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제 2막극의 시작을 알리는_
만 5년하고 5일을 채우고 그렇게 내 인생의 첫 직장을 퇴사했다. 성격상 지나간 일에 미련을 갖고 뒤돌아보는 스타일이 아니다보니 말그대로 쿨하게 떠났다. 그렇게 5년을 매일 왔다갔다 했지만 서운하거나 아쉬운 느낌보단 희한하게도, 언젠간 떠날 곳을 떠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떠나고 보니 직장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잠깐 다른 사람의 옷을 입었다가 퇴근할 땐 얼른 다시 나의 옷으로 갈아입는. 그만큼 애정을 갖고 열심히 다녔다기 보다는 다녀야 하니깐 매일매일 다녔다.
소위 '비전공자'로서 '전공자'들의 IT 세상 속에서 기를 쓰고 이 악물며 버텨온 회사였다.
신입 때의 첫 질문 혹은 첫 소개멘트에는 항상 '비전공자'란 키워드가 들어 있었고, 어느 새 거기에 익숙해져 나 역시 'One of 비전공자'로 분류되어 그렇게 살아왔다.
사회학을 전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좇아 오다가 '진짜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의 뒷 세계(?)를 알아야 하니 정말 죽을 맛이 었다. 정말 좋은 선배이자 사수를 만나, 마치 과외 선생님 마냥 내게 흰 종이에 DB 테이블 구조도를 그려주시며 친절히, 여러 차례, 나중엔 이 악물며 몇 번이고 설명해주셨지만 그저 그것은 내게 암기 대상일 뿐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온전히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었다.
고객사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 약 1년 6개월을 파견되어 '분석/설계자'라는 역할을 부여받고(그땐 그게 뭔지 몰랐다) 그 낯선 세상에 적응하려 애를 써댔다. 나중엔 매일매일 '퇴사할까?', '왜 이러고 있지?'란 생각들로 괴롭다가, '아니야, 버텨야해, 딱 5년만 버티자'라는 의지로 다시 마음을 잡고 그렇게 살아냈다.
물론 그 가운데 정말 즐거운 일들도 많았다. 동기들과의 집체 교육 받던 게 참 재미있었고, 일하다가 중간중간 선배들이 커피 사주며 이런 저런 신세한탄과 각종 뒷담화들을 듣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시스템 오픈 한 달전에는 밤 11시에 퇴근하여 새벽 5시에 다시 출근해서 사용자테스트를 하며 '내가 내가 아닌' 유체이탈식 생활도 해보았다. 그 과정에서 내 핸드폰이 꺼진 채로 집에서 잠이 들어 당시 팀장님께 혼이 났던 기억이 난다(죄송해요, 전화하실 줄 알고 미리 껐던거에요...ㅎㅎ)
다들 바쁘고 정신없는 틈을 타 나이 또래 비슷한 동료들과 밤에 일끝나고 이태원으로 건너가서 형형색색의 알콜을 마시며 쿵쿵 거리는 음악을 들으며 이태원이란 곳을 즐겼던 일들, 그리고 그 와중에 나라도 '워라밸'을 지키겠다며 홍대에 있는 발레 학원에서 매주 3회 발레를 배우고 오전에는 프리랜서 개발자 분들하고 중국어를 공부하고(ㅋㅋ), 회사 업무 빼고 열과 성을 다했던 거 같다.
만 5년이 될때까지 나의 정신세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가 끝나고 빅데이터 프로젝트로 파견되었고, 그때 당시 빅데이터가 뭔지도 모른채, 요즘 뜬다는 것이라카더라카더라만 듣고 눈만 껌뻑이며 내 자리만 지키고 앉아있었다. 그래도 빅데이터 프로젝트에서는 '비전공자'로서 좀 더 빛을 발할 수 있었고, 덕분에 조금 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 프로젝트가 지금의 내 모습으로 이끌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
그렇게 만 5년 5일을 보내고 지금의 스타트업에서 또 만 4년 6개월을 보냈다. 직장생활의 반은 대기업에서, 또 나머지 반은 소기업이자 스타트업에서 보낸 셈이다. 대학생들과 인턴들, 그리고 신입사원들, 하물며 동기들을 만나면 내게 참 많은 질문을 한다. 어떻게 안정적인 대기업을 때려치고 스타트업으로 이직할 생각을 했냐, 지금 월급은 잘 나오냐, 더 좋아진 점은 무엇이냐 등등.. 하긴, 나도 참, 남들이 많이 안해볼 경험만 골라 하는 거 같다.
이러한 질문들을 지난 5년 간 받아오면서, 또 대답하면서, 아 이런 경험을 글로 남기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이제서야 브런치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스타트업의 초기 founder로서, 그리고 팀장으로서 그 간 겪은 좌충우돌 상황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작성하여 아주 미미하게라도 우리나라의 스타트업들에 더 도전하는 입사자들이 생길 수 있게끔, 그래서 스타트업들이 더 잘되고 유니콘이 더 잘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자양분이 되었으면 한다(아주 원대한 비전처럼 들리지만). 이러한 미션을 갖고 하나씩 글로 풀어써보겠다. 혹시라도 도전을 주저하고 오늘도 그저 회사에 '들어갔다, 나오고' 있는 수백만의 직장인들에게 희망 뿜뿜, 도전 뿜뿜 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