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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웨딩쇼 : 우리다움이 빛난 작은 축제

누군가의 예식이 아닌,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2부 예식

by amy moong


사진촬영이 끝나자, 다시금 정신없이 분주해졌다.

날 위해 대구에서 도시락과 샌드위치를 픽업해 온 친구가 도착했고 2부 예식을 위한 다과 준비를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하지만 다행히, 먼저 도착해 있던 지인들의 작은 손길들 덕분에 부담이 한결 덜해졌다.


배우자는 2부 포스터와 안내문을 배치했고 누군가는 바나나를 썰고 누군가는 샌드위치를 가지런히 놓고 누군가는 도시락 위에 웨딩 스티커를 하나씩 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누가 누구를 ‘도와준다’는 말보다 ‘함께 만든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감동스러운 풍경이었다.



그사이 자갈마당 한편에서는 축가를 맡은 밴드팀이 리허설 중이었다. 황금들판을 배경으로 한 그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 포스터의 한 장면처럼 인상 깊었다. 그 순간만큼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마저 음악이 된 듯했다.


2부는 공연 위주의 예식이라 메인무대 구성을 새롭게 바꿔야 했다. 악기를 우선 배치하고 그에 맞춰 아치와 조화 센터피스를 이동했다. 하지만 아침부터 말썽이던 아치는 2부에 들어서면서 점점 더 아래로 내려앉았고, 결국 우리는 아치의 가운데 부분을 아예 더 낮춰 ‘하트’ 모양처럼 만들어버렸다. 그 즉흥적인 선택이 오히려 이 결혼식의 잊지 못할 귀여운 상징처럼 남게 되었다.



다과 세팅을 마치자마자 나는 서둘러 수정메이크업에 들어갔다. 하필 1부 마지막 행진 때 너무 울어버린 탓에 손볼 곳이 꽤 많단다. 방 한켠에 앉아 먼저 도착한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메이크업과 헤어, 베일까지 손을 보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 사이 바깥에선 친구들이 하나둘 도착한 것 같아 내 마음은 또다시 조급해졌다. 몇몇 친구들은 방 안으로 들어와 나를 발견하곤 조심스레 선물을 건넸다. 또 한 번 미안하고 고마운 순간이었다. 이렇게 멀리까지 시간 내어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에 축의금은 정중히 사양했건만, 빈손으로 오기엔 마음이 무거워 선물이라도 준비한 그들을 보며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또 다른 마음의 짐을 지어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메이크업 수정이 길어지는 사이, 바깥에서는 예식 시작 시간을 늦추고 있었다.

마침 숙소 근처 옛 명소를 구경하러 온 아이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도착해 있었기 때문. 예식은 그렇게 약 10분 늦어졌고, 덕분에 친구들과 짧게나마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친구들과 셀카 한 장이라도 남기고 싶었는데 경황이 없었던 게 지금도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눈으로 직접 마주한 그들의 미소는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구경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타는 아이들은 큰 소리로 외쳐주었다.

— 결혼식 잘하세요!

하.. 너무 정겹잖아... 아이들의 꾸밈없는 인사에 하객들은 모두 함박 웃음꽃이 피었다.



—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던 오후



드디어 2부 웨딩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고른 입장곡이 흘러나오고 배우자의 조카가 꽃잎을 흩날리며 먼저 신랑이 입장했다. 이어 내 조카의 작은 손에서 흘러내린 꽃잎들은 잔디마당에 내려앉았고 나는 그 꽃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두 번째 입장이라 그런지 조카들의 솜씨도 금세 나아진 모양이었다.



하객들 앞에서 다소곳이 인사한 뒤 우린 자연스럽게 피아노 옆에 앉았다.

배우자의 피아노 반주 위로 그의 첫 소절이 차분히 시작되었다. 그 순간 내 눈앞의 많은 사람들이 보이자 긴장이 확 몰려왔다. 역시나 예상대로 긴장한 나의 목에는 힘이 잘 들어가질 않았다. 그래도 ‘에라,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 불러보자.’— 라는 심정으로 그냥 담담히 목소리를 얹었다. 참 열심히 연습했는데 사실 소용없게 돼버렸지만 뭐 그래도 괜찮았다. 아름다웠으면 됐다. 정제된 목소리보다 우리의 진심이 하객들에게 닿았으면 됐다.



