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웨딩이라 가능했던, 특별한 데코레이션
처마 장식과 아치 등 예식장 꾸미기의 중심이 되는 굵직한 것들을 하나씩 완성해 나가자, 어느새 공간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틀이 갖춰지고 나니, 이제는 그 사이사이 비어 있는 자리를 어떻게 채울까 하는 고민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화려하진 않지만 눈에 띄는, 작고 소박한 꾸밈 요소들 — 그런 디테일이 더해질수록 결혼식의 분위기도 더 깊어질 것 같았다.
수제 작은 결혼식인 만큼 결혼식을 알리는 팻말 역시 손끝으로 정성껏 만들어보고 싶었다.
작은 칠판에 분필로 써볼까?
캔버스 천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볼까?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릴까?
온갖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버려진 나무화판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걸 본 순간, 예전에 자주가던 친환경 카페에서 본, 빈티지한 나무팻말의 감성이 떠올랐다.
우리도 그와 비슷하게 나무화판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아크릴 물감이나 크레파스, 혹은 파스텔로 꾸며보면 어떨까? — 하는 기분좋은 상상이 떠올랐다. 낡은 나무 위에 새겨질 우리의 첫 문장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흔히 예식장에서는 참석한 하객들이 이름 석 자만 덩그러니 적고 가는 ‘방명록’이 마련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출석부 같은 형식적인 인사보다,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더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과거 학창 시절 친구들과 서로에게 건네던 롤링페이퍼처럼, 자유롭게 마음을 남길 수 있는 형식을 떠올리게 되었다.
장소는 숙소 입구의 자갈마당이 가장 여유있고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게 할지 결정하는 건 꽤나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커다란 캔버스에 종이를 입혀 그 위에 글을 쓰게 할까?
칠판 모양의 스티커를 벽에 붙이고 마치 벽에 낙서하듯 써 내려가게 할까?
펠트지를 벽에 붙이고 한 마디씩 작성한 작은 종이 한 장을 그 위에 부착하게 할까?
아님 쇠로 된 판에 자석을 이용해 부착해 볼까?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현실적인 보관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커다란 무언가에 한 마디씩 적는 방식으로 한다면 그 자유로운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만, 크기가 크다 보니 결혼식이 끝난 후 그냥 돌돌 말아 어딘가에 처박아두게 될 것만 같았다.
결국, 나무집게와 마끈을 활용해 벽에 엽서 크기의 크래프트지를 매다는 방식으로 결정했다. 고전적인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예식 이후에도 엽서처럼 하나하나 소중히 간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었다.
사실 마음 같아선 입구에서 하객들과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 장씩 찍어 함께 걸어두고 싶었지만, 그를 위해선 사진을 찍어줄 사람도 필요하고 즉석 인화 시간도 고려해야 했기에, 결국 그 아이디어는 접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럼에도 해볼걸 그랬나’ —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 나무집게 = 2천 원
공간을 꾸미는 데 빠질 수 없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풍선’이다.
처음엔 하객들과 함께 하나의 세레머니로 예식이 시작할 때 혹은 끝날 때 풍선을 날려보는 장면을 상상했다. 특히 어린이 손님도 꽤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기분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헬륨 풍선의 가격을 보고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 대신 장식용으로만 몇 개 준비해 포인트가 될 만한 곳곳에 꾸미기로 했다. 풍선은 그렇게 적당한 양으로, 조용히 공간의 무드를 밝혀주었다.
# 풍선(세 종류) = 3천 원
스티커 제작은 사실 우선순위에서 늘 뒤로 밀려 있다가, 디자이너인 배우자 덕분에 결국엔 탄생하게 된 아이템이다.
우리 두 사람을 귀엽게 드로잉 한 그림에, 2부 타이틀인 The wedding show라는 문구를 넣어 4*3cm 크기로 제작해 보았다.
붙일 곳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2부 다과용기와 도시락용기, 예식장 벽면 등 몇몇 장소에 포인트로 사용했다. 작지만 정성이 담긴 우리만의 스티커가, 우리의 결혼식에 또 하나의 작은 온기를 더해주었다.
# 스티커 제작(91개씩*2장) = 1.3만 원
서로에게는 사랑스러운 조카가 한 명씩 있었고, 우리는 두 아이를 화동으로 초대하고 싶었다.
화동이 입장할 때, 흔하게 ’ 꽃잎‘을 흩날릴까, 아니면 특별하게 ’ 비눗방울‘을 불며 입장하게 해 볼까 고민했었는데, 테무에서 구입한 버블건이 생각보다 성능이 아쉬웠다. 그래서 결국 클래식한 방식으로 돌아와 꽃잎을 뿌리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꽃잎의 재료였다.
조화 꽃잎은 잔디 위에 쓰레기를 뿌리는 것처럼 느껴져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고, 생화 꽃잎을 쓰기엔 적당한 종류의 꽃잎을 끝내 찾지 못했다. 가을이라 코스모스도 고려했지만 꽃잎이 너무 연약해 금방 시들고 쪼그라들어 사용할 수 없었다. 그렇게 결국 조화 꽃잎으로 타협했지만, 역시나 조금 아쉬움은 남았다.
# 조화 꽃잎(1,000개*2개) = 3천 원
공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손쉬운 아이템 중 하나는 단연 ‘리본끈’이 아닐까 싶다.
가격도 부담 없고 활용도는 그야말로 만능이니까. 우리도 리본끈을 조화꽃을 고정하는 데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의자와 나무기둥, 화병 등 다양한 곳에 리본모양으로 묶어 장식했다. 리본 하나만으로도 공간의 분위기가 은근하게 살아나는 듯 했다.
리본끈도 종류가 다양해서 색상은 화이트로 통일하되, 재질과 굵기는 달리해 다양한 느낌을 주도록 했다. 이렇게 단순하지만 정성 어린 손길로 완성된 작은 디테일들이, 결혼식 전체의 감성을 더해주었다.
# 리본끈 = 4천 원
셀프로 준비하는 결혼식은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없어도 괜찮지만, 막상 준비하다 보면 결혼식에 온기를 더해주는 소소한 디테일들이 끝없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준비의 범위는 결국 스스로의 의지와 열정에 따라 얼마든지 넓어지기도, 혹은 단출해지기도 하는 듯하다.
웨딩 비용
하객 식사대접비 : 331.2만 원
웨딩드레스, 예복, 슈즈 등 구입비 : 48.1만 원
헤어메이크업(신랑신부/가족)+헬퍼 : 139만 원
웨딩반지(신랑신부) : 165만 원
웨딩촬영비 : 40.8만 원
청첩장제작비 : 1만 원
혼주한복(대여) : 45만 원
부케/부토니아/헤어피스/코사지/장갑 : 7.2만 원
조화 재료비 : 24만 원
조화 팜파스 : 2.7만 원
생화 화병 : 3만 원
방석/천/아치/사진장식 : 36.8만 원
2부 안내문 인쇄 : 9천 원
# 나무집게/풍선/꽃잎/리본끈 = 1.2만 원
# 스티커 제작 = 1.3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