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로서의 첫 무대를 위한, 엉성해도 좋았던 값진 시간
2부 예식의 세레모니로 낙점된
‘살사댄스‘
평소 흥은 넘치지만 춤이라곤 전혀 춰본 적 없던 우리 두 사람이, 그것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날’에 ‘살사’라는 정열적인 춤을 추기로 한 것은 말 그대로 대담한 도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던 걸까 싶기도 하다.
이 모든 건 나의 쿠바 여행기에서 시작되었다.
주말 오후, 함께 맛있는 브런치를 즐기며 각자의 추억을 나누던 자리. 나는 오래전 쿠바 여행 중 흥에 겨워 살사학원까지 등록해 한 달 가까이 매일 춤을 배우러 다녔던 일화를 신나게 들려주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듯 떠올랐다.
그때 춰본 살사를,
우리 결혼식에서 춰보면 어떨까?
그 순간엔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보다는 ‘하면 재밌겠다!’— 라는 기분 좋은 상상이 먼저 떠올랐다. 그렇게 우리의 어쩌면 무모한, 그러나 누구보다 진심 어린 결혼식 세레모니가 시작되었다.
결심은 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막상 춤을 추기로 하고 나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쿠바에서 잠시 배운 적이 있다곤 해도, 나는 본래 몸치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그마저도 벌써 5년 전의 일이라 살사 스텝마저 또렷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문을 두드린 건 유튜브였다.
무작정 ‘Beginner Salsa’라고 검색해 보니 살사 기본스텝을 알려주는 다양한 영상이 있었다. 그 수많은 영상들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것들을 하나하나 골라 따라 해봤다.
— “우노, 도스, 뜨레스“
익숙한 카운트에 맞춰 스텝을 밟다 보니, 서서히 몸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응용 동작에 이르자 다시 길을 잃고 말았다. 그 순간 비로소 떠올랐다. 과거엔 그저 전문가의 리드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었음을.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야 했기에, 영상 재생속도를 느리게 바꿔가며 마치 처음부터 함께 배우듯 손끝, 발끝 하나하나를 맞춰 나갔다.
어느 정도 기본 스텝을 익히고 나자, 이제는 결혼식에서 공연할 ‘곡’을 골라야 할 차례가 왔다.
하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보자에게 적당한 살사 공연용 음악을 찾기란 정말 어려웠고, 일반적인 살사공연 영상들은 우리 수준을 한참 넘어선 난이도였다. 그렇다고 흥겨운 스페니쉬 음악에 맞춰 직접 다채롭게 안무를 짜는 건 살사 꼬꼬마인 우리에겐 엄두조차 나질 않는 과제였다.
그러다 수많은 검색 끝에 우연히 만난 곡!
Marc Anthony의 “Vivir mi vida”
첫 장면부터 눈을 뗄 수 없었고, 경쾌한 리듬과 중간중간 관객을 유도하는 몸짓, 그리고 ‘삶을 즐기자, 지금 이 순간을 웃고 노래하고 춤추며 살아가자’는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담은 가사가 마치 우리가 바라던 결혼식의 메시지를 대신 전해주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비교적 쉬운 동작들로 구성되어 있어 계속 연습하면 어느 정도는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이 영상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이렇게 가이드 영상이 하나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큰 희망이었다.
운명처럼 만난 곡을 중심으로, 이제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었다. 거의 한 달가량 집 안을, 옥상을, 동네 한적한 골목길을 연습실로 삼아 연습에 매진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욕심을 무리하게 내진 않았다. 하루에 한 동작씩, 차근차근 쌓아나갔고 전날의 동작도 잊지 않기 위해 복습 또한 빠트리지 않았다. 가끔은 엉성한 몸짓에 서로 웃음이 터지기도 했지만, 그 웃음마저도 우리에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그 어설픈 몸짓도 계속 연습하다 보니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정말 안 돌아가던 턴도, 정말 안 꺾이던 허리도 반복 속에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중간중간 우리가 소화하기에 버거운 동작들은 욕심내지 않고 우리 수준으로 단순하게 변형했고, 그렇게 우리의 호흡에 맞는 춤을 조금씩 완성해 갔다.
그 결과, 예식을 일주일 정도 앞둔 어느 날, 처음부터 끝까지, 한 곡의 흐름을 멈추지 않고 완주해 내게 되었다. 비로소, ‘동작을 마스터하는 일’은 끝이 났고, 이제는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몸과 리듬 속에서 흘러나올 수 있도록 익히고 다듬는 시간만이 남아있었다.
예식 5일 전부터는 실제 무대가 될 잔디마당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핸드폰을 고정해 두고 춤추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보았다.
그런데, 막상 화면 속 우리를 마주해 보니, 정말 고칠 것 투성이었다.
