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y H Apr 14. 2024

엄마를 용서하기로 했다

뒷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더라

어려서는 엄마 아빠 두 분의 뒷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내가 한국에서 중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조기유학생으로 영국에 왔는데 엄마 아빠는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영국을 오셨으니 뒷모습을 보인 것은 항상 나.


그때 당시 나 말고도 한국에서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조기유학을 온 케이스는 꽤 많이 있었는데 우리 부모님처럼 영국에 한번를 와보지 않은 케이스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면서 엄마 아빠에 대한 서운함은 커져만 갔고 나의 생활을 이해는커녕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엄마아빠와의 대화는 점점 형식적이 되어갔다.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돌아갔는데 내가 없는 우리 가족은 너무나도 바쁘게 잘 살고 있다는 철없는 생각에 내 마음의 문이 점점 닫힌 것이 아닐지, 이제 와서 생각해 본다. 내가 여기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가 가장 살아오면서 힘들고 울기도 많이 울으면서 지낸 시간인데 그때당시 과학고를 다니던 언니는 엄마 아빠의 온갖 관심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기에.

내가 만 16살, 영국에 온 지 3년 정도 되었을 때 나는 엄마 아빠한테 울면서 빌고 빌며 전화를 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

막 GCSE라는 중등과정을 끝낸 시점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점 하나 찍었으니 이제는 돌아갈 수 있겠다 하는 마음이었나 보다.


제발 한국에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고 빌었다. 보딩스툴 기숙사 1층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전화기를 붙들어 잡고 차디찬 타일 바닥에 앉아 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엄마는 흔들림이 없었다. 네가 선택한 길이니 책임을 지고 끝까지 해라. 지금 네가 한국에 들어오면 아무것도 안 된다.


정말 매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매정하게 말을 했던 엄마는 마음이 편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로 나를 위해 마음을 독하게 먹었을 것을. 만약 엄마가 영국에 한 번이라도 와서 나의 생활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그 외로움을 이해했다면 내 상처가 덜 했을까. 어린 내 눈에는 언니만 생각하고 사랑한다고 느껴졌던 그 상황이 아니었다면 내 상처가 덜 했을까.


이제 25년이 넘었는데도 나는 아직도 엄마에 대한 그 상처와 서운함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부모님과 일본으로 가족 휴가를 다녀오고 이제는 엄마를 용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가 얼마

전 건강진단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어 정밀검사를 하시게

되었는데 3박 4일 일본에서 함께 휴가 아닌 휴가를 하면서 별 생각이 다 들더라. 만약에 진짜 엄마가 암이라면, 엄마를 용서하지 못한 내 마음, 딸한테 용서받지 못한 엄마의 마음. 그 짐을 어찌 지고 갈 것인지.


다행히 정밀검사 결과는 암이 아닌 것으로 나왔는데 이 것이 참 하늘이 우리에게 내린 선물이 아닌가 싶더라.


일본에서 우리는 여행을 계속하고 엄마 아빠는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셨는데 공항에서 두 분이 손을 잡고 출국을 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한참을 울었다. 내가 어려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인데 아, 어린 내가 저 모습을 그때당시 보았다면 그것 역시 감당하기 힘들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갈수록 작아지는 두 분의 뒷모습. 이제 다 내려두고 우리 엄마, 내가 용서해야겠더라.

작가의 이전글 “영어 잘하시네요” - 좋은 말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