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준비가 된 순간이 적절한 시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누구는 집을 샀다더라, 누구는 결혼했는데 상대가 어떻다더라, 누구는 애를 낳아서 뭘 어쨌다더라.
자극적인 가십은 재미가 있기도 하지만, 듣다보면 그래서 뭐 어쩌라는거지라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한 번 엄마랑 얘기를 하면서 내 친구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내 친구들을 엄마도 꽤 알고 있기 때문에 친구 한 명의 근황을 공유한 것이었는데, 엄마는 듣더니 대뜸 "걔 결혼은 했어?"라고 물어봤다. 저 때만 그런 게 아니라, 회사 동료 얘기나 지인 얘기를 할 때에도 결국 엄마의 결론은 "걔 결혼은 했어?"였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대화의 포인트는 그게 아님에도 엄마와 얘기를 하다보면 기승전 결혼으로 끝났다. 특히 내가 결혼을 하기 전에는 결혼에 대한 압박이 있었기 때문에 예민했고, 엄마한테 "엄마는 결혼 아니면 할 얘기가 없냐"라고 쏘아댔다. 엄마의 관심사가 결혼인 것이 뭐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닌데 어쨌든 항상 결론은 결혼으로 이어지는 대화가 재미도 없고 유익하지도 않았다고 느껴졌다.
요즘이야 그러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해져서 결혼에 대해 압박하는 풍조는 조금 덜 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이가 차면 결혼은 왜 안 하냐, 남자친구/여자친구가 있는 경우에는 상대도 있는데 왜 결혼을 안 하냐는 등의 오지랖 질문을 해댄다. 정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대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질문을 빙자한 참견이고 압박일 뿐이다.
나도 기혼자기이 때문에 누가 나에게 "결혼은 언제 하는 게 좋아요?"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질문을 들으면 나는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하는 게 맞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 때가 25세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45세일 수도 있다. 특정한 시기에 해야 된다는 압박이나 어쩌다가 떠밀려서 한 사람들의 경우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아이를 가질 생각이 있다면 빨리 결혼하라고 하는 얘기도 많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여자와 남자 모두 노산은 좋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평균 수명이 높아지고, 과거와 비교해봤을 때 젊은 몸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평균 수명이 60세인 사회에서 30에 결혼하고 바로 애를 낳아도 노산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85세인 사회라면 30이면 적정한 연령일 수 있다. 나이 때문에 떠밀리듯이 아이를 가지는 것은 나이 때문에 떠밀리듯이 결혼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혼이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하는 게 맞는 것처럼 아이를 갖는 것도 스스로 준비가 되었을 때 하는 것이 맞다. 나이가 젊을 때 아이를 낳는다면 조금 더 건강한 아이를 나을 수 있겠지만, 스스로 준비되지 않은 부모가 정서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결혼과 출산은 굉장히 사적인 영역이며 인생이 정말 크게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맡겨 놓은 것마냥, 아니면 자기가 해봐서 안다는 것마냥 언제 결혼하는 게 좋고 언제 애를 낳는게 좋다는 등의 훈수를 둔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정말 좋은 마음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본인이 선배이기 때문에 더 잘 안다는 태도로 말한다. 내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신의 상황에서 나오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기분만 나빠진다.
오늘 글은 빨리 애를 가지라는 외부의 압박과 나이에서 오는 내부의 압박 때문에 써본 글이다. 솔직히 여전히 나는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아이를 키우는 주변 사람들을 봐도 하나도 안 부럽다. 심지어 내 피가 섞인 친조카들도 작아서 귀엽긴 하지만 뭐 엄청 예쁘다는 느낌도 안 든다. 물론 이래저래 열심히 챙기고 귀엽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늘어 놓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시큰둥한 느낌이다. 다만 내 인생에서 아이라는 존재는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서 아이를 낳을 생각은 있다. 지금이야 안 부럽지만 10년 20년이 지났을 때에 내가 아이가 없다면 백프로 주변을 부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실제로 내가 아이를 낳은 뒤에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재밌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