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떠났다
나의 첫 해외 취업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2018년 8월이었다. 대학원 입학을 가을학기에 했기 때문에 여름에 졸업을 하게 되었다. 2020년 1월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딱 코로나 시기랑 맞물려서 운이 좋았다. 퇴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에 코로나는 전혀 없었고, 2019년 9월, 10월부터 그 일을 더 이상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실제로도 그 직무는 근속연수가 굉장히 짧았다. 중국 현지 직원은 평균 10개월~1년 정도 근속을 하고, 한국인 직원은 1년 반 정도, 일본인 직원은 2년 정도라고 하니, 나는 한국인 직원의 평균 근속 연수만큼 일하고 퇴사할 때가 되서 퇴사한 셈이다.
이번 글에서는 어쩌다가 해외 취업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서의 삶은 어땠는지 회고해보겠다.
참고로 지금은 중국이 별로 매력적인 곳은 아니지만, 내가 대학원을 입학하던 2016년과 해외 취업을 하던 2018년에는 그래도 괜찮았다.
[목차]
- 어떻게 나갔는지?
- 왜 나갔는지?
- 업무에 대한 부분
- 생활에 대한 부분
내가 일했던 회사는 영국 회사였는데 한국에는 지사가 없어서 상해에 있는 오피스에서 한국팀이 같이 일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업무에 필요한 영어는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였다. 중국어는 일할 때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국의 취업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 당시 회사에서는 '학사 학위 이상이면서 2년 이상의 경력자'에 맞는 조건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2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사람을 찾는 게 또 어렵다보니 차라리 대학원을 나온 사람을 찾고 있었다. 대학원이 2년짜리이니 아무래도 2년간의 경력에 대한 부분을 처리하기 쉬워서였다. 실제로 나도 첫 회사 경력은 1년 9개월이었는데, 대학원에서 조교로 일한 기간 1년 6개월도 경력으로 쳐서 비자를 받는 데 문제가 없었다. 준비해야 되는 서류가 꽤 여러 개였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거는 범죄 경력 증명서였다. 처음 떼 봤는데 (경찰서에 가서 떼야 됨), 아무런 내역도 없는 깨끗한 상태여서 뿌듯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 때, 다들 이런 저런 취업 활동을 하고 대학원 자체에서도 취업과 관련하여 여러 지원을 해줬는데, 그 때 이 회사에서 대학원으로 취업 소개를 왔었다. 업무 자체가 내가 엄청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해외에 나가서 일해본다는 점이 꽤 매력적이라서 선택하게 되었다.
나갈 수 있어서 나갔다는 게 맞는 말일 것 같다.
(1) 비자까지 지원해주는 일자리를 얻었고
(2) 한 학기 살아봤는데 살만 했고
(3) 중국어가 필요한 업무도 아니고 (영어랑 한국어만 필요함)
(4) 한국에서 살기 싫었다
상해에서 일자리를 갖기 전에 한 학기 상해에서 공부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살면서 '어, 살만한대?'라는 생각을 한 게 컸다. 만약 아예 가보지도 않은 곳이었다면 굳이 해외에서 취업할 생각은 안 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한국이 싫어서 나갔었다. 한국에 있으면 자의든 타의든 너무 비교하는 게 싫었다. 누구는 어디를 다니고 연봉이 얼마라고 하더라. 누구는 결혼을 했다더라. 누구는 집을 샀다더라. 이런 말들을 너무 듣기 싫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말하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도 비교를 하고 있었다.
확실히 해외에 있으면 그런 비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바리케이트가 쳐진 느낌이었다. 나 스스로 비교하는 것도 확실히 덜 하게 되었다. 하지만 뭐 결국 나가보니 사실 사람 사는 곳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외 취업과 관련된 업무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 하자면, 이런 특징이 있다.
