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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송 Sep 28. 2019

딸아, 이런 남자를 만나렴


  시어머님은 그러셨다. 장을 볼 때, 아주 작은 가방 하나를 팔 정강이에 걸치셨다. 검지 손가락으로 물건을 몇 번 가리키고, 상호명과 품목을 말하면 그것들이 카트에 담기고 박스에 옮겨져 차 트렁크에, 주방 정리대에 착착착 자동으로 옮겨지곤 했다. 장을 보기 전에나 보고 난 후에나 어머님 손에 들리는 건, 똑같이 작은 가방 하나였다. 우리 엄마는 장을 보고 나면,  봉지 봉지로 주렁주렁 이 되었는데. 내가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갈 무렵쯤, 일정 금액 이상 물건을 구매하면 마트에서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시작되었는데, 엄마는 그것을 참으로 좋아하셨지.


  1년에 네 번, 제사와 차례음식을 준비하면서도 어머님은 그 많은 음식을 절대 혼자 하지 않으셨다. 주방에서 돌아가는 모든 요리의 흐름은 꿰고 계셨지만,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으셨다.  나를 포함해 며느리가 둘이나 있는데도, 굳이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를 따로 불러 "며느리들은 하는 행색이나 하렴, 아 이러려고 돈 버는 거 아니야?" 하셨다. 깜빡하고 장 보지 않은 식자재들은 부리나케 아버님이 대령해주셨고, 조금이라도 더우면 더위를 이기는 장비가, 추우면 추위를 이겨내는 장비가 동원되었다. "제사(혹은 차례) 음식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따로 식사 준비까지 어떻게 해?"라는 합리적인 논리로 음식을 하는 날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배달음식을 먹거나 외식을 하였다.


 아버님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츤데레'인데, 그 적합성이 어마어마하다. 앞에서는 아무 말씀 안 하시지만, 상대가 하는 말들을 귀에 담아 두셨다가 상황에 맞게 그것들을 행동으로 꺼내 두시는 일인자. 나물 반찬을 좋아하는 내 식습관을 잘 봐 두셨다가 철에 맞는 나물들을 직접 뜯어 보내주신다거나, 차 좀 잠깐 빌려달라고 하셔 놓고는 휘발유를 만땅으로 채워주시는 센스, 겨우내 먹을 김치를 친정 식구들의 몫까지 담가주시며 맛있게 먹어주니 고맙다고 하시는 분. 어머님을 얼마나 살뜰히 챙기시는지. 말은 아끼시고 애정 어린 시선과 손을 지속적으로 더하시는 아버님이, 나는 참 좋았다.


  남편은 이런 부모님 밑에서 나고 자랐다. 유년기에 부모님으로부터의 상처가 있지만, 그것들이 지속되지 않도록 부단한 애를 자식인 남편이 썼다. 어떻게 그토록 어린 나이에 그런 가능해지는 거냐고. 나라면 생채기 난 마음들에 부모님을 향해 눈을 흘겼을 텐데, 어떻게 오빠는 그럴 수가 있었냐고. 나는 물음표를 계속해서 던졌지만, 남편은 "부모님도 그땐 젊으셨잖아. 그럴 수도 있지~" 하고는 넘어갔다. 남편은 가족생활에 있어 좋은 것은 흡수하고 싫은 것은 뱉어 버리는 생활을 27년째 하던 해에 나를 만났다.


 무뚝뚝하게 생겨서 속은 자상함으로 꽉 찬 남자와, 애교 있을 것처럼 생겨서 대화의 기본 톤이 ‘도’인 여자가 만나 결혼을 했다. 첫 아이를 낳고 육아에 허덕이던 시절, 그때는 왜 정기배송이 없었던 걸까. 왜 마지막 분유와 마지막 기저귀는 빛의 속도로 소진되는 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인심을 가장한 생색을 그렇게 낸 것이 무색하게, 남편은 밤 열 시가 되지 않아 귀가해야 했다. 양손에 빨간 기저귀 팩을 하나씩 들고는.


 그 때라고 하니 웃기지만, 워라벨이라는 것이 난무했기 때문에. 사장님이 가셔야 퇴근하는 회사, 부부가 나란히 사장님으로 자녀 없이 목숨 거는 회사에 다니던 남편은 항상 12시가 넘어 퇴근을 했다.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 하루 3시간, 대중교통으로 퇴근하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늦던 남편의 삶이었다. 아이와 나란히 잠드느라 남편의 출입을 (눈뜨면 출근, 눈 감고 나면 퇴근하였기 때문에) 젖병의 상태로 가늠하였다. 새벽 3-4시에 꼬박 하는 밤중 수유에 젖병도 안 씻어두고 잠드는 날이면, 자다 깬 아이의 울음소리에 철렁했다. 부리나케 주방으로 뛰어나가면 4개의 젖병이.. 깨끗하게 씻겨 보송하게 말라있었다. 뜨거운 물로 팔팔 삶아 그 열기가 조금은 남아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남편의 잠든 시간을 가늠할 수 있었다. 나는 매번, 그렇게 소독되어 세워져 있는 젖병들을 보며 옷소매로 눈을 비볐다. 


  이제는 결혼 11년에 육아만 10년 차, 육아라기보다 교육에 조금 더 힘을 실어야 하는 우리는, 아니 나는 사교육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쳤다. 남편은 내 교육관과 가치관을 모두 존중했지만, 사교육을 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교육은 해야 한다고 말을 전했다. 나는 입으로만 그럴싸하게 떠들 뿐, 그 성실과 노력은 남편의 몫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의 진도를 확인해, 문제들을 추려서 출력해오고 아이들에게 충분히 숙지가 되도록 했다. 한 번은 아들 녀석의 시험날이었는데, 하루 전에 기출문제를 찾아와 아들과 하나하나 풀어보더라. 시험 당일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난 부자는, 또다시 머리를 맞대고 수학 문제를 풀었다. 아들 녀석이 앞으로 치르게 될 모든 시험들을 그렇게 준비해갈 것이라, 응시자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를 배웠을 거라 가늠되어서.. 그날의 나는 너무나 마음이 불렀다.


  예전에 스타강사 김미경 씨가 이런 말을 했다. "결혼은 벤츠 타는 남자랑 하는 거 아니야. 나를 대신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줄 수 있는 사람이랑 하는 거지. " 너무나 공감하고 당연해서 고개를 끄덕이다 못해 허리까지 숙이고 싶어 지는 대목이다. 벤츠를 탄다는 것은 일상의 호사로움이고, 나를 대신하여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준다는 건 나의 삶에 들어와 함께 해 주는 것이다. 배우자의 역할 중에 상대의 삶을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 의무 같은 것은 없다. 그저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어도. 한 개인으로서의 삶도 유지해 갈 수 있도록, 서로에게 더 나은 기회와 다양한 경험치를 쌓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배우자의 형상.



딸아, 너는 이런 남자를 만나렴 - 

너의 아빠 같은 사람을, 내 남편 같은 남자를 만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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