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공간이 결혼식장으로 바뀌기까지, 다섯 날의 기록
드디어 예식이 5일 전으로 성큼 다가왔다.
우리는 예식 준비에만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과감히 5일간 숙소 문을 닫고, 가장 중요한 일부터 하나씩 차근히 완성해 나갔다.
정성의 조화 장식
먼저 나는 마지막 숙소 청소를 마친 뒤, 조화 작업을 마무리했다.
센터피스는 이미 완성해 두었지만 의자나 아치에 달 장식은 아직 손보아야 할 부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완성된 조화 센터피스는 잔디 마당 위에 올려보았는데 그 모습이 제법 앙증맞게 어우러져 마음에 들었다.
공간을 정돈하다
그간 미뤄두었던 숙소 재정비에도 손을 댔다.
나는 마당의 잡초를 정리하고 무성하게 자란 측백나무를 예쁘게 이발하였고, 배우자는 저 멀리 시야를 가리고 있던 뽕나무를 과감히 베어냈다. 매일같이 시선을 걸리게 하던 뽕나무가 드디어 사라지고 나자 속이 다 후련해졌다.
이어 봉당의 벗겨진 페인트를 다시 하얗게 칠하고, 다과 테이블의 위치에 맞춰 주방 조명도 새롭게 옮겨 달았다. 그렇게 숙소는 점점 예식에 적합한 공간으로 변신해 갔다.
부족한 틈을 채워 줄 물건들
그날 오후에는 입구에 둘 결혼식 포스터 액자와 여분의 의자를 지인분께 빌려왔다. 포스터 액자는 외부에 뒀더니 사진 사이로 습기가 살짝 차는 것이 보여 실내에 보관하다가 당일에 꺼내기로 했고, 자갈마당에 놔둘 의자도 여유분으로 더 챙겨 왔다.
드디어 부케를 손에 쥐다
집에 돌아오니 드디어 기다리던 조화 부케가 도착해 있었다. 판매자분과의 소통이 원활했던 덕분일까, 받아본 부케는 기대했던 만큼 마음에 들었고 ‘역시 조화를 선택하길 잘했다’— 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으로 써 내려간 결혼 서류
발등에 불이 붙고 나서야 부랴부랴 예식에 필요한 여러 서류들을 정리했다.
‘혼인서약서’에는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각자의 다짐’, 그리고 ‘함께의 약속’을 간결하게 담아냈고, 이어 2부 순서 중 하나로 낭독될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도 써 내려갔다. 나는 10년 전 직접 썼던 엽서를 꺼내어 다시 이어 썼고, 배우자는 진심 어린 메시지를 담아 정성스럽게 한 줄씩 적어 나갔다.
또, 2부 예식에 사용될 ‘하객 소개글’도 각자 간결하게 작성했고, 사회자가 참고할 ’ 대본’ 역시 우리 상황에 맞게 직접 구성했다.
마지막으로 예식에 쓰일 음악 리스트도 빠짐없이 정리했다. 입장곡, 퇴장곡, 각 순서에 어울리는 배경음악까지 모두 배우자가 직접 선정해 파일로 정리해 두었다.
모든 서류들은 근처 무료 인쇄소에서 인쇄했다. 특히 혼인서약서는 일반적인 상장 형식이 아닌 손바닥만 한 크기로 인쇄해 귀엽게 마무리했다.
이제 진짜 예식이 코앞으로 다가와, 본격적인 예식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만 했다.
주방과 방 안을 비워내다
나는 주방의 가구와 소품 배치를 예식 당일 사용할 모습으로 바꿔 보았다.
책장과 필요 없는 소품을 정리하고, 빈 공간에는 인화해 둔 사진들로 하나씩 채워 넣었다. 그리고 테이블을 벽 쪽으로 밀어 공간을 확보하고, 하객이 마실 물은 싱크대 쪽에 배치했다. 주방이 협소한 만큼 동선을 고려한 작은 배치들이 꽤 중요했다.
주방에 있던 분리수거함은 입구 쪽으로 옮겨 예식 중 쓰레기를 쉽게 버릴 수 있도록 했고, 아이를 데려 오는 하객들을 위해 방 안의 침대 토퍼는 세워두고 소파를 재배치해 휴식 공간을 따로 마련해 뒀다.
불꽃이 잘 타오르기를
1부 예식의 첫 순서인 혼주 어머니들의 장작 점화를 미리 테스트해 보았다. 긴 막대 끝에 감은 휴지에 불을 붙여봤는데, 생각보다 느리게 타올라서 당일에는 더 원활한 점화를 위해 기름을 조금 묻혀두기로 했다.
서로를 향한 문, 천을 두른 아치
테무에서 주문한 아치를 직접 설치해 보았다. 제일 아래 물을 담아 무게중심을 잡고 봉에 천을 감아 집게로 고정했다.
바람에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구조 자체는 탄력이 있어 쓰러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사각형 모양이었다면 천을 더 풍성하고 볼륨감 있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아치 모양이다 보니 천이 다 흘러내려 모양 잡기가 꽤 어려웠다.
그럼에도, 집게와 리본으로 고정하며 최대한 완성도를 높여갔다. 미리 만들어둔 조화 꽃다발을 리본끈으로 매달고, 끈 자국이 보이는 곳은 다시 리본 장식으로 가려 마무리했다.
