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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송 Jun 02. 2019

남편님께 드리는 반성문

실컷 소고기에 와인 먹여노니 하는 말 

 

 배가 하나도 안고픈데, 남편이 마트에서 소고기를 20만 원어치나 사 왔다. 그 전날 오고 갔던 말들이 미안해서였을 까, 남편은 값비싼 와인과 소고기를 사서 배불리 먹여주었다. 정성스레 굽고, 곁들일 다양한 소스와 채소들도 직접 구비해서 멋진 테이블을 차려냈다.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는데도 주면 주는 대로 주야장천 잘만 먹었다. 고추냉이에 곁들어서 한 점, 질 좋은 소금에 곁들여서 한 점, 엄마가 해주신 파김치에 한 점, 스테이크 소스에 한점. 그렇게 젓가락질을 쉴 새 없이 하고, 오물거리다가 와인도 홀짝홀짝 잘만 마셨더랬다.


  맛있다고 예찬하며 먹어도 시원찮을 판에, 실컷 잘 먹고 난 나는 남편에게 사는 게 재미없다고 했다. 남편은 재미있는 일을 찾으라고 했고, 나는 “찾아봤자 어차피 오빠가 또 못하게 할 거잖아”라는 말로 남편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못 박힐 거라는 걸 알고 말했으니 나는 진짜 못돼먹었다..) 하루아침에 남편의 가슴에 못 박아야지 했던 건 아니다. 요 며칠 남편과 오고 갔던 말들이 쌓여 만든 결과물인 거다. (그렇다고 못 박은 게 잘한 건 아니다..) 



  지난 3월, 나는 아들과 딸과 엄마를 모시고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혼자 가려던 계획에서 셋, 넷으로 이어지며 게스트하우스가 4,5성급 호텔로 바뀌고 지하철과 버스는 택시로 바뀌었다. 길거리 음식이 레스토랑으로, 그렇게 호화스럽게 다녀온 일본 여행을 하고 오니 이제는 중국이 가고 싶었다. 깔끔하고 정돈돼서 시민의식까지 세련된 도시 말고, 대자연을 눈으로 담고, 내 자녀들의 눈에 담게 해주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가?’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찾으며 흔히 말하는 ‘오라 오라 병(여행자들이 귀국해서 겪는 흔한 병)’을 고민 없이 타협했다. 그에 따라 휴가 낼 수 있는 시기를 바로 찾았고, 그 시기는 비행기 값이 비교적 저렴한 시기로써 계절도 안성맞춤 이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기 었다.


  남편은 안된다고 했다. 우리는 집을 구매했고, 올해 지출 항목이 많으니 지출을 최소화하자고 했다. 나는 바로 남편의 말에 적극 동의했다. 남편에게만 귀 무게가 2g인 나는, 맞아 맞아- 당신 말이 맞지.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한 푼이라도 아껴서 은행 집을 내 집으로 만들어야지 했다. 그런데 그 마음은 그때뿐, 단순히 집을 소유하기 위해서 2-3년간 내 삶의 질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거에는 삶으로 동의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럼 그때까지 내 퍽퍽한 삶의 기름칠은 무엇으로 하나.. 나는 집에 대한 소유보다 경험을 많이 많이 쌓고 싶은대!


  토요일 오전에 같이 걸었던 대공원에서 딸아이의 컨디션 저조로, 돌아가는 길에는 케이블 카를 타자고 했다. 나는 의견을 제시했고 딸아이는 환호성을 질렀으며 남편은 우리를 제지했다. 산책하러 나온 것이니, 명분에 맞게 산책으로 돌아가자는 거다. 이렇게나 융통성 없는 사람아- 산책하러 나와서 배를 타고 기차를 탈 수도 있지, 그것도 산책의 일부라면 일부지-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남편이 왜 반대하는지 알았다. 전적으로 비용 탓이었을 거다. 남편의 머릿속에는 이사 갈 집과 새로이 넣을 가전/가구들이 힘을 주고 있었으니까. 




  나는 소고기를 먹으며 그토록 성실하고 착실한 남편의 마음밭을 삽으로 아무렇게나 파헤쳐버린 거다. 철이 없다 못해 망나니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주제에. 부른 배를 움켜잡고, 또 출근하기는 싫어서 나의 유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편을 찌른거다. 내가 뱉은 말을 그저 삼키기만 하는 남편을 보며 안타까워 하지나 말던가..



이럴 거면 고기나 적게 먹지 그랬니, 엄미송아

.. 나도 내가 감당이 안돼서 돌아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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