 수도 없는, 그런 캐릭터다. 그래서 정말이지 미드 굿와이프는 너무나 매력적인 드라마이다. 한동안 이 작품을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