구름을 매달듯 천을 걸다
수제 예식장 꾸미기의 하이라이트, 처마 천 달기를 마침내 해냈다. 기존 처마에 걸려 있던 전구줄을 활용해 천을 구름 물결처럼 부드럽게 흐르도록 잡아 고정했다.
꽃으로 완성되는 공간
예식장에 오는 길에 늘어져 있는 기와에는 집게를 달아 만들어놓은 조화수국을 매달고, 남는 건 예식 당일 사용 될 여러 소품들(마이크, 반지 등)이 담긴 스텝박스에도 달아주었다.
다음으로 혼주석 의자에도 꽃을 달아줬다. 원래 계획은 모든 하객의자에 나풀거리는 하얀 천을 달아 예식의자 분위기를 내는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그건 시간관계상 포기하고 혼주석 의자에만 조화 꽃을 매달아 보았다.
마지막으로 두 개의 큰 나무 기둥에는 조화를 세 개씩 매달아 예식 분위기를 완성했다. 리본끈으로 고정했는데 꽃잎이 앞으로 향하게끔 달아야 하다 보니 생각보다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밤까지 작업이 이어져 버렸다.
예식 전날,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산더미 같았다.
당일에 할 것들을 제외하고는, 하루 안에 남아있는 모든 걸 마무리 짓겠다는 다짐으로 온종일 분주했다.
하객을 맞이하는 안내 이정표
안내팻말을 만들기 위해 배우자는 지인에게 얻어온 나무화판을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흰 페인트로 칠하고, 그 위에 파스텔로 문구를 적어 내려갔다. 시선을 끌 수 있도록 채도 높은 색을 사용해 가독성까지 높였다.
장작 틈새로 피어난 축복의 꽃
그동안 미뤄둔 생화 장식도 꾸미기 시작했다.
벌초로 잘려 버려진 자색강아지풀을 주워오고, 근처 빈 땅에선 억새도 구해왔다. 야생에서 가져온 것들이라 마치 나물 다듬듯 줄기 하나하나를 다듬어주는 데만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부들과 설악초는 지인에게 몇 송이 얻어왔다.
억새와 미리 사둔 조화 팜파스는 키가 큰 식물들이라 그만큼 길이가 긴 화병이 필요했는데 마땅한 걸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떠올린 대체 아이디어가 바로 ‘장작’이었다. 시골 풍경과 어울리게 장작을 쌓아 식물들을 꽂아두면 한 폭의 그림처럼 예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장작으로 고정하기란 쉽지 않았고 많은 장작들을 옮기는 데부터 힘이 쫙 빠졌었다. 일단 억새와 강아지풀을 꽂기 위한 장작 사이의 틈을 만들기 위해, 무겁고 투박한 장작들을 하나씩 격자무늬로 정성껏 쌓아 올렸다.
작업은 생각보다 더디고 고됐지만, 정성껏 쌓아낸 틈 사이로 몇 송이를 꽂아두자마자 그 투박한 나뭇결 사이로 초가을의 들녘이 은근하게 피어났다. 다만, 멋스러운 억새의 존재감을 살리기엔 양이 턱없이 부족해서 아쉽긴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 빈틈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조화 팜파스가 은근히 잘 메워주었다.
또한 미리 사둔 라탄 화병에는 강아지풀과 설악초, 부들을 꽂아 낡은 수돗가 위를 장식했고, 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감나무 아래에 있던 커다란 돌을 가져와 단단히 고정했다.
기억을 남기는 공간
입구 벽면에는 우리만의 방명록을 세팅했다.
집에서 잘라온 크라프트지를 비치하고 벽에는 마끈과 나무집게를 걸어뒀다. 종이테이프로 해보니 잘 떨어져서 압정으로 끈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 옆의 또 다른 벽에는 우리의 웨딩 사진으로 마음껏 꾸며보았다.
곳곳에 속삭이듯 붙인 안내
기존 예식장처럼 안내직원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기에 하객들이 혼란 없이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예식장 곳곳에 안내멘트가 적힌 종이를 부착했다.
필요한 문구들은 눈에 잘 보일 수 있도록 네이비색 종이에 하얀색 마카로 간단히 적어 내려갔다. 모든 문구는 배우자가 자칭 쾌남체로 힙하게 적어줬는데, 딱 내 스타일이라 흐뭇했다.
가을을 담은 꽃잎, 달콤함을 미리 준비해 두다
신랑신부 입장 시 화동이 뿌릴 조화 꽃잎이 못내 아쉬워 코스모스 꽃잎도 몇 개 준비해 보았다. 코스모스 꽃잎은 연약해서 빨리 마르기 때문에 따자마자 봉지에 넣고 밀봉 후 냉장고 안에 넣어 두었다.
마지막으로, 2부 다과용 과일을 마트에서 구입해 미리 깨끗이 씻은 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렇게 예식장 꾸미기의 마지막 조각까지 채워지며, 이 모든 준비는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온 결혼식 전날 밤,
우리의 예식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마음만이 머릿속에 가득 차, 떨리는 마음이 들 새도 없이, ‘내일 아침에 해야 할 일’ 리스트 만이 뇌리를 맴돌았다. 우린 그렇게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