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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moong Jun 21. 2020

물건 디톡스 여행

내 카메라, 내 핸드폰, 어디간거야



이번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나는 생각했다.


이번 여행에서 난 마음 디톡스를 하고 오겠노라고.

내 마음 속 독소로 작용하는 쓸데없는 잡생각은 머릿속에서 다 없애버리고 

나에게 진짜 필요한 영양분만 내 머릿속에 남기고 돌아오겠노라고.


그런데 마음 디톡스는 커녕 여행을 시작한 후 포르투갈에서 난 ‘물건’ 디톡스 여행만 하게 되었다. 


첫 시작은 포르투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전날 밤 줄무늬마을, 코스타노바를 신나게 다녀온 후 목이 말라 호스텔 주방 지하로 내려가 물마시고 손 씻느라고 잠시 벗어둔 카메라를 그 곳에 그대로 두고 온 것이었다. 그걸 그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발견했던 나는 호스텔 직원에게 몇 번을 되물어보았지만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그 곳에 없다면 마지막 저녁 식사를 했던 샌드위치 가게인가 해서 그 곳에 연락해보았지만 하필 휴무날인게 아닌가. 결국 그 날 일정은 취소하고 숙소는 하루 연장하였고 그 다음날 카메라에 대한 한끗의 희망으로 샌드위치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예상대로 카메라는 있을 리가 없었고 결국 난 그날 눈물의 샌드위치를 먹었다.


눈물은 나는데 맛있었던 샌드위치 ㅋㅋ

그 중요한 걸 어딘가에 흘리고 온 나 자신에게 너무 화나고 속상했다.

십여년을 여행하며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나인데 하필 왜 이번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에 대해 속상하기만 했다. 


특히나 나 혼자가 아닌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에서 내가 그 친구에게 피해를 줬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다. 분명 기분이 좋지 않은데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빨리 이 기분을 풀고 괜찮은 척 함께 신나게 여행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였고 그 사실은 알지만 쉽게 회복되지 않는 나의 기분에 더 속상해져만 갔다.




그렇게 건너온 리스본에서의 어느 날, 포르투 숙소에서 한통의 연락을 받게 된다. 내가 요청해두었던 감시카메라 결과 숙소 주방에 놔뒀던게 맞고 본인들이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짐작컨대 그 곳 직원 중 한명이 발견 후 가져갈려고 하다가 cctv에 딱 걸린게 아니었나 싶다. 다행히 카메라를 찾았던 그 날은 기분이 좋을 뻔 했다.


하지만 전해 받은 카메라에는 아무런 사진도 남아있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그 직원은 내 카메라를 아예 초기 셋팅해버렸고 그렇게 내 사진은 다 날라가버린 것이었다.


그렇기에 어렵게 카메라를 손에 다시 쥐었지만 난 기쁘지 않았다.

애초 내가 잃어버렸던 건 카메라라는 ‘물건’보다도 카메라에 담긴 내 ‘추억’이었으니깐.

추억으로 먹고 사는 나에게 추억을 모조리 통으로 잃어버린다는 건 참 속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난 그저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또 다시 나에겐 더 심한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포르투갈의 마지막 일정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 라고스에서의 시간이었다.



사실 라고스 그루토 투어는 너무 경이로워서

그루토 하나하나 들어갈 때마다 너무 아름답고 신비스러워서

저 구멍으로 비치는 파란 하늘과 햇살,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영롱한 바다에 이곳이야말로 ‘지상낙원’이구나 싶었다. 

그루토를 사이에 두고 이걸 통과하면 마치 현실세계가 아닌 미지의 다른 세계가 열리는 기분이랄까. 넋놓고 빨려 들어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돌아오는 배 위에서는 이곳 풍경을 계속 보고 있자니 여기서 살면 참 걱정거리가 있다가도 없어지겠다 싶었다.

하지만 라고스는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고는 나의 핸드폰을 앗아가 버렸다.


실컷 투어를 잘 마치고 보트를 내리던 그 찰나 호주머니에 있던 나의 핸드폰과 보조배터리는 그대로 보트와 보트 사이의 구멍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너무 놀란 나머지 순간 ‘악’소리 만을 짧게 외친 채 난 그 자리에 멈춰서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포르투갈 남부 바다 어딘가에서 아직 숨쉬고 있을 나의 아이폰과 작별을 고하였다.

그렇게 나의 사진 속 추억은 또 다시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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