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직해 옮겨간 곳에서 뭘 한다고?"
"아.. 저는.."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여전히, 선뜻 그 말이 나오질 않는다. 하는 일의 주는 '영업'인데, 해당 단어가 가지는 분위기와 편견이 나는 두려웠다. 어쩌면 다른 이의 생각보다 내가 가진 고정관념과 편견이 만들어낸 것들에 내가 갇혀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마'가 아니라 전적으로 그렇다. 누구의 추천이나 권유에 의해서는 살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으려고, 나는 또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 이 일을 선택했으니까.
벌써 5개월 전,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퇴사를 했었다. ‘불안’을 근간으로, 원하는 비전과 미션을 가진 회사를 매의 눈으로 찾았다. 채용 절차를 밟는 와중에 지원한 회사로부터 받은 첫 메일은 ‘서류 전형 탈락’이었다. 지원자의 마음과 채용자의 것은 당연히 달라, 떨어뜨리는 자는 대게 그 회신 속도가 빠르고 내용이 일관적인데 내가 주의 깊게 봐 두었던 이 회사는 조금 달랐다.
상시채용이라 하루에도 지원자가 여럿, 불합격자 역시 여럿일 텐데 흔히 뿌려지는 탈락 소식이 아닌 것이 인상 깊었다. 뛰어난 경력임에도 당사를 깊이 있게 봐주어 고맙다는 말과 체계가 부족한 상태로 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임을 전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보다 역량을 보일 수 있는 곳에서 근무하다, 더 좋은 환경이 갖추어지거든 함께 호흡을 맞춰보자던. 인사담당자가 나에게만 정성스레 쓴 탈락 소식. 나를 떨어뜨렸는데도 나는 그 글이 고마워 구구절절 생각나는 것들을 적었다.
내가 왜 전 직장을 퇴사했는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인 지, 작은 부분이지만 당사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내가 그 역할을 해내고 싶다 전달했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 이미 내려진 결정에 재 요청드리는 것이 실례가 되지만, 면접의 자리가 이어질 수 있도록 검토 부탁드린다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 뒤에도 같은 결과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마음에 잔여물을 남기지 않은 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회신을 보냈다.
메일을 보내고 30분이 지나 유선연락이 왔다. 내부 논의를 거쳤고, 면접의 자리를 열겠다며 와주십사 말씀을 주셨다. 손전화 너머로 들리는 단어 하나하나가 마음에 불을 지폈다. 이사님, 대표님과 연달아 이어졌던 자리에서 오고 가는 대담에 마음이 부유했다. 나는 곧바로 원하는 회사에 합류할 수 있었고, 퇴사 후 배경 삼았던 ‘불안’과 거리를 둘 수 있음에 아주 잠깐 자만했다.
숫자를 관리하는 일로부터 도망쳐, 숫자를 만들어내야 하는 자리로 왔다. 회사가 존재하는 목적에 맞게 이윤을 창출해내는, 그 첫 번째 단추를 꿰는 포지션으로 나는 회사를 바꿔가며 자리를 달리했다. 옮겨간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했다. 화장품 제조업으로 사람들이 각기 다르게 가진 피부 타입에 맞게 기초화장품을 맞춤 제조해 주는 것. 계절에 변화에 맞게, 개인이 가지는 피부에 맞게, 주기별로 맞춤 제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이었다. 바른 먹거리에 이어 건강한 바를 거리를 생산해냈다.
회사 내에서는 고객들을 '고객'이라 하지 않고 ‘참여자’라 칭했다. 환경을 생각만 하지 않고 환경을 위해 행동하는 회사였기 때문에, 회사에서 만들어낸 제조품들을 사용하는 것 만으로 우리의 환경 프로젝트에 자동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화장품은 종이팩에 담겼으며, 소량 들어가는 플라스틱도 어떻게 하면 사용치 않을 수 있을까를 여전히 고민하는 회사였다.
