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아테네오서점, 레콜레타묘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오래 머무는 동안 며칠간은 잠시 관광객 모드를 장착하고 관광객 인양 유명한 관광포인트 몇 곳을 돌아다녀보았다.
괜스레 책 한 권 들고 싶어 지는 멋스러운 공간, 엘 아테네오 서점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엘 아테네오(El ateneo) 서점.
1919년 다양한 음악공연이 펼쳐지는 오페라 극장이었다는 이곳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1929년 영화관으로 바뀌었다가 이후 2000년에 들어서 도서 유통사가 인수하여 서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처음 입구를 들어서면 화려하면서도 고귀한 분위기가 내 몸을 감싼다. 아마도 과거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석이었을 객석 공간은 책 진열장으로 바뀌어 1층에서부터 2층, 3층까지 수많은 장서들로 가득 담겨 있다.
입구 정면으로 보이는 과거 무대였던 공간은 손님들이 커피 한잔하며 책을 즐길 수 있는 멋스러운 카페로 변해있다. 고혹적인 향을 풍기는 버건디 색감의 무대 커튼 때문인지 그 커튼 사이로 보이는 커피 한잔하며 이야기 나누고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조차 하나의 인테리어로 비춰진다.
당시 객석을 비추었을 조명은 이제는 수많은 장서와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층층이 밝혀주고 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면 귀한 프레스코화가 360도로 펼쳐져 있다. 이곳이 극장인지 미술관인지 서점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오페라 극장과 미술관과 서점이 혼재되어 빚어내는 이 이색적인 느낌에 점점 빠져든다.
1층에서의 감상을 어느 정도 끝낸 후 2층으로 올라가 본다.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고개를 빼꼼히 내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들을 따라 나도 한번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서점의 모습을 또 한 번 감상해본다. 역시나 고급스럽고 근사한 모습에 감탄하며 한번 더 바라본 서점의 곳곳에는 아름다운 오페라 극장의 흔적이 아직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벽에는 조각품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천장과 발코니, 무대의 디테일을 그대로 품어내고 있는 듯하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둥그렇게 둘러싸인 책 진열대를 따라 찬찬히 돌아본다. 그러다 괜스레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어도 보고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읽히지도 않는 스페니쉬 책 몇 장을 넘겨도 본다.
사실 포르투갈에 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한 곳이라는 ‘렐루 서점’을 다녀온 이후라서 인지 그때만큼의 감동은 덜 했지만, 이곳은 서점이라는 곳이 주는 무언의 차분함과 천장화, 발코니, 무대, 조명 등이 빚어내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찬란한 서점 내부의 모습에 잠시라도 소파에 앉아 책 몇 장이라도 넘기고 가고 싶은 멋진 장소였다. 그곳과는 달리 이곳은 한층 더 깊은 역사가 깃들어 있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고풍스러운 서점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도 8090 책방의 느낌이 담긴 헌 책방을 관광지처럼 찾아가듯
일반 서점의 틀에서 벗어나 한국 전통의 공간을 서점으로 개조하여 운영한다면 얼마나 이채롭고 멋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추억 속 그 공간에서 책 한 권을 들고 싶어 지는 밤이다.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방식, 레콜레타 묘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또 하나의 유명한 관광지, 레콜레타 묘지를 찾았다.
레콜레타 묘지에 도착한 후 큼지막한 입구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묘지의 모습은 하나의 풍경처럼 아름답고 근사하다. 눈 앞에 보이는 백옥의 건물들 덕분에 내 마음까지 깨끗하게 정화되는 기분이다.
묘지 주변은 커다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 사이사이로 각기 다른 묘지들이 늘어서 있다. 각각의 묘지들 사이로는 마치 영혼을 위로하기라도 하는 듯한 형형색색의 꽃들이 보인다. 외관의 모습도, 건축 스타일도, 색도 모두 다른, 하나의 통일된 느낌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이 수많은 묘지들임에도 왠지 모를 나름의 어울림이 느껴지고,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꽃들은 그들의 죽음을 마치 화사하고 생동감 있게 둔갑시켜 주는 듯하다.
이곳의 묘를 둘러보다 보면 우리나라와는 다른 죽음의 방식에 대해 경험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관을 땅에 묻는 것 대신 이들은 관을 모실 수 있는 방을 한 칸씩 만들고 그 방의 외관을 그 묘지 주인의 개성에 따라 크고 작은 조각들로 꾸며 놓았다.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사람들이 유독 많이 모여 있는 묘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바로 1940년데 29대 대통령이었던 후안 페론의 아내, 에바 페론의 묘지이다. 그녀의 묘지는 그렇게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묘지이지만 그녀를 추모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아직까지도 끊이질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국모로 추앙받는 현실판 신데렐라의 표본이라는 그녀를 비난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참 부러웠다.
내가 죽으면 과연 누가 나를 잊지 않고 찾아줄까?
이 공간에서도 꾸준히 관리받아 깨끗하게 잘 유지되고 있는 묘지가 있는 반면 이제 버려진 듯한 황폐한 느낌의 무덤들도 꽤나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가문의 몰락이 이유인 건지 어떠한 이유인 건지는 몰라도 이제는 아무도 그들을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고 슬프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는 것, 그것보다 더 슬픈 것이 또 있을까.
유난히 날이 맑았던 이 날 땡볕 아래에서 한동안 묘지를 둘러보다 잠시 커다란 나무 아래로 들어가 숨을 고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 가득 둘러싼 나무들 틈 사이로 햇살이 환하게 비춰 내려온다. 조용하고 고요한 이 공간에서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만이 내 귓가에 맴돌 뿐이다. 고요한 분위기에 내 마음 또한 차분해지고 근엄해지기까지 한다.
공동묘지라고 하면 뭔가 으스스하고 무서운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이 공간은 스산한 묘지라고 느껴지기보다는 영혼을 위한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 공간 같이 느껴졌다. 이 속에서는 평안히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아르헨타나의 대통령들을 비롯한 여러 유명 인사들이 묻혀 있다는 이곳에 안치되기 위해서는 최소 5억 이상의 거액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자리가 없어 많은 이들이 대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이것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 것일까?
‘현재’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 이 순간’, ‘오늘’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이제는 현재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그 공간 속에 갇혀버린 그들에게 주어진 화려하고 비싼 이 묘지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떠한 의미가 있든 이렇게 좋은 곳에서 눈을 감고 있는 이들이라도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훨씬 더 부럽지 않을까?
"죽으면 다 의미가 없다."는 말.
이 말의 의미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우리에게 주어진 이 '오늘'이라는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는 것이 죽은 후의 삶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 아닐까. 물론 죽은 후의 세상에 대해 알 수는 없지만, 저렇게 좋은 곳에서 눈을 감고 있더라도, 그저 평범한 곳에서 눈을 감고 있더라도, 죽음 전의 세상에서의 삶이 후회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사는 것이 무엇보단 중요하니깐.
또한번 오늘 지금 이순간 덜 후회없는 삶을 다지게 되는 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