우리의 듀엣이 끝난 뒤 배우자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하객들이 없었다면,
이 예식을 이렇게까지
정성 들여 준비했을까요?


라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과거에는 ‘결혼식’이라는 틀이 먼저 존재하고 그걸 참가하는 ‘우리’가 있다고 느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날만큼은 분명히 ‘이렇게 함께 나눌 사람들이 있기에 더 간절하게 정성껏 준비한’ 하루였다. 그만큼 이 예식은 하객들이 우리와 함께 주인공인 축제였다.


배우자는 이때부터 점점 감정이 북받쳐, 식 중간중간 여러 번 울컥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의 모습이 난 이상할 만큼 더 멋져 보였다.



다음 순서는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 낭독시간

내가 먼저, 미리 써둔 편지를 꺼내 조심스레 읽어나갔다. 집에서 편지를 쓰던 밤, ‘내가 정말 이런 사람을 만났구나’ 싶어 너무 행복해서 울컥했었지만 다행히 이날은 눈물 없이 차분히 읽어나갈 수 있었다. 배우자 역시 진심을 꾹꾹 담은 편지를 나를 향해 천천히 읽어주었다.



이제 하객 소개 시간

1부와는 달리, 2부 하객들은 우리가 직접 한 명 한 명 소개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뜻깊은 순서가 아니었나 싶다. 작은 결혼식이었기에 가능했던 순서이자, 하객이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이 자리를 우리와 함께 만들어간 주인공처럼 느껴지도록 한 우리만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배우자의 ‘눈물 릴레이’

하객 소개를 하다 여러 감정이 밀려온 배우자는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었다. 나도 따라 울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즐거운 분위기라 그러진 않았다. 배우자가 울컥했던 순간, 내 친구의 귀여운 아들내미가 쪼르르 달려와 휴지 한 장을 건네준 장면은 이 결혼식의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였다. 그 작고 따뜻한 손길 하나가 이 날의 진심을 다 보여주는 듯했다.


이렇게 하객과 가까이 소통하며, 이토록 사람 냄새나는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감사했다. 사실 나는 혹시 울까 봐 내 하객소개글을 간단하게 작성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들과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담아서 소개할 걸 하는 조금의 아쉬움도 든다.



— 음악으로 물들고 마음이 춤추던 시간



이어진 축가 공연은 1부에 이어 배우자의 누나와 조카가 다시 한 곡을 선사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을 연주하는 누나의 아름답고 깊은 바이올린 선율과 조카의 옥구슬 같은 맑은 목소리는 파란 하늘 아래 반짝이는 황금물결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큰 울림을 남겼다. 그 울림은 바람을 타고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 깊은 곳에 도착했다.



배우자 친구가 이어서 축사를 전했다.

친한 동생이 전하는 진심 어린 말들은 꾸밈없고 담백했지만 그 안엔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만큼의 깊이와 울림이 담겨 있었다.


배우자의 큰외삼촌께서도 노래 한곡으로 축하를 전해주셨다.

연륜이 묻어나는 굵은 목소리는 그 자체로 인상 깊었고, 꼬꼬마 어린이부터 30~40대, 50대를 넘어 60대, 7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자리를 빛내주는 이 순간이 무척 감사했다.



이후 배우자의 피아노 독주가 이어졌다.

첫 곡은 어머니를 위한 ‘언제나 몇 번이라도’, 다음 곡은 나를 위한 ‘러브어페어’. 연습 때보단 실수가 있었지만 그 서툼이 오히려 더 따뜻했다. 능숙한 실력보단 진실된 마음이 담긴 그 연주는 그 어떤 무대보다도 평화롭고 감동적이었다.



축가의 마지막은 우리가 함께 활동 중인 아마추어 밴드의 공연이었다.

일렉기타 멤버가 사정상 함께하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통기타와 베이스, 카혼 그리고 파워풀한 보컬이 어우러져 정말 멋진 무대를 완성해 주었다. 배우자까지 합세한 밴드의 마지막 음악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동안 나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싶었다.


