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공원, 플로라리스 헤네리카
오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평화로운 하루가 흘러간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세수를 하고 평화롭게 조식을 먹으며 하는 생각, ‘오늘은 어딜 가보지?’
오늘의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얼마 전 알게 된 아르헨티아노 친구가 대신해주었다.
“너무 아름다운 공원이 있어. 거기 한 번 가 봐. 오늘 날씨에 가면 대박일 거야.”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유독 공원을 참 좋아하는 듯하다. 어찌 보면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공원’이라는 곳은 여행객들에게 소개할 관광지라기보다는 그저 일상 속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인데, 이들에게는 ‘여행’이라는 그 자체가 ‘일상’의 연장선 상에 녹아 있기 때문인지 주변에서 만나본 아르헨티노 친구들 모두 공원 이야기는 늘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가게 된, 세계에서 가장 큰 꽃 조형물이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새로운 상징물이라는 플로라리스 헤네리카(Floralis Generica).
그곳을 가기 위한 지하철을 타기 전 근처 슈퍼마켓에 들러 과자와 음료수를 잔뜩 사본다. 피크닉을 가는 듯 한 설렘과 함께 하얀 비닐봉지를 손에 달랑달랑 들고 도착한 공원 근처 지하철역 앞에는 스타벅스 하나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저렴한 값의 스벅 커피 한잔을 사들고 공원으로 걸어가는 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볍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쭉쭉 빨아 당기며 앞으로 쭉쭉 나아가다보면,
하늘을 향해 활짝 펼쳐진 꽃 모형을 발견하게 된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꽃잎을 형성화하고 있는 이것은 세상의 모든 햇빛을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하늘을 향해 피어나 있는 꽃잎과 그 속에서 디테일하게 자리 잡고 있는 꽃술을 따라 이곳을 찾은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희망이 피어나는 듯하다.
어쩌면 이것은 그저 차갑디 차가운 금속 물체일 뿐이지만 그 금속에 반사되어 비치는 파란 하늘과 그 속에 몽글몽글 떠있는 하얀 구름, 이 주변의 모든 모습을 살포시 담고 있는 아름다움 덕분에 그 차가움은 어느새 밝은 활기로 바뀌어 우리에게 전해진다.
아름다운 꽃과 함께 펼쳐져 있는 넓은 들판 위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자리 잡아본다.
하얀 비닐봉지를 풀어 아까 사두었던 과자를 꺼내 한 입 먹으며 바라보는 내 앞의 풍경은 그저 평화롭다.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 조차 붙일 수 없다. 그냥 그저 평화롭다. 이것 만으로도 난 참 행복하다.
유난히도 하늘이 너무 이쁜 날 나뭇잎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하늘에 펼쳐진 몽글 구름은 천천히 움직이는 이 그림은 마치 한 편의 평온한 슬로우비디오처럼 천천히 지나간다.
이 순간만큼은 잠시 시간이 멈춰있는 듯하다. 어수선한 내 머릿속과 마음을 다독여주는 느낌이다. 지금 이 순간 피어오르는 내 안의 평온을 온전히 누리고 싶다.
그렇게 난 몇 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 해가 지기 시작하고 난 부에노스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토르토니 카페로 이동하여 역사가 깊은 이곳에서 츄러스와 초코 라테를 한잔하며 따듯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다지 특별한 관광지는 아닌 이곳이 나에게만큼은 특별한 이유는,
지구 반대편의 낯선 세상 속에서 나만의 새로운 일상이 피어나고 그 일상 속 쉼터를 잠시 여행 다녀온 느낌이라서. 햇살 가득 피어났던 나만의 평온이 너무 소중해서.
누구도 방해하지 않던 그 날의 평온이 때때로 너무나도 그립기에,
난 또 그 순간을 들추어내 추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