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시작했지만, 모두가 함께 완성해준 1부 예식
헤어메이크업 원장님과 배우자의 매형을 차에 태우고 이날만큼은 우리의 예식장이 될 숙소로 향했다. 길가엔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익숙했던 풍경이 어딘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그날은 시작부터 유난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오늘 하루는 왠지 다를 것 같다’는 예감이 마음 깊숙이 차올랐다.
숙소에 도착하자 사랑스런 길냥이들이 하나둘 우릴 반겨주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익숙한 모습이 너무 정겹고 다정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분한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떨림도, 걱정도, 의외로 들지 않았다.
원장님의 안내에 따라 팩을 붙이고 소파에 누워있는 동안, 부엌에서는 배우자와 원장님의 조곤조곤한 대화소리가 들려왔고, 문 밖에선 배우자의 매형과 조카, 그리고 사회를 맡은 배우자 친구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오갔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 조화로운 소리들이 묘하게 안심되었다.
배우자가 자주 이야기하던 ‘집단지성’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여러 사람의 손과 마음이 모여 각자의 역할을 해내니 어느새 모든 것이 빠르고 자연스럽게 완성되어 가는 듯 했다. 누군가의 지시가 있지 않아도,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매형은 풍선을 불었고 조카는 조화 꽃잎을 하나씩 떼어내는 동안 사회자는 전기선을 정리했고 배우자는 주차선을 긋고 조화 센터피스를 멋스럽게 배치했다. 이날 우리의 최대 복병이었던 아치는 아래로 무너져 내렸지만 모두가 힘을 모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순간 이상할 만큼 든든함이 느껴졌다.
우리 두사람이 만든 결혼식이지만, 그날의 모든 순간은 우리 두 사람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마치 ‘마을잔치’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내내, 내 마음은 저절로 따뜻하게 물들었다. 그 때 조카가 부엌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더니 화장하는 나를 향해 말했다.
— 고모, 너무 이뻐요.
그 말이 너무 순수해서 피식 웃음이 났고 가슴 한켠이 말랑해졌다.
하나둘 도착하는 가족 친지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서둘러 메이크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외숙모들도 기꺼이 나서서 예식장 꾸미기에 힘을 보태주셨다. 그들의 손길은 다정했고, 그 모습은 정겨웠다. 요즘 각박한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서로 돕고 살던 옛 시절의 풍경이 그 안에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 걸 내가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이 불안했지만, 어느새 ‘알아서 잘 했겠거니’ 하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버렸다.
그때 2부 공연을 맡을 밴드팀이 음향 장비를 들고 도착했고 사진 촬영을 맡아준, 마지막 지인까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이제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든든한 지원군들이 다 모인 기분이었다.
딱 12시가 가까워질 무렵, 드디어 내 메이크업은 모두 끝이 났고 때마침 마을 할머니 두분이 손수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우리가 미리 가있지 않았던 탓이다. 원래는 열두시 전에 마을회관 입구에 서서 식사하러 오신 하객분들을 환히 맞이할 계획이었지만, 예정보다 늦어져 그러지 못했다.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서자 마을분들 모두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고 다들 박수로 맞아주셨다. 쭈글쭈글한 손으로 몇 개의 흰 봉투를 건네주시는데, 원래 축의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던 우리지만 그 돈만큼은 그들의 따뜻한 정이 느껴져서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배우자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나 역시 눈가가 촉촉해졌다. 괜히 죄송한 마음마저 들었다. 우린 해드린 게 그리 많지 않은데, 의무나 예의 때문 만이 아닌, 그들의 진짜 진심이 담겨 있어서, 진심으로 우릴 축하해주시는게 느껴져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 눈빛들 속엔 “이제 너희도 우리 마을 사람이야”— 라는 말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마치 이 마을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서 또한번 마음 한켠이 몽글해졌다.
이제 다 함께 뷔페 식사를 하는 시간이다.
입구에 세워둔 소박한 결혼식 손팻말 하나가 시골스러운 정취를 더했고, 파란 천막 아래 일렬로 줄을 서서 차례차례 음식을 받아가는 모습은 맑고 쨍한 햇살 아래 더없이 따뜻해 보였다. 정말 ‘마을 잔치’란 말이 딱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날씨가 좋다못해 햇빛이 너무 강해 야외에서 먹는게 쉽진 않았지만 누구 하나 얼굴을 찌푸리거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우리가 고심해서 고른 메뉴를 다들 맛있게 즐겁게 즐겨주시는 모습에 엄마처럼 뿌듯한 마음이 피어올랐다.
메뉴 하나하나 다 맛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드레스가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배우자 누나가 정성스레 담아준 음식을 몇 점 먹으며 그들 사이에 살짝 동화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하객인 듯, 하객들 모두가 주인공인 듯, 모두가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뷔페음식은 넉넉했고 식사 시간도 생각보다 여유로웠다. 식사를 마친 하객들은 수국길을 따라 예식장으로 천천히 이동했고, 주차안내를 맡아준 친구 둘은 다시금 황금들판 앞으로 이동해 또한번 우리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줬다.
하객들은 하나둘 자리에 앉기 시작했고 맑은 하늘 위로 드론이 소리를 내며 날기 시작했다.
내리쬐는 햇살은 조금 따가웠지만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마음은 한결 평온해졌다. 감나무 아래 나무벤치에 나란히 앉은 할머니들의 온화한 미소는 햇살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내가 손수 만들어준 꽃바구니를 든 내 조카와 함께 감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 작은 손을 꼭 잡고 있으니 전혀 외롭지 않았다.
