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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송 May 27. 2019

퇴사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도망가는 거 아니에요. 살려고 퇴사하는 거예요. 

회사에서는 나름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보이려고 했는지, 영어 이름을 썼다. 

나는 내 한국어 이름이 좋았지만, 회사에서는 한국어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하니. 별도로 사용하던 영어 이름이 없어 아무 이름이나 가져다 썼다. 'Amy' 영어 이름을 쓴 지 1년 하고 서너 개월 더. 한국 이름만큼  영어 이름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퇴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퇴사를 해볼까 했던 계기는 이런 거다. 엄청난 과업이라던가, 엄청난 부조리를 눈 앞에 두고 정의에 불타서, 혹은 최저시급도 안 되는 급여에 인권까지 침해당하는 것 같은. 이런 어마어마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일을 하다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도 분명히 있었지만, 일을 통해서 얻는 경제적 유익과 보람도 있었으니까. 동료도, 상사도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아서였다.


좋지도 않았으니까. 사람 대면하기를 좋아하던 나는, 회사에서 모니터 속 숫자만 하릴없이 바라보며 오차를 찾았다. 개인은 개인대로, 법인은 법인대로 부여된 숫자가 있었다. 그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비용의 숫자와, 그들로부터 받아야 하는 숫자를 확인해서 그것들이 지급되고, 받아지도록 했다. 그렇게 뜨겁다는 스타트 업에서, 좋은 궤도에 올라있다는 공유 오피스 시장에서 나는 중요하고도 재미없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체계가 없어 만들자고 하면, 대충 하자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누구도 문제 삼지 않으니 애쓰지 말자고 했다. 굳이 더하지 않아도 해야 할 일들이 수두루 백백이라고 했다. 좋은 학력과,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회사에서 경력을 쌓아온 상사가 그랬다. 그가 그렇다면, 그냥 그런 거였다. 참다못해 불만을 토로하며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동료가 울었다. 그리고 상사도 눈시울을 붉혔다. 이런 동료와 상사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어, 바로 번복했다. 그때 바로 그만뒀어야 했나. 


9살 된 딸이 행복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엄마에게 죄송해서- 그래서 퇴사했다. 딸의 행복을 바라면서, 내가 행복하지 않는 건 엄마에게 너무나 가혹한 불효라고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효녀여서 퇴사한 거다. 당장 다음 달부터 줄어들 소득에 대한 대비책이라던가, 바로 생기는 여유시간들을 어떻게 쓰겠다 계획 같은 건 없었다. 단지 나중에 누릴 행복을 조금 앞당겼을 뿐인 거니까. 


퇴사한 첫날엔 소풍 가는 아들 녀석의 도시락에 조금 더 정성을 쏟았다. 평소 같았으면 김밥에 과일 정도를 곁들였을 텐데, 시간이 많은 나는 요리책을 한 권 빌렸다. 아들에게 먹고 싶은 도시락 메뉴를 고르라고 해서 정성껏 재료를 준비했다. 닭가슴살 또르띠야와 삼색 유부초밥, 갖가지 과일을 곁들였다. 혹 날씨가 더워지면 맛이 덜해질까 싶어 보냉백에 아이스팩을 채워 넣고, 엄마표 도시락의 꽃 '쪽지'도 썼다. 

▲  내 남편이 이렇게 근사한 사람이었던 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등교하는 아이들을 안타까워만 하지 않아도 되었다. 차로 학교 인근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오니, 꽃배달이 왔다. 'Amy님' 앞으로 배달 온 꽃을 누가 보냈을까, 우리 회사에 나를 이렇게까지 애정 해주던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궁금해 미칠 것 같은 순간에 카드를 열어 보낸 이를 확인했다.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요. 축 퇴사! 남편드림'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데, 당시의 마음으론 다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용산으로 달려가 한산한 의류 매장을 누렸다. 입고 싶은 옷을 골라 피팅룸에 들러 계산을 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줄 따위는 없었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높은 천장을 가지고 있는 카페에서는 좋아하는 커피를 음미하기,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기 더할 나위 없이 좋더라. 러시아워를 피하면 대중교통은 이동과 동시에 휴식의 공간까지 되었다. 


저녁을 일찍 먹고, 아이들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 숙제와 준비물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자기 전 읽는 책을 한 권 더 읽었다. 여유 있게 씻고, 다시 글을 몇 줄 더 읽었다. 그리고는 이어 글을 쓴다. 언젠가 내가 적은 글들을 세상에 꺼내야지, 하고 먹었던 다짐들을 삶으로 살아낸다. 불안을 거름 삼아,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한 일들로 바꿔보련다. 다음 달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최저임금이라도 찾아 급하게 구직을 해야 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을 테야. 적어도 한 달은 그럴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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