(1) 외국어로 일할 수 있다
(2) 외국의 일하는 문화를 배울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중국어로 업무를 할 필요는 전혀 없고, 영어와 한국어를 사용했는데, 사실 한국에서 한국 기업을 다니면 외국어를 쓸 일이 별로 없다. 직종과 직무에 따라서 외국어를 많이 사용하는 곳도 있을 수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사용할 일이 없다. 외국어를 사용해서 일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멋진 일이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내가 다녔던 회사는 미국 회사의 한국 지사였는데, 사실 이 때 업무를 하면서 영어를 썼던 경험이 꽤 많이 도움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일 자체는 처음부터 별로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다. 사실 한국에서 동일한 일을 해야 되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 자체가 그렇게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일에서 꽤 많이 배웠고 동료들도 정말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 있는 연구직이 첫 회사였다면 그와는 정말 반대되는 일을 두 번째 회사에서 한 셈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외국 생활 자체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일은 별로였지만 상해에서의 생활은 다시 생각해봐도 좋았다. 만약에 일만 좀 더 적성에 맞았다면 좀 더 오래 생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 한국에서보다 자유롭다
(2) 중국 내에서 여행하기 좋았다 (외국 문화 경험)
(3) 병원과 온돌은 아쉽다
(4) 물가는 좋았다
+ 외로움은 없었다
일단 자유롭다는게 여러 가지 의미일 수 있는데, 앞에서 말한 한국에서의 비교 문화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다 같이 트랙을 달리다가 나는 갈림길에서 다른 곳으로 빠져서 정확한 비교를 할 수 있는 기준이 사라진 느낌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부모님과 평생을 같이 살다가 독립해서 살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느꼈다. 누군가와 같이 살면,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한 예의로 언제 들어오는지 밥은 먹고 들어오는지 등을 알려야 되는데, 혼자 살게 되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물론 독립해서 사는 것은 돈이 많이 들지만 그 돈 만큼의 자유가 생긴다고 보면 된다.
또 좋았던 점은 중국 내에서 여행을 하기 좋았다는 점이다. 이미 상해에서 한 학기 생활하면서 여행은 엄청 많이 하긴 했는데, 그래도 안 가본 곳들이 여전히 많았다. 그 당시에 한국에서 중국을 가려면 비자도 받아야 되고 (지금은 무비자로 관광할 수 있다고 들었음), 비행기표도 그렇게 싸지 않았다. 상해에서 출발하는 중국 국내선 비행기들은 저렴해서 좋았다. 내몽고를 그 때 갔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병원은 갈 생각을 안 했다. 한국에서 상비약을 바리바리 싸가서 아프면 먹었다. 친구들이 말하길 중국 로컬 병원에 가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온돌도 아쉬웠다. 그냥 히터 밖에 없었는데, 공기가 건조해지는 게 싫었다. 그리고 온돌보다 효과적으로 따뜻해지는 것 같지도 않았다.
물가는 싸서 정말 좋았다. 한국에서는 택시를 거의 안 탔는데, 상해에서는 택시를 좀 탔다. 버스나 지하철 요금도 충격적일 만큼 쌌다. 내 기억에 기본 요금이 2위안 이랬는데, 이게 그 당시 환율이 170원이었으니 340원을 내고 버스랑 지하철을 탄 거다. 핸드폰 요금도 쌌고, 밖에서 사먹는 외식 비용이나 배달 비용도 쌌다. 타오바오도 애용했는데 저렴해서 좋았다. (지금 미국에 살아서 그런지 중국 물가가 엄청나게 그립다... 여기는 지하철이 2.9달러인데 환율 1400원으로 치면 4000원이다... 하....)
외로움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은데, 나 같은 경우는 외로움은 없었다. 원래도 외로움을 타는 성격도 아니고 한국인 동료들이나 중국인 친구들도 있어서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 잠깐 같이 살았던 중국인 하우스 메이트랑도 친해졌고, 거의 1년 넘게 언어 교환을 같이 하고 난징 여행도 같이 갔던 중국인 친구랑도 친했다. 물론 가끔 내가 여기서는 외국인이구나 하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긴 했지만 크지 않았다.
상해는 한국에서 가까워서 덜 외로웠을 수 있다. 비행기로 2시간만 가면 되고 (인천 - 푸동으로 많이 가는데, 김포 - 홍차오가 더 시내에서 가까워서 좋다), 시차도 1시간 밖에 안 난다. 비행 시간이 길거나 표가 엄청 비싼 것도 아니라서 1년에 한 두번은 한국에 들어갔다 왔던 것 같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아주 멀리 있다면 솔직히 갈 엄두가 나지 않고 굳이 가야 되는 일이 아니면 안 가게 되는 것 같다. 지금 미국에 있지만 역시나 전혀 외롭지 않다. 다만 서양인들 천지인 곳이기 때문에 동양인으로서 조금 위축되는 느낌은 더 있긴 하다.
주절주절 쓰다 보니 꽤 길게 쓰게 되었는데, 돌이켜보면 좋은 추억이 많았다. 해외 취업을 할 수 있다면 해보는 걸 추천한다. 정말 배우는 게 많고 경험할 수 있는 게 많다.
해외 생활에 대해 로망을 가질 것까지는 없지만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다) 그래도 확실히 견문도 넓어지고 한국 사회에서 비좁게 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