화장품 가격의 60~98%가 용기, 마케팅 가격이고 2~10%가 원가인 것이 과연 맞는 지를 의심하며, 참여자들이 더 이상 ‘용기’를 구매하지 않고 원가가 90%, 용기가 10% 원칙을 지켜갈 수 있도록. 생각만 하지 않고 실제 운영에 철학을 담는 것들이 나는 너무 좋았다. 핵심적인 외주업체가 발달장애인들의 꿈의 직장, 사회적 기업의 가꿈지기를 통해 제조된 것들이 참여자들에게 전해졌다. 질 좋은 것들을 생산해, 가감 없이 보여 운영함에, 왜곡치 않고 꺼내놓을 수 있는 것들에 나는 힘이 났다. 있는 그대로를 보이는 것, 그것이 나의 무기가 되었다. 아마 영업이 어렵거나 힘이 들어간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런 부분 때문일 테니까. 좋은 숫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과정이 조금 떨떠름하거나, 왜곡을 한다거나. 혹은 군더더기들을 가감해야 하는 것.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며 관계 쌓는 일이 즐거운 나에게 이보다 더 적합한 일이 있을까 했다. 근무시간에 쫓기지 않았고, 두 취학아동을 데리고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까지 했다. 좋은 결과물은 생활을 윤택하게 해 주었고, 부족한 결과물은 동기부여가 되었으니 큰 불만 사항이 없었다. 보험이나 증권 판매, 방문판매와 조금 달랐던 것은 매출보다 서비스의 소개였다. 아무도 임명하지 않았지만, 나는 참여자를 만나는 최전방의 사람으로 곧 마케터였고, CS 담당자였으며, 이것들을 배경 삼아 다시 첫 단추를 꿰는 사람이었다. 투자사의 매장에서 테스트도 진행해 거리 참여자들도 만났으니, 단기간에 후루룩 흡수된 사람이지 않을까.
이렇게 만족도가 높았던 회사에 물음표를 던져본 경험은 이런 것. 회사에서 한 달에 한번 진행하는 교육에서 자기 적성평가를 해주신다고 했다. 나에 관한 관찰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며 나에 대해 끊임없이 알아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터라, 그 기대치가 오를 만큼 올라 있었는데. 적성평가 설문지 뒤에는 영업사원의 에세이가 유첨 되어 있었고, 이어 영업의 영역에서 오랜 기간 일한 경력자가 외부강의를 했다. 동기부여와 자극을 주려고 하셨겠지만, 나는 그 내용이 참으로 무례하다 느껴졌다. 낮은 급여에 미래 같은 건 없다고, 뭘 할 수 있냐고. 억대 연봉을 받으면 선택할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고. 그것은 곧 삶의 질을 높여준다고. 직급에 관계없이 회사에서 대우부터 달라진다고 했다.
나는 고구마 한 박스를 먹은 것과 같은 답답함이 가득했으므로, 동치미가 필요했다. 나는 왜 그렇게 흘려내지를 못해서 가득가득 온몸으로 담아냈을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이제 고작 입사 3개월 차에 해당 직무 경력 또한 그러한 나는, 무엇보다 만들어 내는 숫자가 그저 그런 나는 말할 자격이 부여되지 않았다. 듣고 듣고 듣다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여간 불편하여 다음 일정을 핑계 삼아 먼저 자리를 나섰다. 조용히 자리를 나서 건물 밖으로 나와 크고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털어보려 했지만, 쉽사리 잘 털어지지 않았다.
회사 운영에 필요한 숫자가 중요하듯, 숫자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고 싶은 게 아니었다. 둘 중 어느 것에도 더 무게를 싫지 않고 그저 닭과 달걀의 상관관계를, 그 연결성을 미묘하게 잘 엮어내고 싶었다. 효과와 효율만이 전부가 아님을, 수치화되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음을, 그것들이 더 나은 숫자를 만들어낼 것임을 나는 말하고 싶었다.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지만.
동기 부여는커녕, 있던 동기도 깎이던 그날 밤 나는 한참을 달렸다. 헉헉거리는 숨을 몰아 내쉬어 낮에 멈칫했던 호흡들을 가다듬었다. 좋은 취지의 의견을 제시하려면 좋은 태도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체화했으니까, 좋은 태도는 건강한 몸과 정신에서 나오는 것일 테니까 나는 달렸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보석 같은 사람들이 나에게 있었고, 있고, 다시 있을 거니까.
회사 밖에서는 근사한 참여자님들을 만날 때, 회사 내에서는 대표님을 뵐 때 '귀감이 되다'의 말을 상기한다. 본사로 출근했던 최근 두 어번, 여느 카페 못지않은 음료를 대접받았다. 대표님께서 직접 담근 수제청에 탄산수를 붓고, 마지막은 회사 부엌 한편에 심어진 허브가 살짝 올려졌다. 대표의 많고 많은 일 중에 한 가지를 더해 회사에 방문하는 이들을 위한 수제음료를 배워 직접 만드시는 것에 나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돌아봤다.
내 할 일을 잘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아야 하는 겸손과 낮은 자의 마음을 나는 갖추고 싶다. 결과와 과정 모두가 엉망인 하루가 있더라도, 그냥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지고 싶다. 결과와 과정 둘 중 하나가 썩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날이 운 좋게 나타났대도 감사가 먼저이기를, 둘 다 흡족한 하루에도 자만하지 않는 날들로 이어가기 바란다. 여러 만남이 있는 일을 하게 된 것을 누려가며, 위치하게 될 모든 자리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선택하거나, 주어지는 어떤 일도 잘 감내하고 싶은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지는 가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