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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moong Dec 17. 2020

하나의 예술, 탱고에 반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진 매혹적인 춤사위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에서 내가 가장 고대하던 것, 나를 가장 설레게 했던 것은 바로 ‘탱고’였다.

사실 '탱고'라는  한국에서는 들어만 봤지 실제로  적은 없었기에   앞에 어떤 매혹적인 춤사위가 벌어질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가장 가난한 이들의 절망과 고독, 향수와 사랑, 낭만과 비애에 대한 갈망을 담은 춤이라는 ‘탱고’.


온몸으로 춤을 추는 탱고 댄서들 덕분에 나에게 있어 탱고는 단순하게 섹시하고 매혹적인 춤이라는 것을 넘어서 내가 근접할 수 없는 하나의 예술의 세계를 보여준, 정말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내 인생 최고의 춤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많은 유럽 하층민들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했고 그 하층민들을 중심으로 생겨난 사교춤이라는 ‘탱고’. 지금에 와서 탱고(Tango)라는 단어를 보며 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탱고(Tango)'라는 단어는 ‘만지다가까이 다가서다마음을 움직이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인 탕게레(Tangere)에서 유래되었다는데, 그 어떤 춤보다 몸이 밀착되고, 그 어떤 춤보다 매혹적이고 관능적인 이 춤에   단어를 붙이게 되었는지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같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유명한 탱고 공연이 여러 개 있는데 난 그중에서 제일 먼저 ‘피에졸라(piazzolla)’ 공연을 찾았다.


근사한 저녁식사까지는 아니지만 근사한 와인 한 잔 시켜놓고 오랜만에 분위기 잡고 공연을 기다려본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말끔히 머리를 빗어 넘긴  댄서가 멋들어진 턱시도를 입고 나타나고 마치 그에 이끌리듯 그를 따라 반짝거리며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맘껏 꾸민 서가 등장한다.

 


남녀 댄서는 탱고 음악에 맞춰   없이 턴을 하고 남성 댄서는 댄서를 번쩍 들어 올렸다 놓았다 하며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열적인 탱고의 리듬에 맞춰 서로의 다리 사이로 자신의 다리를 왔다 갔다 하며 다리를 앞으로  뻗어 올렸다가 뒤로 뻗어 올렸다 뺐다를 반복한다. 여성댄서의 화려한 드레스의   터진 치마 끝자락 사이로 보이는 다리와  다리의 화려한 움직임에 여자인 나도 당장이라도 유혹당할 것만 같다.


그 화려한 동작들 속에는 마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노여움 등의 모든 감정들이 강렬하게 녹아들어 있는 듯하다. 그 감정들이 서로 뒤섞여 격정적이면서도 빠르게 오고 가고 멈추지 않고 쉴 새 없이 꺾이는 동작에 일초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그 와중에 남녀 댄서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뜨거운 눈빛에는 내가 다 설렐 지경이다. 두 사람은 마치 한 몸인 듯 매혹적인 춤사위를 형성한다. 상대에게 몰입하며 서로를 삼켜버릴 듯한 뜨거운 눈 맞춤과 강렬한 탱고 리듬이 뒤엉키며 매혹적이고 섹시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게 된다. 세상에 이토록 매혹적이면서도 슬프고 격정적이면서도 우아한 춤이 또 있을까.



누군가는 탱고를 ‘ 다리 사이의 예술이라 표현했다고 하고 누군가는 탱고를 ‘네다리와 가슴으로 추는 이라 표현했다고 한다. 피에졸라 공연을 보고 나자  표현들이 가슴으로 와 닿기 시작했다.


이렇게 몸의 표현이 아름답다고 느낀  살면서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그냥 나는 그날 탱고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현란한 몸놀림과 섬세한 손짓, 발짓. 탱고가 이렇게 멋있는  인 줄은 처음 알았다.


그렇게 그날 밤  삶엔 ‘탱고 배우기’라는 버킷리스트 하나가  생겨버렸다.






탱고에게 첫눈에 반한 나는 지체 없이 그다음 ‘포르테뇨(porteno)’ 공연을 예약해버렸다.


이미 탱고에 대해 알아버린 나는 처음보다는   기대와 함께 그리고 피아졸라보다는  넓고 큰 공연장 규모 덕분에 그때보다는 조금  멀리서 볼 수밖에 없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면서 무대를 기다려본다.



2층으로 되어 있는 무대의 위층  켠에서는 리드미컬한 탱고 음악 연주가 시작되고 아래층 무대에는 붉은빛의 조명과 함께 또다시 말끔히 차려입은 남성댄서들과 그들을 따라 반짝거리는 블랙 탑 드레스를 입은 여성댄서들이 한 명씩 나와 각자의 파트너와 함께 스텝을 시작한다.


서로의 다리 사이의 예술을 표현함은 물론 파트너를 번쩍 들어 올려 턴을 하기도,  위에서 우아한 몸짓을 하기도 한다. 각자의 파트너와의 스텝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파트너를 바꿔 가며  화려한 동작을 이어나간다.  쌍이 아닌 여러 쌍의 남녀 댄서들이 동시에 보여주는 수십 개의 다리들의 동작이 너무나도 현란해서 그 무대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남녀 댄서들의 춤사위를 지켜보고 있자면 서로의 스텝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짐 없이 딱딱 맞아떨어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피에졸라 공연 때도 그랬지만 파트너와의 깊은 호흡이 주는 감동에 탱고는 함께 춤추는 상대방과의 호흡과 어울림이  중요하다는 몸소 낀다. 마치 남녀 댄서  사람 서로가 춤으로 소통하며 형성한  긴밀한 교감과 호흡이 자연스레 춤으로 연결되는 것만 같다.


이렇게 춤으로 호흡을 맞춘다는 것이 이토록 설레는 이었던가.  공연을 바라보는 나도 누군가와 탱고를 함께 춘다면 바로 사랑에 빠질 것만 .


포르테뇨 공연은 중간중간 쇼에 가까운 화려한 퍼포먼스도 곁들여져 있다. 피에 졸라 공연은 정통 탱고 공연의 느낌에  가깝다면, 포르테뇨 공연은 조금은  퓨전 탱고에 가까운, 조금은  쇼에 가까운, 마치 탱고 뮤지컬을 보는 듯한 화려한 무대를 선사해준다.


화려했던 공연이 막을 내리고 탱고로 온통 물들어버린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흥분되어 있었다.





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탱고의 추억은 탱고를 즐길 수 있는 장소인 ‘밀롱가(milonga)’에서 마무리되었다.


연이은 탱고 공연으로 탱고에  빠져 버린 나는 바로 탱고 강습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일정이 맞지 않아 결국에는 탱고 강습 대신 밀롱가를 방문했다.


좁은 무대 위에서 탱고를 추고 있는 남녀 커플들. 흡사 무도회장 같았던 이곳에서 탱고를 즐기는 이들의 열정과 자유로움에 그날 밤 난 또 탱고의 매력에 스며들어갔다.




자연과 함께 고생하는 배낭여행도 의미가 있지만 때론 이런 화려한 공연과 근사한 와인 한잔과 하는 조금은 호화스러운 여행도  삶에 있어 많은 생각을 가져다준다.


탱고 공연이 그랬다.

탱고에 깃든 열정과 탱고에 비치는 숱한 노력들이 전해주는 많은 생각들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은 늘 깊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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