손의 각도, 팔의 높이, 턴의 모양새, 허리의 움직임 등 잘하고 있다고 여겼던 동작들도 생각보다 훨씬 어색하고 엉성했다. 우리가 상상했던 멋스러운 살사가 아닌, 마치 학예회 율동을 보는 것만 같아서 살짝 민망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카메라를 켜고, 동작 하나하나를 매만졌다. 거울치료하듯, 영상을 거울삼아 계속 수정해나가다 보니 천천히 성장하여 이전보다 더 자연스러워진 우리를 만날 수 있었다.
대망의 예식 3일 전, 이제는 그저 연습이 아닌 ‘리허설’처럼 연습해 보기로 했다.
힐까지 신고 진짜 공연처럼 신중하게 한 발 한 발을 내디뎠다. 그간 운동화에 익숙해져 있던 몸은 이내 중심을 잃고 턴을 할 때마다 조금씩 비틀거렸지만, 이 또한 몇 번 연습하다 보니 점점 익숙해졌다.
그리고 예식 하루 전날, 살사용으로 준비해 둔 하얀 원피스까지 입고 마지막 리허설을 마쳤을 때, 비로소 무대 위에서도 흔들림 없이 잘 즐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살사공연을 위한 새로운 옷을 마련할 수도 있었겠지만, 우린 굳이 그러진 않기로 했다.
샘플 영상 속 여성 댄서처럼 몸에 쫙 달라붙는 강렬한 색상의 드레스를 구해볼까도 고민했지만, 한 번의 공연을 위해 굳이 구입하고 싶진 않았다.
결국 셀프웨딩 촬영을 위해 샀던 심플한 흰 원피스를 그대로 입고, 대신 빨간 꽃핀 하나를 머리에 꽂기로 했다. 구두는 테무에서 검색한 기본 디자인의 흰 구두를 구입, 구두 장식도 추가로 구입해서 웨딩의 느낌을 더했다.
# 구두 9천 원 + 구두 장식 2천 원 = 1.1만 원
# 헤어꽃핀 = 1천 원
살사댄스뿐만 아니라, 2부 예식의 오프닝을 장식할 듀엣공연도 함께 준비했다.
단지 결혼식이라는 형식적인 무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진심을 하객분들께 전달하고 싶었기에 노래 한 곡, 피아노 한 마디에도 오랜 시간을 연습했다.
나는 조화 장식을 만들 때면 늘 듀엣곡을 흥얼거렸다. 손끝은 꽃잎을 만지고 있었지만, 노래는 늘 배경음처럼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음역대가 살짝 높아 버거운 구간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내 방식대로, 내 목소리로 담아내고 싶었다. 단순히 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닿는 노래를 부르길 바랐다.
배우자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까지 함께 불러야 했기에 연습량은 훨씬 더 많았다. 하루의 시작과 끝, 짧은 틈이 생길 때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에 매진했다. 뿐만 아니라 배우자는 피아노 독주곡도 두 곡이나 준비해야 했다. 무대에서 최대한 실수 없이 연주하고 싶다는 바람 아래, ‘마음을 전하는 무대’라고 여기며 온전히 그 곡들에 몰입했다.
사실 100% 완성되었다고 여겨지는 연주도 무대 위에서는 단 한순간의 떨림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반복에 반복을 더하며 마스터해 나갔다.
그렇게 우리의 무대는 조금씩 완성되어 갔다.
우리의 살사, 듀엣, 그리고 그가 들려줄 독주 모두 ‘우리’로서 처음 서는 무대였기에, 그 연습의 시간조차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춤과 노래, 피아노 연주에 타고난 두 사람이 만나 멋진 무대를 만들었더라도 분명 근사 했겠지만, 어설픈 실력을 지닌 두 사람이 만나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하나씩 맞춰가며 웃음 짓고 다독이던 그 시간이야말로 더없이 값진 부분이었다.
웨딩 비용
하객 식사대접비 : 331.2만 원
웨딩드레스, 예복, 슈즈 등 구입비 : 48.1만 원
헤어메이크업(신랑신부/가족) + 헬퍼 : 139만 원
웨딩반지(신랑신부) : 165만 원
웨딩촬영비 : 40.8만 원
청첩장제작비 : 1만 원
혼주한복(대여) : 45만 원
부케/부토니아/헤어피스/코사지/장갑 : 7.2만 원
조화 재료비 : 24만 원
조화 팜파스 : 2.7만 원
생화 화병 : 3만 원
방석/천/아치/사진장식 : 36.8만 원
2부 안내문 인쇄 : 9천 원
풍선/꽃잎 등 : 1.2만 원
스티커제작 : 1.3만 원
# 구두/구두장식/헤어꽃핀 = 1.2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