그날의 음악은 황금들판과 따사로운 햇살, 산들바람, 그리고 사람들의 미소까지 하나로 엮어, 그날의 모든 풍경을 하나의 아름다운 장면으로 완성시켜 주었다. 그 속에서 우린 자꾸만 하객들의 얼굴 표정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들이 행복해하고 있는지, 즐거워하고 있는지, 먹을거리는 충분히 잘 즐기고 있는지. 그날만큼은 우리에겐 무엇보다 ‘그들’이 가장 중요했다. 그들의 웃음이 우리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날의 또 다른 주인공은 옆집강아지, 촐랭이였다.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는 촐랭이는 낯선 하객들 앞에서도 애교를 아낌없이 발휘하며 단숨에 분위기 메이커가 되었다. 덕분에 촐랭이와 사이가 좋지 않은 길냥이들은 예식장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촐랭이의 귀여움은 하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며 공간을 한층 더 온화하게 물들였다.



밴드공연까지 끝난 뒤, 약 5~10분 정도의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살사용 원피스로 갈아입었고 머리에는 빨간 꽃핀을 꽂고 하얀 구두로 갈아 신었다. 배우자도 재킷을 벗어던지고 귀엽게 멜빵을 둘렀다. 우린 자유로워졌고 한층 더 우리다워졌다.

그 사이 밴드팀은 음향장비와 악기를 정리했고 하객들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탁 트인 논 풍경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담소를 나눴다.



— 우리 다운 피날레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순서! 둘만의 특별한 댄스타임


살면서 누군가 앞에서
‘살사’라는 걸 출 일이 있을까?
그것도 무려 인생의 가장 소중한 날,
결혼식에서 말이다.



첫 등장부터 배우자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보니 모든 긴장은 사르르 녹고 웃음 만이 날 뿐이었다. 한 달간 연습하면서도 참 재밌었는데 실전은 반응이 더 좋아 더 재밌었다. 사람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 우리의 서로를 향한 시선과 몸짓이 하나의 리듬을 되어 예식장을 가득 채웠다. 물론 몇몇 동작들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무대 위에서 춤추는 우리를 향해 쏟아진 하객들의 웃음소리는 그 어떤 것보다 우리에겐 큰 기쁨이었다.


정말 마지막으로는, 이 예식을 함께 만들어준 ‘도우미’들을 소개했다.


우리 둘만으로는 해낼 수 없었던
이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이유.


그들이 함께였기에 해낼 수 있었던, 그래서 더 감사했던, 그래서 야심 차게 준비한 순서였다. 마치 뮤지컬의 커튼콜처럼 사회자가 한 사람씩 이름을 호명했고, 그들에게 모두가 박수를 보낼 때마다 괜히 우리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그렇게 2부도 끝이 났고 이제 남은 건 사진 촬영뿐이었다.

딱딱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자연스럽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하객 한 명 한 명과 사진을 남기며 이날의 마지막 추억을 담아갔다.


사진 촬영을 마친 하객들은 한 손에는 도시락, 다른 한 손에는 먹다 남은 다과 박스를 들고 작별 인사를 건네며 차례로 자리를 떠났다. 입구에서 모두를 배웅하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그 순간순간 함께 나눈 눈빛과 인사로도 충분했다.


— 끝나지 않은 여운



마지막 가족들까지 배웅한 뒤에야, 비로소 정말 모든 것이 끝이 났다.

모두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 사람들로 북적이던 예식장은 어느새 조용한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그 풍경을 마주하자 뿌듯하면서도 오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연극이 끝난 뒤 이런 기분일까? 분명 끝이 났지만 우리 둘의 마음속에선 여전히 그 시간이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하객들이 남긴 글을 찬찬히 읽어보는데 그날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과 표정이 잔상처럼 마음 한구석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아쉽게 초대하지 못했던 이들, 초대했지만 부득이 오지 못했던 이들과 함께 이 모든 걸 공유하지 못한 게 아쉬워서라도 한번 더 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흔히들 결혼식을 마친 후 “아, ‘드디어’ 끝났다.”는 말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고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우리의 입에선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아.. 정말 끝났구나.
아쉽다. 다시 하고 싶다..

그날은 분명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순간들의 연속이었고 그 순간들이 모인 하루는 우리에겐 단순한 결혼식 그 이상의 의미였다.

마치 길고도 따뜻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듯, 이렇게나 긴 여운이 남는 결혼식이 또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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