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기업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
10년 정도의 경력이 있지만 이번에 뉴욕에서의 구직은 내 인생에서 가장 쉽지 않은 일이었다. 4-5개월 동안 150개 정도 이력서를 넣었다. 막 대학을 졸업했을 때는 대충 50-60개 정도 지원했던 거 같고, 석사를 마치고 취업을 했을 때도 30-40개 정도 지원했던 거에 비해 훨씬 더 어려웠다. 그 뒤로 경력직으로 IT 업계에서 일할 때에는 솔직히 4-5개 지원하고 2-3개 최종으로 붙어서 선택해서 이직을 했었다. 그렇게 이직을 했었는데 갑자기 맨땅에 헤딩을 하듯이 막막한 상황이 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미국에서의 어떠한 백그라운드도 없기 때문이다.
마치 태국 사람이 태국에서 명문대를 졸업하고 태국에서 직장 경력이 있는데 한국어는 잘 하고 한국에서의 비자도 문제 없는데,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는 것과 같다. 한국 입장에서는 그 사람이 정말 엄청 특출난 능력이 있거나 상황적으로 꼭 필요한 게 아닌 이상 (예를 들어 태국과 비즈니스를 하는 데 담당자가 필요하다면 아주 좋은 인재이다) 굳이 뽑지 않고 다른 한국인을 뽑을 것이다.
만약 내가 개발자였다면 좀 더 괜찮을까 싶었는데, 예전에 친오빠가 미국으로 취업하고 싶어했지만 쉽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그것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먼저 미국에서 취업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두 가지 선제 조건이 있다. 1. 비자 와 2. 영어 이다.
시민권자나 영주권자 혹은 다른 워킹 퍼밋이 있는 비자를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그나마 낫다. 만약 비자 스폰서를 원하는 경우는 정말 쉽지 않다.
직무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지만 일단 회사에서 업무를 하는 데 지장이 없는 영어 실력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비자와 영어 문제가 없다고 해서 일자리 구하는 게 쉬운 건 전혀 아니다. 나 같은 경우는 비자와 영어 문제가 없었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취업이 되려나 고민해봤는데, 두 가지 결론이 나왔다
난 원래 미국 회사를 겨냥해서 구직 활동을 했었다. 미국에 왔으니 미국 회사를 다니는 게 맞지 않나? 그건 미국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 아닐까?하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원래 한국에서도 스타트업을 다녔기 때문에 큰 규모의 회사를 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나 앞에서 들었던 비유처럼 회사 입장에서는 굳이 나를 뽑을 이유가 없었다. 서류를 엄청 많이 넣어도 (커버레터도 꼼꼼하게 다 첨부했다) 통과가 잘 안 되었고, 정말 소수의 몇 개는 서류가 통과되었지만 인사팀과 간단한 전화 인터뷰의 기회만 얻었을 뿐 제대로 된 면접 기회는 얻지 못했다.
취업을 거의 포기하고 있을 때 어쩌다 보인 한국계 공고들이 눈에 띄었다. 그 전까지는 내 직무랑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이고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꽤나 마음에 드는 곳들이 몇 개 보였고, 그 중 하나를 지금 다니고 있다.
미국 로컬 기업에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후보자였겠지만 한국계에서는 괜찮은 후보자라는 게 느껴졌고, 만신창이가 된 자존심도 조금은 수습이 되었다.
내가 무능한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기억하면 자존감 유지에 도움이 된다.
물에서 사는 물고기를 땅으로 데려와서 살도록 하는 거랑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땅 밖에 없어서 망연자실 했지만, 수족관을 발견하거나 연못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 찾아보자.
대학원을 가는 것도 좋은 옵션이다. 물론 여유가 없는 경우는 대학원을 선택하기 어렵겠지만, 대학원을 다니면 미국에서의 백그라운드도 생기고 이래저래 네트워크도 생기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전공에 따라서 대학원 졸업 후에 취업 비자를 일정 기간 지원해주기도 하는데, 정권이 바뀌어서 조건도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너무 취업이 안 되니까 대학원을 가볼까 알아보기도 했다.
유퀴즈에서 봤는데 어떤 교수님이 출근하기 싫다고 말하는 아들에게 "인생은 출근하고 싶어하는 것과 출근하기 싫어하는 것 둘 중 하나라고 했다." 내 인생도 항상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취업할 때에는 아침에 출근할 수 있는 회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막상 출근하니 아침에 일어나기 싫고 회사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서 매일 출근하고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