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바로 설 때

쉼과 돈과 예민함

by 한아르미


점심시간에 파트 회식이 번개처럼 잡혔다.

배가 사르르 아파서 가지 못하겠다고 하고, 대신 산책을 나갔다.

걷는 동안에도 배는 여전히 살살 아팠다.


내가 좋아하는 흔들의자와 호수가 있는 곳.

항상 이 구도가 예쁘다고 보기만 했지,

정작 그 흔들의자에 앉아본 적은 없었다.

따뜻하고 평화롭기도 했고,

한편으론 쓸쓸하기도 했다.

봄에는 튤립으로 가득하던 이곳이

계절을 지나며 조금 비어 보였다.

그렇게 돌고 도는 거겠지.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내가 위로받던 길이었다.

외롭지 않았던,

혼자여서 괜찮았던 시간의 길.


하루하루 크고 작은 일들 속에서

휴직을 가서 다행이라고

나는 여러 번 나 자신을 다독였다.


이제 주말이다.

주말을 하나 더 보내고,

또 한 주를 살아내면

나는 잠시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그 ‘잠시’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작년 오늘,

7년 전 오늘,

11년 전 오늘에도

나는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기억도 나지 않는데 말이다.


즐겁고 평화로웠던 날들이

정말 없었던 걸까 싶어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온 답은

“쉬운 날이 어디 있겠어.”


11년 전 일기 속

“그만둘까”라는 문장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그렇게 또 11년을 버텨왔구나 싶어서.


연말정산이 시작됐다.

카드 사용 내역을 보며

남편이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많이 썼네.”


그 말에

나는 예민하게 반응해 버렸다.

애들 수업료가 대부분이라는 말과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벌어서 쓴 건데

그게 문제냐고 쏘아붙였다.


‘여태 생활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다고’

그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목에서 삼켰다.


결국 둘 다 기분이 상했고

같이 마시던 맥주는

각자 마신 채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졌다.


혹시 내가 우울증일까,

공황장애 비슷한 무언가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수입이 끊기고

통장 잔고가 줄어들 텐데

나는 더 예민해질까.


예전에도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땐 산후우울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퇴근한 남편의

“주말엔 청소 좀 해야겠다”라는 말에

하루 종일 놀기만 한 것 같냐며

화를 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모두가 행복해지려고 내린 ‘쉼’의 결정이

오히려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고

또다시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치료가 필요한 걸까.

적어도 마음의 안정이 필요한 건 맞는 것 같다.


내일은 작은 화분을 몇 개 사야겠다.

아껴 써야겠다고 마음먹을수록

사고 싶은 건

이상하게 더 늘어난다.


돈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쉬고 싶었던 마음이었는데

벌써 돈이 필요해졌다.


언제까지 돈에 끌려다닐 수는 없으니

극복해 보자.

한때는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면

돈이 부족한 건 아닌지

돌아보라는 말이

진리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다르다.

돈으로 할 수 있는 만큼의 돈이 없으니

돈이 없어도 되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진단은 했고,

인정도 했다.

아직 치료는 시작하지 못했지만

이제 자가치유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이다.


빨리 나아지진 않겠지만

나아지긴 하겠지.

그 치유의 힘을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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