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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송 Jun 21. 2019

콩국수 한 그릇

  

  본래 콩국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색감도 이상한 것이 걸쭉하기까지 해서 도저히 밀가루 면과는 어울릴 거 같지 않은 음식이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작은 가게를 운영하셨는데,  여름철이면  근처 식당에서 한 그릇씩 시켜 드시는 것이 여간 이상했다. 불려서 삶은 콩을 갈아 얼음을 더한 국수라기 보단 두유에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말아낸 두유 국수에 가까웠다. 식욕을 저하시키는 모양새와 비릿한 냄새가 30년간 콩국수의 위엄을 가려내기 딱 좋았다. 


   처음 콩국수를 먹었던 때는 불과 1년 전, 회사 근처 국수가게에서 너도나도 콩국수를 시키며 참 맛있게도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검은콩을 육수로 사용했는데, 하얀 콩보다는 모양새가 낫더라. 모두가 맛있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먹어졌다. 그 맛이 나쁘지 않았다. 배가 고픈 탓에 뭘 먹어도 맛있었을 테지- 


  최근에 먹은 콩국수는 그 녀석과 먹은 것이었다. 각자 살아가는 데 총력을 다해서인지, 한참이나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그 녀석을 만나고 싶어, 나는 한 걸음에 시청으로 갔다. 어떤 음식을 먹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는데, 질 좋은 음식을 먹여주고 싶었는지 친구는 세종대로의 한 초밥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하필 그 날이 카드사의 고메위크여서 예약 없이는 식사를 할 수가 없었고, 친구 녀석은 난감해하며 질량 높은 음식들을 연거푸 읊으며 고르라고 했다. 


  나는 콩국수가 먹고 싶었다. 시청역 인근에 아주 유명한 콩국수 집이 있는데, 콩국수의 초보자로서 사람들이 찾아가서 먹는다는 그것을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한참이나 오랜만에 만났는데 여기까지 와서 콩국수가 뭐냐고, 더 근사한 것을 먹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식당 입구에 적힌 글을 고스란히 읽었다. 이것은 단순한 콩국수가 아니라 미래유산임을, 우리는 대한민국의 미래유산을 먹고 있는 거고 넌 나에게 그 처음을 선사하고 있는 것임을 떠들어 댔다. 


  친구는 오랜 기간 여러 방면에서 나에게 다양한 선물을 해왔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가릴 것 없이 나는 그에게 참 많은 것들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 유난히 말이 없어, 나는 그가 말을 못 하는 줄 알았다. 자리를 채워햐 하는 자리에 그저 성실히 빈자리를 메꾸던 친구였으니까. 365일 시끄러운 나를 365일 시끄러워하다가, 어느 날부터는 칭찬을 해주더니 오빠 행세를 했다. 종종 내가 내뱉은 말을 잘 저장해뒀다가 필요한 때에 고스란히 꺼내어 주기도 하며, 침묵은 여러 말 보다 그 힘의 세기가 더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렇게 나의 자존감을 키워주더니, 성인이 되고 각자의 삶이 조금씩 달라지는 형태를 보일 때에도 그 녀석은 매번 같은 응원을 주었다. 1년에 한 번 보면 자주, 2-3년을 훌쩍 뛰어넘은 때도 있었지만 만날 때마다 만나는 것 만으로 격려가 되던 그런 친구였다. 


  맨날 주변에 져주고, 손해보고 살아서 제발 좀 그러지 말라고 나는 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좀 더 약아도 괜찮다고, 다른 사람한테 폐 끼치지 않는 선에서 너의 것을 좀 챙겨도 괜찮다고.. 이 멍충아. 나는 그에게 매번 멍청이라고 말할 수 없어 '충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런 충이는 20대 내내 여자 친구가 한번 없더니(부디 나한테 알리지 않은 연애사가 있기를) 이제 곧 결혼을 한단다. 너의 결혼으로 드문드문했던 연락에  더한 간격을 벌려야 하는 것이 이제와 아쉽지만, 그럼에도 어련히 잘 지내리라 가늠되어 위로가 된다. 우리의 콩국수같이 담백한 관계를 아끼며, 이제는 조금 더 여유 있는 내가 너를 응원 하마.    



언젠가 마음이 퍽퍽해지면, 콩국수 사 묵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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