드디어 1부 예식이 사회자의 잔잔한 소감으로 시작되었다.
부드러운 말투 안엔 배우자를 향한 사회자 친구의 진심어린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첫 순서는 장작 점화식
다른 웨딩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만의 상징적인 순서였다. 이제 이날 안내를 맡아준 소중한 지인이 첫 역할을 해줄 차례였다. 불붙은 막대기를 양가 어머니께 전하자, 두 분은 조심스럽게 장작에 불을 붙이셨다. 막대기 끝에 미리 묻혀둔 기름 덕분에 다행히 연습때보다 쉽게 불이 붙었고 작은 불꽃이 천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라서 할 수 있는, 이 시골집과 참 잘 어울리는, 우리다운 의식이었다. 작은 불꽃이 천천히 타오르는 걸 바라보며 우리가 함께 피워갈 삶도 그렇게 오래 따뜻하게 타오르길 바랐다.
이어서 우리가 조심스레 걸어나갈 시간이 왔다.
각자의 귀여운 조카들과 함께, 천천히. 내 조카는 아직 어려서 꽃잎을 위로 던지는 게 쉽지 않은듯 했다. 그래도 그 모습은 아쉽다기 보단 사랑스러웠다. 조카가 만들어준 어설픈 꽃길이 나에겐 가장 아름다운 길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무대 중앙에 다다른 우리는 하객들을 향한 서툰 인사를 마치고 서로를 마주보며 천천히 허리를 숙여 처음으로 정식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서로가 정성스레 쓴 혼인서약서를 한 문장씩 읽어 내려갔다.
장난보단 진심, 웃음보단 온기로 가득한 우리의 다짐이었다. 앞으로의 삶에서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곁에 있을 것인지를 나의 말로, 너의말로, 하나하나 담백하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서약이 끝난 뒤, 조카들이 반지를 전해주었다.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가 들어가는 순간, 우리 둘의 마음도 함께 맞물려 둘에서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평소 형식적이라고 생각했던 이 순서들이 그 순간 만큼은 마음깊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이어서 지인들의 덕담 시간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올리브그린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백발의 마을 어르신께서 문학적인 울림을 담은 덕담을 전해주셨다. 황금들판을 배경으로 한마디 한마디 내뱉으시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 뒤로 이어진 또 다른 지인의 담백하고 따뜻한 덕담까지.
평소 같았으면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든 말의 무게를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다.
지인의 덕담까지 끝나고 나자 사회자의 성혼선언문 낭독으로 드디어 우리는 공식적인 하나가 되었다. 이제 정말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축가는 배우자 누나와 조카가 함께 준비한 선물이자, 이 예식의 백미였다.
어른이 낼 수 없는, 아이 만의 티없이 맑고 투명한 목소리는 바람처럼 순수하게 퍼져나갔고 누나의 영롱한 바이올린 선율은 황금들판처럼 반짝였다. 황금들판과 우리 둘, 그리고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과 청아한 목소리까지. 이보다 더 맑고 행복한 순간은 없었다. 어쩌면 1부 예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이 영상만 보면 괜스레 흐뭇해진다.
배우자 누나의 눈물 섞인 소감에 배우자의 눈은 촉촉해졌고 나도 따라 눈물 한방울, 아니 여러 방울을 떨궈냈다.
아! 그러다 문득 식 중간에 깜빡 잊은 게 떠올랐다. 귀걸이도, 베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 밥 먹고와서 하기로 해놓고 원장님도 나도 이 아름다운 풍경에 푹 빠져 완전히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모든 게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걸, 이날은 정말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순서는 행진
웨딩홀처럼 따로 행진로드가 없었기에, 우리는 우리만의 특별한 행진을 하기로 했다.
하객 한 분 한 분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맞잡고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이 행진은 그 어떤 격식보다 따뜻하고 생생한 순간이었다. 몇십 년 후 이 장면을 다시 보아도, 아마 그때처럼 마음이 찡해질 것만 같다.
이토록 하객과 가까이 소통하며
마음을 나누는 행진이 또 있을까.
밝은 얼굴로 행진을 시작했던 나는 배우자의 지인이 눈물을 머금으며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과 마주쳤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터져 버렸다. 사실 식 전엔 엄마 얼굴을 보면 울까 봐 걱정했던 나인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 뜻밖의 눈빛에서 감정이 터져버린 것이다. 그건 슬픔이 아닌, 순전한 행복과 감사의 눈물이었다. 이 모든 순간이 너무 벅차고 고마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사진촬영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하는 야외 사진촬영은 그 어느 곳보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아름다웠고, 소박했지만 평온했다.
사진촬영가로 나서준 지인의 익살맞은 말 한마디에 방긋 웃게 되는 우리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필름 속 한 장면 같았다. 형식적인 포즈와 표정 대신 더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웃음이 묻어나는 순간들이 사진에 차곡차곡 담겼다. 이렇게 딱딱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사진 촬영이라면 언제든지 다시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들 만큼, 진심과 온기가 가득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웃음과 눈물, 고마움과 설렘이 뒤섞인 우리의 1부 예식은 조용히 막을 내렸다.
함께했던 사람들의 온기와 그날의 공기가 마음속 깊이 스며들어 오래도록 잔잔히 머물렀다. 파란 하늘을 잠시 올려다본 뒤, 우리는 곧 이어질 또 다른 순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