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시작하고 처음 버스를 탔을 때에는 고작 3-4시간에도 좀이 쑤시더니 이제는 이 생활에도 조금 익숙해졌는지 10시간 넘는 버스도 생각보다 탈 만해졌다. 바깥 풍경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휴게소에 도착해있고 그곳에서 잠시 몸을 풀어주는 이 시간들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있다.
특히 메르주가에서 마라케시로 넘어오던 길에 만났던 창밖의 노을은 또 한 번 나의 감성을 자극해주었다. 내가 있는 이 곳,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또 들고야 말았다.
사실 마라케시 또한 그다지 할 것 없는 도시, 그저 그냥 사하라 사막을 가기 위해 들리는 곳, 삐끼들에게 지쳐 빨리 뜨고 싶은 곳 등등의 그다지 좋지 않은 평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마라케시에서의 일정을 짧게 잡았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이후 넘어갈 런던 일정에 맞춰 급하게 비행기표를 끊어버렸는데 역시 난 서두르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마라케시에 도착한 날 이곳의 밤거리를 거닐고 나자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막상 내가 느낀 마라케시는 짧게 머물기엔 너무나도 아쉬운 곳이었다.
아마도 이곳이 남들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나에게만큼은 마라케시만의 색깔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마라케시의 하루가 시작되다
다른 곳보다 저렴한 숙소 가격에 오래간만에 좋은 시설을 갖춘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맛있는 조식을 먹고 광장으로 나오면 활기찬 마라케시의 하루가 시작된다.
광장 여기저기 자리 잡은 노점상에서 저렴하고 푸짐한 모로코산 과일주스를 사들고 빨대로 쭉쭉 빨아 마시며 어슬렁어슬렁 걷다 보면 내 옆에서는 흥나는 볼거리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여기저기로 뻗어있는 마라케시 시장은 구석구석에서 나에게 유혹의 손짓을 보내온다. 다른 도시의 메디나 보다 볼거리가 더 풍성한 이곳은 옷, 신발, 기념품 등 더 저렴한 가격에 종류도 더 다양해서 없던 지름신까지 찾아오곤 한다. 곳곳이 화려한 색채로 가득한 상점을 만날 때면 무언가에 홀린 듯 그곳에 한참을 서서 알록달록한 물품을 계속 만지작거리다 지갑 안을 들여다보고는 결국엔 내려놓고야 만다.
시장의 막다른 골목에 와서야 나의 시장 탐방은 끝이 나고 이제는 익숙해진 모로코 전통음식인 타진과 쿠스쿠스를 시켜 먹어본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쿠스쿠스 안에 들어가 있는 조같은? 작은 알갱이는 이미 묘하게 중독되어버렸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나면 곳곳에 위치한 좋은 루프탑 감성카페에서 모로코 전통 티인 민트 티를 한잔한다. 내 눈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 붉은 집들이 만들어내는 마라케시만의 붉은빛에 또 빠져든다. 그 붉은 집들 위로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고 그 아래에서 다이어리 한번 쓰고 나면 하루는 그냥 흘러가버린다.
해가 지기 시작하고 깜깜해진 광장에는 왁자지껄한 야시장이 펼쳐지고 생동감이 넘치는 곳으로 변해있다. 광장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공연들과 세계 각지에서 건너온 흥들이 뒤섞여 화려한 밤을 만들어낸다.
물론 특히 야시장에는 삐끼들이 많아서 귀찮은 순간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갖게 되는 생각과 느낌은 다 다르니깐. 삐끼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이곳에서도 '치나? 재팬? 꼬레아?'를 질리도록 많이 들었지만 이것이 나의 여행을 방해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이런 호객행위가 많다는 점 또한 이 도시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것뿐이니깐 나중엔 이것마저 즐기게 되었다. 지금은 지겹게 들은 이 말들조차 너무나도 그리우니깐.
그보다는 사람 냄새나는 이곳에서, 적당히 과거와 현재가 섞여있는 이곳에서, 커피 한잔과 함께 다이어리 쓰던 그 여유로운 시간이, 그 여유 속에서 바쁘게 그리고 활기차게 흘러가던 광장에서의 시간이 짧게 마감됨이 아쉬울 뿐이었다.
고양이와 늘 함께 하다
고양이의 천국이라 불리는 모로코.
고양이를 사랑한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 덕에 모로칸들은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모로코는 정말 어디를 가든 늘 고양이와 함께 한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늘 내 옆자리는 고양이가 차지하고 있다.
자유롭게 길거리를 활보하며 돌아다니고 어느 곳이든 널브러져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내 마음도 느슨해진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곳의 고양이들은 옆에 사람이 있건 없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오히려 스스럼없이 사람에게 다가와 개냥이처럼 부비적 대기도 한다. 어디서든 옆에 앉아있는 고양이를 두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과 고양이가 이렇게 가족처럼 어디서든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건 모로코인들은 고양이의 영역과 그들의 세계를 존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양이에 대한 관리대책은 전혀 없는 모습에 비추어본다면 어쩌면 그냥 고양이의 세계를 그저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일까.
이든 저든 어떻든 이들은 ‘고양이’라는 존재에 대해 인정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사실 난 어렸을 적에는 고양이를 무서워하였다.
개나 다른 동물들은 좋아했지만 고양이는 밤에 보이는 그 눈빛과 아기 울음소리를 닮은 그 울음소리가 조금은 무서웠다. 하지만 해외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양이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고 점점 그저 마냥 귀여운 동물 중 하나로 변해갔다.
그러다 모로코 여행을 하며 고양이는 그냥 내 일상이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내 옆자리로 점프해 앉으면 깜짝깜짝 놀라다가도 어느 순간부터는 내 옆에 자리 잡은 고양이와의 만남이 낯설기보다는 익숙해져서 나도 모르게 ‘왔어?’하며 인사를 건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들의 애교는 내 여행의 재미를 더해주었고 이제는 늘 우리 곁에 있었던 고양이가 그립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