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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송 Oct 08. 2019

J언니

  

  우리는 용띠 친구, 그녀와는 정확히 12살 차이가 나서 띠동갑이다. 서로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데, 내가 한참이나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게 된 덕에 언니랑 육아 동지까지 되었다. 언니를 처음 본 것은 교회에서였다. 당시에 교회에 작은 소그룹이 생기려던 즈음, 언니는 그 소그룹의 예비리더였고 나는 개설되지 않은 소그룹에 참여하겠다며 설쳐대던 지극히 평범한 성도 1이었다.



  나는 관심 있는 대상(자신도 타인도)을 오랜 시간 관찰하며, 영역별로 범주를 나누곤 하는 이상한 습관이 있는데, 언니는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아주 적합했다. 사계절을 틈나는 대로 들여다보니, 언니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의 부류였는데 그 성질이 참으로 특이했다. 온화하고 차분하여 주변을 들뜨게도, 가라앉게도 하지 않을 수가 있는 건가. 단단하게 밀도가 높아 일희일비하지 않지만, 딱딱한 사람은 전혀 아니었으니까. 아이처럼 웃고 모두의 엄마처럼 다른 이들을 품으며, 누구네 누구네의 속상한 일들에 쉽게 눈시울을 붉혔다. 관계의 깊이와 오지라퍼 그 한 끝 차이의 경계를, 언니는 무너뜨리는 법이 없었다. 입에 말을 담아내지 않아도 그 힘이 세었으니까.

 


  한 번은 살던 집이 만기가 되어 재계약을 하는데, 부동산업자의 고약한 부추김에 집주인 아저씨가 어마어마한 전셋값을 부르셨었다. 남편의 외벌이로 아이를 키우면서도 저축은 해야 하는 것이라,  한참을 들여 어렵게 모은 돈인데 그렇게 빨리도 푼돈이 되더라. 야속함이 가득한데 차마 아저씨한테는 말 못 하고, 자리에 계시지 않았던 주인아주머니께 사정을 했다. 전셋값을 올려드리려 준비해두긴 했지만, 큰 폭을 채워드리지 못할 것 같다고, 형편을 헤아려 주셔서 선처해주시길 부탁했다. 전화로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냉큼 달려오셔서는 아저씨를 나무라셨다. 이 새댁이 얼마나 열심히 사는 줄 당신이 아냐고, 부동산 아주머니도 한 동네 사람이고 사정 다 알면서 그러는 거 아니시라고. 내 집 전셋값은 내가 정할 테니 아무도 끼어들지 말라시며 조금의 인상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이 감사한 일로.. 언니를 찾아가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다. 언니, 요즘 세상에 이런 분이 계시다고. 저도 언젠가 부를 축척하게 된다면 그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삶으로 살아낼 거라고,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때의 장면을 말로 옮겼다.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 감사한 일에 언니는 안경 속으로 연거푸 손을 집어 넣어 눈을 비볐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연신 그 말만 했다. '공감'의 영역에 스위치가 있다면 언니에게 off 기능은 없는 게 아닐까, 그게 참으로 고맙고 한편으론 부러웠다. 



J언니랑 살아가기 시작한 지 3년 차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어, 너도 싫고 나까지 싫어지는 '다 싫어 병'에 걸렸을 때, 누구와도 소통치 않고 혼자 조용히 동굴 안에 있었을 때. 언니네 시어머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빈소에서 검정 한복을 입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언니를 보는데, 왜 그리 눈물이 쏟아지던 지- 당연히 언니보다 형부의 마음이 훨씬 더 힘들었을 텐데도 나는 언니의 저고리를 잡고 엉엉 울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언니가 있는 공동체로 돌아왔다. 


   20대에 생성된 모든 에너지를 출산과 육아에 쏟아부어 낸 것에 한 번도 후회가 없었는데, 언니를 보고 처음으로 후회가 된 적도 있다. 내가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저런 지혜가 쌓였을까. 그즈음에 육아를 했더라면 나의 아이들은 조금 더 여유 있고 마음이 넉넉한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마음들을 닮아가지 않았을까 상상하며 씁쓸하기도 했다. 


언니는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으로, 좋은 표본으로. 나의 삶을 얼마나 돌보아 살펴주고 있는지 알까.  한 사람을 만나 그의 인생을 아는 것은 좋은 책, 좋은 영화 한 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깊이가 있다고 어디서 들었더라.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그녀를 만나는 게 아니다. 그녀를 만나는 게 좋아서 사람 만나는 것 까지 좋아진 거다. 이 글을 마무리 짓게 되면 언니에게 꼭 선물로 줘야지. 그렇게 만나는 이마다 그들의 안녕을 바라는 언니가, 제일로 평안했으면 좋겠는 나의 소망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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