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Path 화재 사고 현장 후기
(어제 열차 모습 사진)
제목에서는 이해하기 쉽게 "뉴욕 지하철"이라고 썼지만, 정확히 말해서는 뉴저지와 뉴욕 맨해튼을 오가는 "Path (패스)"라는 열차에서 일어난 일이다.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신분당선 같은 느낌이다. (최근에 뉴욕에 놀러온 친구가 내가 '신분당선'에 비유하니까 찰떡이라고 말해줬다)
뉴저지에 사는 사람으로서 뉴욕으로 가기 위해서는 약 3가지 방법이 있다.
1. 버스 (NJ Transit)
2. 페리
3. 패스 (Path)
NJ Transit 버스를 한 번 타봤는데 정거장도 많고 막힐 때도 있고 뭔가 타는 게 불편해서 (맨해튼에서 타고 오려면 고터 같은 데에서 타야 된다. 시외 버스 같은 느낌이다) 그 뒤로는 탈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페리는 타본 적이 없고, 나는 항상 패스를 타고 맨해튼을 왔다갔다 한다.
가격은 편도 기준으로 2.75달러이다. (1400원 환율 기준으로 계산하면 3850원이다. 결코 싼 금액이 아니다.)
어쨌든 현지 시간으로 어제 (12/11 수) 로터리에 당첨되어서 보러 가기 위해 5시45분 정도에 패스를 탔다. 7시 공연이라서 혹시나 지연될 경우를 감안하여 일찍 출발한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6시30분에 공연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출발한 것이다.
뉴저지와 맨해튼 사이에는 허드슨 강이 있는데, 패스 열차가 해저 터널을 통해 지나가는 중이면 핸드폰은 통신 불가 지역이 된다 (전화나 문자도 안 되고 데이터도 안 되는 상황).
열차에 탑승한 뒤 한 5-10분 정도 지나고서 열차가 정차했다. 보통 패스는 중간에 열차가 정차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이번에도 그런가보다 했다. 직원들이 왔다 갔다 하더니 지금 앞에 선로에 불이 작게 나서 (small fire라고 했다) 그거 처리하느라 지연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소화기도 들고 갔다.
나는 속으로 이러다가 엄청 늦어서 공연 못 보게 되는 거 아닌가 돈 날렸네라는 생각을 했다. (로터리 표여서 저렴하게 구매하긴 했지만 45달러였다. 한국 돈으로는 63000원 정도로 결코 싸지 않은 금액이다)
대충 6시20분까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5시45분 정도에 탔기 때문에 이미35분이나 열차에서 앉아있었다) 중간에 조명도 좀 어두워지고 환풍기도 꺼지기도 했지만 크게 문제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다시 직원이 왔다갔다 하더니, 선로에 전기 문제도 생겨서 앞으로 갈 수 없고 다시 돌아가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 뒤따라 오는 열차들이 다 빠져야지 갈 수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큰 무리가 없었다.
6시40분 쯤에 어두워졌던 조명도 켜지고 환풍기도 다시 잘 돌아가게 되었는데, 갑자기 객실에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진짜 갑자기 확 들어오기 시작해서, 사람들은 앞 칸으로 넘어가려고 몰렸다. 패스는 원래 객실 칸을 이동하면 안 되고 (한국 지하철이랑은 다름), 긴급상황일 때에만 가능하다. 앞 칸으로 가도 연기는 여전했고 사람들은 입을 가리고 바닥에 앉아서 최대한 낮게 유지하려고 했다. 나도 목도리로 입을 가렸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고 약간 해프닝 같이 생각되어서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열차는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방송에서는 곧 출발할거라고 괜찮다고 말하는데, 솔직히 열차는 너무 뿌얘서 전혀 괜찮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와, 이거 이러다가 질식사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핸드폰이 먹통이라서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왜 출발을 안 하는지 격분했고,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10분 정도 지났을 때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내가 열차에서 내린 건 7시5분 정도였다. 공연을 보러 가려면 1시간은 걸리는데 중간에 입장하는 게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가봤자 1시간 밖에 못 보는데 (왕복 2시간 이동인데 1시간만 공연을 보는 게 비용 대비 효용이 너무 낮았다) 안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 뭔가 그럴 기분도 아니었다. 집에 가서 빨리 씻고 쉬고 싶었다. 내려준 역도 내가 탄 역이 아니라서 집까지 30분을 걸어서 왔다. 못 걸을 거리는 아니지만 비도 오고 해도 다 떨어진 저녁 시간에 솔직히 걷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걸어서 왔지.
남편이 앞으로는 NJ Transit을 타고 맨해튼을 나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솔직히 본인도 패스가 훨씬 편하다는 걸 알고 있고, 나도 편한 패스를 냅두고 불편한 버스를 타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도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 왔는데 왕복으로 패스 잘 타고 다녀왔다.
어디 다친 곳 없이 끝나서 다행이긴 했는데,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구나 싶고 (그 와중에 이거 브런치에 올리면 괜찮겠네?!라는 생각을 했다, 나란 여자 특이한 소재라면 눈이 반짝이지...!), 이런 사고는 내가 조심한다고 조심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연기가 찬 열차에서 10분 정도 입을 가리고 있으면서, 이러다가 죽는건가라는 생각도 문득 들기도 했는데, 심약한 사람이라면 굉장히 패닉이 왔을 거 같다.
액땜한 거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길 바란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틱톡과 블로그에 올라온 내용도 참고로 공유해본다.
https://www.tiktok.com/@nypost/video/7447590864089632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